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65. 이일화(李日和, 1938~1981). 서울대 수의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수의과대학 수학, 재미한인수의사회(KVSA) 창립 주도 및 초대 총무, 장례 부의금 전액 장학금 기부
본적은 경상남도 거창이며, 1938년 4월 7일 중국 북경에서 부 이조영과 모 박조야의 5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균명고등학교(현 환일고)를 나와서 1957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1963년에 졸업하였다. 서울시 시험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1964년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낙농학을 공부하고 1968년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69년 7월 이숙자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유학생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임상과 수의학 공부에 정진하여 1969~1970년도 ECFVG 시험, 미국 수의사 면허 국가 시험과 펜실베이니아 주 시험(State Board)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시민권이 없어서 면허 발급이 보류되었다. 실망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워싱턴 DC 면허 시험에 응시하여 1970년에 면허를 취득하였다. 이어 백악관 인근의 조지타운(Georgetown) 수의병원 수의사 캐셸(Cashell)의 부(副)수의사로 발탁되어 임상 수의사로 왕성한 진료 활동을 하였다.
한편, 미국에 흩어져 있던 이민 또는 유학 온 한국 수의사 25명과 규합하여 재미한인수의사회가 태동할 수 있는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1972~1974년 초대 총무로서 재미한인수의사회의 토대를 닦아 창립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초대 회장 조병률, 부회장 어형선, 이주성, 초대 총무 이일화, 편집 홍학석, 박대균, 재무 지흥민, 섭외 구문장 제씨들 외에 김상남, 이기풍, 오연각, 신상재, 김문소, 김현영, 이갑재, 조정헌, 이규선, 유형규, 조형원 등이 재미한인수의사회의 초석을 다졌다.
1973년 가을 펜실베이니아의 면허가 허용되면서 필라델피아 근교 네이버스(Naberth) 동물병원 수의사 스캘론(Scalon)의 부수의사로 많은 진료를 담당했고, 외과 주임(chief surgeon)으로 수술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다음해인 1974년에는 노스이스트 동물병원(Northeast Animal Clinic)을 열어 임상 수의사로 활동하며 그곳을 재미한인수의사회의 근거지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1976년 필자와 공동으로 브로드세인트 동물병원(Broad St. Animal Hospital)을 인수해 후배 양성에 큰 계기를 마련하려고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1981년 3월 신장암 진단을 받고 앨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그해 11월 23일 향년 43세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필라델피아 근교 벤세일럼에 있는 천주교 묘원인 레저렉션 묘지(Resurrection Cemetry) 에 안장되었다.
그는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겸손했으며, 온화하고 침착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음악을 좋아했으며, 선구적인 이민 수의사의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신실한 천주교 신자의 삶을 실천하였다. 선배를 존중하고 후배를 사랑하고, 그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였다.
또한, 당시 유신 치하에서 탄압을 받고 있던 수난자 가족 돕기회,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수난을 받고 있던 이우재 동문 돕기회, 씨알의 소리, 도산 안창호 연구회,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미망인 이숙자는 장례 때 들어온 부의금 전액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10주기가 되던 1991년 11월 재미 한인수의사들은 그의 유명을 기리며, 그의 자녀 장학금으로 모아서 전달했던 금액 전부를 다시 모교에 장학금으로 헌납하여 고인의 뜻을 기렸다.
그는 외모는 평범해 보였으나 실천적 삶을 살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오늘의 재미한인수의사회의 씨를 뿌리고 간 훌륭한 수의사로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다.
《재미한인수의사회보》(1981. 12. 25. 12권 4호) 「편집실 보도」란에 “과거 10여 년간의 이일화 전 회장님의 숨은 공로와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재미한인수의사회도 없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분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가 미국에 와서 정착하는 데 몇 년이 더 걸렸을 것이라 믿습니다.”라는 글이 실렸다.
또 《재미한인수의사회보》 25주년 기념호에는 「KVSA(Korean Veterinary Society of America) 창립을 회고하면서」(조병률, 재미한인수의사회 초대 회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Dr. Lee(이일화 수의사)가 KVSA 25주년 잔치를 보지 못하고 일찍이 세상을 떠난 것은 참으로 애곡(哀哭)하지 않을 수 없다. KVSA는 Dr. Lee가 창안하고 실현을 위하여 적극 추진함으로써 드디어 1982년 7월에 창립을 하게 되었다. Dr. Lee가 거의 독력(獨力)으로 KVSA의 창립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KVSA 창립 초창기에는 본회의 총무를 담당하여 회의 실제 운영을 맡아 하고 KVSA 회지도 자신이 발간하였다. 창립 당시 KVSA는 재원이 별로 없어 Dr. Lee가 자비를 써가며 KVSA를 운영하였다. 새로이 이곳으로 온 모국의 수의사들이 낯선 이국땅에서 물심으로 고난을 당하게 되니 먼저 와서 자리 잡은 동포 수의사들이 후진 수의사들을 도와서 하루 속히 미국에서 수의사로서 사회 경제적 안정을 갖도록 해주어야겠다고 Dr. Lee는 말한 바 있으며, 이와 같은 그의 신념이 KVSA의 탄생을 이루게 한 것이다.” 글쓴이_지흥민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