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50. 유태석(柳泰錫, 1926~2004). 서울대 수의학부 졸업, 진주농과대학 교수, 수의사 국가시험 출제위원.
1926년 10월 30일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했다.
사리원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1940. 4. 5.~1944. 12. 20.) 수원농림전문학교 수의축산학과에 입학하였지만 교명이 변경되어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전문부 수의축산학과(1945. 4. 10.~1948. 8. 20.)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부(1948. 9. 1.~1951. 9. 29.)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동창회 회원 명부(2016)에는 입학년도가 1947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학적부의 ‘입학 구분에 2년 편입’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문부를 졸업하였기에 1948년 9월 2학년에 합류하여 3년 만에 수의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1957년 4월 15일 진주농과대학에 전임강사로 임용된 후 조교수(1959. 4. 23.~1962. 10. 16.), 부교수(1962. 10. 17.~1965. 10. 31.)를 거쳐 1965년 11월 1일 교수에 임용되었다. 처음 임용되고 나서 수의생리학, 수의생화학, 수의약리학을 담당하였으나 정순동 교수 부임 이후로는 수의약리학 강좌만 담당하였다.
전염성 기관지염 바이러스에 작용하는 가토 혈청 억제 물질에 관한 연구로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1966. 2. 25.), 1967년 12월 19일 경상남도 문화상(자연과학 부문)을 수상하였다. 또한, 진주농과대학 학생과장(1968. 3. 1.~1968. 11. 20.)을 역임하였고, 제15회(1971. 12.) 수의사 국가시험 출제위원에 위촉됐다.
검소하고 실리적이라 경제력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수의대 졸업생의 평균 수입이 낮아서 그를 찾아온 몇 학생을 약학대학에 학사 편입하도록 주선하여 그들이 약사로 되돌아와 진주와 마산에 약국을 열기도 하였다.
교육부(당시 문교부)는 1975년 7월에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하여 교수와 부교수는 6년(1980년 이후), 조교수와 전임강사는 2~3년, 조교는 1년 재임용하도록 하였다. 1992년부터는 교수와 연구 실적이 특별히 우수한 부교수는 임기를 정하지 않는 정년 보장 제도를 실시하였고 조교수는 4년, 전임강사는 2년으로 하는 재임용 제도를 실시했다.
이 교수 재임용 제도가 수의과대학 통폐합과 맞물려 수의학과가 폐지된 대학의 교수에게는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왔다. 전국적으로 이런 임기 만료로 퇴직한 사람이 더러 있었다. 경상대학의 경우도 이른바 ‘대치 학과’가 신설되었지만 연로한 교수를 환영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도 이런 경우에 해당되어 임기 만료로 1982년 2월 28일에 퇴직하였다. 퇴직 후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으나 생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2004년 3월 16일 영면하였다. 글쓴이_양일석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