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생이 수의학교육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시대가 온다

전공자에게나 필요한 내용의 일방적 교육·중복 교육 줄여야..교수진 공감대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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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제대로 알고 수의사가 되는 건가?’

수의대생이라면 한 번쯤 떠올리는 질문이다. 수의사국가시험의 최근 합격률은 95% 내외로 수의대생 대부분이 큰 어려움 없이 국가시험에 통과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 수의사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때문에 졸업생들이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량을 갖게 만드는데 집중하자는 것이 최근 수의학교육의 트렌드다. 한국수의과대학협회(한수협)와 한국수의교육학회도 5년여 전부터 역량중심 수의학교육의 기준을 만드는 작업을 이어왔다.

지난해 한수협 교육위원회는 수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수의사가 갖춰야 할 능력(졸업역량)을 ▲기본역량 ▲진료역량 ▲수의전문직업성역량으로 분류하고 이를 최종학습성과(TLO) 310개와 실행학습목표(ELO) 860개로 구체화했다(본지 2019년 11월 6일자 ‘수의학교육 실행학습목표 860개 이정표..2027 국가시험 개편한다’).

23일과 24일 양일간 쏠비치 삼척 리조트에서 열린 한수협 심포지엄에서도 역량 중심 교육방향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미 학생들 스스로가 한수협 교육위가 제시한 수의학교육 졸업역량을 기준으로 자기평가를 시작한만큼, 각 대학이 교과과정 개편을 미룰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수의대생이 본과 1, 2학년 교육의 성과를 ‘수의학교육 졸업역량’을 기준으로 자기평가한 사례를 소개하는 이기창 수의교육학회장

수의대생은 이미 졸업역량 기준으로 자기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No Teaching, Yes Learning’ 강의는 핵심내용 위주로 줄이고 자기주도학습 비중 커져

24일 ‘역량 교육의 방향’을 주제로 발표한 이기창 한국수의교육학회장은 수의학교육 졸업역량이 이미 일부 학생에게 활용되고 있다고 지목해 눈길을 끌었다.

전북대 본과 3학년 학생이 본1·2학년에 배운 기초과목을 통해 기본역량 실행학습목표 444개, 하위실행학습목표(sub-ELO) 2,029개 항목을 스스로 달성했는지 자기 평가를 실시한 사례다.

이기창 교수는 “학생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다.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다”며 “(졸업역량을 기준으로) 학생 스스로가 교육 성과를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대에 와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이 최종학습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수의대와 교수의 역할이다. 학생이 성실하게 참여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학생의 성과(역량)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심포지움에서는 학부과정에서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분량은 줄이고 ▲전공자 수준까지 올라간 난이도는 낮추고 ▲과목별로 다루는 내용이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성이 지목됐다.

수의영상의학을 담당하는 이기창 교수는 “예전에는 전공자 수준인 슬라이드를 띄워 놓고, 분량도 많아 시간에 쫓기면서 가르쳤다”며 “No Teaching, Yes Learning을 선언한 이제는 수업자료를 반 이상 줄였다. 대신 꼭 필요한 내용만 남겨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집중한다. 질의응답도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가 보편화되면서 수의대생의 자기주도학습 비중도 커졌다. 제한된 온라인 수업시간에는 핵심적인 학습성과에만 집중하는 대신, 관련 논문 등 학생들이 찾아볼 수 있는 양질의 자료를 안내하는 형태다.

한수협 회장을 맡고 있는 서강문 서울대 수의대 학장은 “학생들은 굉장히 앞서가고 있다. 본4 로테이션을 하며 특정 주제에 대해 발표를 시켜보면 대학원생보다도 잘 준비할 때가 많다. 이러한 학생들을 어떻게 만족시킬지 교수들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강문 한국수의과대학협회장

교육내용 중복 없애고 통합하려면..교수진 공감대 높여야

교과과정 개편 필요성도 지목됐다. 학생들 스스로가 역량을 갖추려면 실습교육과 자기주도학습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이론강의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복되는 내용이 없도록 교과목을 조정하고, 전공자 수준의 내용은 학부에서 다루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제열 서울대 교수는 “수의과대학에 강의시간이 너무 많다. 매일 오전 내내 강의하고 오후 내내 실습한다”면서 “각 교과목별로 다루는 TLO, ELO를 파악해보니 엄청나게 겹쳤다. 학생들은 부족한 시간에 중복된 내용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강문 학장도 “미국에서는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한국에서는 학부에서 다룬다는 지적이 있다”며 “이 과목 실습에서도 PCR하고, 저 과목 실습에서도 PCR 한다는 학생들의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때문에 임상실습과 기초실습 모두 통합해 겹치지 않도록 하고, 교수들 간에도 교육내용을 조정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학부교육은 수의사가 되기 위해 꼭 알아야하는 내용(졸업역량)에만 집중하고, 심화교육은 선택과목 형태로 확대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교과목 통합 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교수별 강의시수 부족 문제도 선택과목 확대개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여한 각 수의대 집행부는 이 같은 수의학교육 개선 움직임에 대한 교수진의 공감대 확대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강문 학장은 “지금은 수의학교육에 관심 있는 교수님들만 참여하고, 나머지는 관심이 없거나 반대하는 실정”이라며 “수의학교육 개선준비작업을 공유하고 교과목별로 토의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오는 겨울에 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의대생이 수의학교육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는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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