[한국수의인물사전 45] 창경원시절부터 동물원과 함께 `오창영 수의사`
한국수의인물사전 45. 오창영(吳昌泳, 1928~2013). 육군 중앙병리연구소, 창경원 동물원 재건사업 참여, 서울동물원 동물부장(초대 동물원장),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원
1928년 2월 10일 청주시 수동에서 출생하였다. 청주농업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당시 태평양전쟁 막바지여서 폭격을 피해 부산 가축위생연구소의 주요 비품이 이 학교로 옮겨져 있었다. 이때 선배들(정운익, 김동성)의 이야기를 듣고 연구 기자재를 본 뒤 연구소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1947년 청주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가축위생연구소 안양 지소로 향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실험실에서 침식을 해결하면서 초자 기구 세척과 소독부터 익혔다. 그러면서 주로 한 일은 돼지열병, 광견병 및 뉴캐슬병 예방약 제조를 돕는 것이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의 기용숙 교수가 실험실(안양)을 자주 방문하여 두묘(痘苗) 실험을 하였는데, 그는 기용숙 교수의 실험도 도왔다. 기용숙 교수는 서울대 수의학부에서 강의도 하여 수의와 인연이 깊었다. 한편 특이한 행동으로 정평이 났었는데, 일상 대화에서도 생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연구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1949년 9월에는 안양 지소에 사표를 내고 서울대 수의학부에 진학했는데, 한국전쟁으로 전시연합대학이 부산 송도에서 출발함에 따라 다시 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실험실과 강의실을 왕래하면서 연구실 경력을 쌓게 됐다. 이러한 경력 덕분에 대학 졸업(1953)과 동시에 의정 장교로 임관되어 육군중앙병리연구소에서 식품검사를 맡게 되었다.
창덕궁과 인접한 창경궁은 약 70년 동안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폐궁을 활용하여 황실 이용을 편리하게 한다.”는 미명 아래 웅장하고 화려하였던 궁이 헐려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1년 6개월 후 동물원이 개원됐고, 당시 규범으로는 궁(宮)에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으므로 원[昌慶苑]으로 명칭을 격하하여 황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이용하고, 다른 날에는 일반에 개방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개원된 동물원은 주임 오카다와 한국인 직원 2명이 관리하였다. 특별한 위락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그런대로 동물원이 성장하기는 했으나 1937년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중에 서울 시민들이 두 번이나 피란을 했는데, 첫 번째 피란 때는 1929년부터 근무한 사육사(박영달, 동물원에 근무한 최초의 수의사로 기록됨)가 동물들을 돌보았으나 두 번째 피란(1.4 후퇴) 때는 모든 사육사가 남하하여 동물 관리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듬해 봄 박영달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동물들이 아사하거나 동사한 후였다.
1952년 겨울 창경원에 UN군이 주둔하다가 철수하면서 부대 마스코트인 필리핀 원숭이 한 쌍을 두고 가 제1호 입주 동물이 되었다. 전후 동물원 재건사업이 진행되면서 전문 직원이 절실하게 필요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수의학을 전공한 적격자를 채용하여 실무를 맡겨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1956년 5월 예편 예정이던 오창영이 적격자로 선정되어 일생을 동물원과 함께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아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였으므로 일본의 동물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동물원의 난제를 해결하였다. 동물원에 근무하는 수의사 중 유일하게 동물사(舍) 시설 도면을 그릴 수 있었고, 항상 연구하는 자세를 지녔으며, 야생동물 관련 자문 요청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니면서 설명해 주는 열정을 보였다. 그래서 모든 직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창경원 동물원이 과천(대공원)으로 이전하는 과정에 “서울대공원 동물원 건설 기본 계획 및 설계 주관”을 맡아 대공원 동물원 개장(1984. 5. 1.)에 수훈을 세웠다. 그래서 서울대공원에서도 초대 동물원장에 해당하는 동물부장(1983.9.~1989.6.30.)을 역임했으며, 서울대공원이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정년퇴임 후에는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원(1989~1995)으로 봉사하였다.
이 기간에 ‘한국동물원의 유래부터 창경원까지’(창경원 편)와 ‘과천 이전과 서울대공원 동물원 이야기’(서울대공원·전국 동물원 수족관 편)를 『한국동물원팔십년사(韓國動物園八十年史)』(1993)라는 2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외에도 『오창영 동물기』, 『슬기로운 동물의 세계』, 『동물의 사계절 이야기』 등의 책을 남겼다. 그러나 『세계 포유류 우리말 사전』은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유고(遺稿)로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개교 50주년(1996. 10. 15.) 기념행사에서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향년 85세로 2013년 11월 24일 작고하였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회장 김옥경)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