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동기
미국 수의사 국가시험에 대해 처음 알게된 것은 본과 3학년 때 친구들이 스터디를 만들면서였다. 당시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AVMA수의학교육 인증을 획득하기 전이었는데 ‘영어공부를 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후 1년간 휴학하면서 스터디도 그만두게 됐고, 세상의 여러 다른 것들을 경험하면서 미국수의사에 대해 잊게 되었다.
다시 본과 4학년으로 복학하고 얼마되지 않아 서울대 AVMA 인증 소식이 발표됐고,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기에 곧바로 미국수의사가 되는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한국에서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수의사에 도전한 선배들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거쳤다. 영어공인인증시험>기초필기시험>실기시험>국가시험을 거치는 ECFVG와 미국 수의과대학 본4 로테이션>국가시험으로 이어지는 PAVE 과정이다.
마지막 단계인 국가시험에 해당하는 NAVLE는 AVMA 수의학교육 인증을 받은 수의대의 졸업생들은 타 절차 없이 곧장 응시할 수 있었는데, 서울대 수의대가 이를 해낸 것이다. 이후 서울대 동물병원에 ‘아시아 최초 미국 수의학 교육인증’이라는 현수막이 반 년 넘게 걸려있던 것을 기억한다.
스터디 구성
들뜬 마음에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스터디를 구성하고자 다짐했다. 열정 넘치는 후배 친구와 본인을 필두로 10명 남짓의 학생들이 모였다. 주말마다 모여 공부를 시작하니,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었고 새로 함께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학습자료는 NAVLE 연습문제 제공 유료 서비스인 <Vetprep>을 활용했다. 4월 말이었던 스터디 첫 날, 다 같이 교실에 모여 스크린에 띄운 문제를 풀어보니 정답률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생각보다 낮은 점수에 크게 긴장했고, 안정적인 70%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NAVLE는 800점 만점에 425점이 합격 커트라인이지만, 문제마다 가점이 달라 55-65%의 문항을 맞춰야 한다).
6월까지는 문제풀이보다 내용 공부에 집중했다. 스터디원 각자가 매주 2~3개의 강의를 맡아 칠판 앞에서 모두 설명해주는 방식을 활용했다.
개·고양이 관련 내용은 병원 실습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어 꽤 익숙했지만, 소·돼지·닭 등 농장동물 임상에서는 미국에서 발병하는 주요 전염병이나 백신, 약물 규제 등이 무척 생소했다.
모든 강의를 필기하여 원노트에 정리해두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문제를 풀고 검토할 때 키워드를 ctrl+F로 쉽게 찾을 수 있어 많이 유용했다.
시험접수
NAVLE는 4월과 11/12월, 연중 2회의 시험기회가 있다. 11/12월 기간 시험은 8월 1일까지 신청할 수 있다.
시험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시험 주관사인 ICVA홈페이지에서 꼼꼼히 읽어보고 알 수 있었는데, 서울대가 인증을 받자마자 절차가 다소 변경됐다. 따라서 앞선 선배들의 시험 응시 경험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험 접수가 진행됐다.
미국은 50개 주마다 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NAVLE를 통과하더라도 각자가 일하고 싶은 곳의 주 시험을 추가로 응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달라진 점은, NAVLE를 응시지원할 때 원하는 주 또한 동시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은 미국인 수의사 친구가 있는 텍사스 주를 선택했다. ICVA에서 NAVLE 응시료 결제까지 완료하자, 여러 안내 메일을 받은 후, 최종적으로 시험 Scheduling permit을 받아서 시험대행사Prometric을 통해 시험날짜와 시험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
7월 한 달 간은 공부를 미뤄두고, 개인적으로 학생 때 이루고자 한 마지막 목표인 ‘아프리카의 대자연과 야생동물을 직접 마주해보기’를 위해 여태껏 모아두었던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다.
시험 후기 중간에 갑자기 왜 여행 이야기인지 의아하겠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내적동기를 얻을 수 있었던 뜻깊은 아프리카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수의대생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남다른 경험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끝에 수개월전 신청한 남아공 야생생태계 프로그램 (SYMCO)에 다녀왔다. 전세계 예비수의사 80여명이 참가하는 프로그램 자체도 정말 알찼지만, 그곳에서 만난 세계각국 또래 친구들의 열정에 보다 깊은 울림을 받았다.
사실 내 자신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는데, 수의사의 기본 자질은 갖추지 못한 채 시험 합격이라는 목표만 쫓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마취된 야생 코뿔소 피부에 붙은 진드기를 떼어내며, 주변 사람들끼리 진드기 매개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각국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에 대해 가볍게 말을 주고받았고, 나에게는 한국에서 어떤 전염병이 많이 유행하는지 물어보았다.
어딘가에 열심히 적어두고 머릿속에는 남아있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유일한 한국인 참가자로서 나는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상황이 여럿 이어지면서, 예비수의사로서 나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후로는 수의학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방식부터 바꿔야함을 깨달았다. 공부 결과물이 노트 어딘가에 적혀 있는 가짜 지식이 아닌,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진짜 지식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질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고 반복적으로 이해하여, 언제든 질문을 물어보아도 부끄럽지 않게 답할 수 있는 내가 되고자 했다.
시험 응시
8월말부터 다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수의학 지식도 제대로 모르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고 한국 국시도 조금씩 다가왔기 때문에, 기초공부는 한국 국시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학교 병원에서 로테이션 실습을 하는 주중에는 한국 국시 과목을, 주말에는 스터디원들과 <Vetprep>의 연습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진행하여 10월 전까지 <Vetprep> 연습문제를 전부 공부했지만, 개인적인 학습량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Zukureview>라는 또다른 NAVLE 연습문제 유료서비스를 결제하여 이용했다. 이와 함께 수의학 평생교육 플랫폼인 <VIN.com>의 “NAVLE review & preparation” 강의를 통해 시험에 도움이 될 만한 최신 자료도 추가적으로 활용했다.
시험 응시 2개월전부터는 실전에 익숙해지기 위해, 주말마다 300문제 이상을 한 자리에 앉아 푸는 연습을 했다.
12월 2일, 같은 날에 대여섯명의 친구들과 함께 NAVLE에 응시했다. 시험장소는 시험대행사 Prometric이 위치한 서울 동대문역사문화회관역 근처였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응시자마다 전부 문제가 다르게 나왔다. 때문에 일찍 보거나 늦게 본다고 더 유리하거나 불리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이른 날짜에 시험을 치른 사람들이 홀가분한 기분을 먼저 느끼는 것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험은 60문제 x 6세션 = 총 360문제로 구성되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1문제당 1분꼴로 풀어가며 전체 시험문제의 절반가량을 풀었을 때는, 문제마다 깊은 고민을 할 여유가 없어 문제를 읽고 바로바로 떠오르는대로 답을 선택하게 됐다. 결국 세션마다 확실하게 푼 문제 수를 세어보았을 때는 절반을 간신히 넘기는 정도였다.
특정 상황에서 보호자와의 소통에 관한 영역은 정답을 확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에, 자신있는 답안 수가 더 적었던 것 같다.
시험 이후
시험을 친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8주가 걸렸다. 그동안 한국 국시도 응시했다. 이내 두 시험 모두 합격 결과를 받으며 기쁨도 두 배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추후 미국에서 수의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주 시험을 비롯해 비자 등의 문제들도 남아 있어서, NAVLE 합격이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학교의 AVMA 인증 후 첫 회 NAVLE 합격생으로서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학교의 지원과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여러가지 새로운 기회들이 나타나길 기대해보며, 또 시험 후기가 후배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 * NAVLE 응시자를 위한 팁 * *
Q. 공부는 언제부터 시작하는게 좋을까요?
– 6개월이상 계획하여 꾸준히, 차분하게, 규칙적으로 공부하기를 추천
– 혼자 공부하기보다 스터디 (4-10명) 구성하기를 추천
Q. 공부 자료는 어떤 것을 선택하는게 좋을까요?
– 공부 자료는 모두 유료이며, 인터넷으로 이용 가능
– 가장 이상적인 공부법은 모든 자료를 숙지하는 것이나, 개인의 실력과 상황에 맞추어 선택
① Vetprep : 깔끔한 어플리케이션을 제공해 처음 공부하는 자료로 접하기 편함. 혼자 사용한다면 각 파트별 성취도를 그래프로 보여주기 때문에 손쉽게 자신의 취약점을 분석할 수 있음.
② Zukureview : 그림 연상법으로 공부가 잘되는 사람들에게 추천. 연습문제가 대부분 Vetprep과 다르며, 시간이 넉넉해서 Vetprep이 지겨워질 때쯤 공부하길 추천. Vetprep과 Zukureview 중 하나만으로 준비해도 합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꼭 병행이 필수는 아님.
③ VIN.com : 시험 직전 7주 요약 강좌로 전반적인 내용을 복습하는 용도로 추천. 하나의 계정으로 공유하기 좋음.
④ ICVA에서 제공하는 NAVLE 실전문제 :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기출문제와 가장 유사한 연습문제. 해설은 따로 없으므로 시험 직전에 시간 맞춰 푸는 연습용으로 적당함.
Q. NAVLE 공부 계획 예시
– Vetprep 개념 공부 →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 없을 때까지 공부
– Vetprep 연습문제 → 70%이상 정답률이 자신 있을 때까지 반복 풀이
– Zukureview 연습문제 → 낯선 문제 위주의 반복 풀이와 복습
– VIN 7주 강좌 → 주요 개념 복습
– ICVA 실전문제 → 시험 실전 연습
Q. NAVLE 신청시 주 선택은 어디가 좋나요?
– 기본적으로 자신이 미래에 활동하고 싶은 지역을 선택
– 추후에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일정 절차를 통해 다른 주로 면허 이동 가능
– NAVLE 합격 이후에도 추가서류/지문등록/교육이수/추가납입료 등 주마다 요구사항이 상이
– 주 시험이 따로 없는 주도 있으며, 상세사항은 각 주의 veterinary board에 문의
Q. NAVLE 당일 준비물은?
– 필수 준비물: 여권, Scheduling permit, 점심 도시락
– 선택 준비물: 초콜릿, 커피, 이어플러그 등
– Prometric 시험대행사에서 여타 다른 시험도 이뤄지므로, 본인은 이어플러그의 도움이 컸음
Q. NAVLE 합격자 후기 종합
– Vetprep, Zukureview, ICVA 연습문제 중 그 어느것과도 똑같은 문제가 나오지 않음
– 단순암기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으며, 긴 시간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
– 보호자 소통과 관련된 문제는 실제 임상상황으로 주어지며, 기초적인 윤리의식과 미국법규를 바탕으로 수의사로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
– 시험시간이 부족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으므로 평소 다수의 문제를 푸는 연습이 필수!
<조성진 수의사의 개인 블로그 ‘딴짓하는 수의사’(바로가기)에서 미국 수의사 국가시험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