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의 다양한 분야 및 이슈에 대한 수의대생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8기가 “수의학 A to Z”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리 학생들로부터 공모받은 알파벳에 따른 키워드를 정해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A부터 Z 키워드 기사가 계속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네 번째 키워드 알파벳 D는 더미(Dummy)입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동실동실 더미제작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동실동실이 제작한 랫드(rat) 주사용 모형(더미)은 지난 학기 서울대 수의대 본과1학년 수의약리학 실습에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Q. 동실동실과 더미 제작팀을 소개해주세요.
김나영: 안녕하세요! 저희는 실험동물과의 동행을 실천하는 동아리, ‘동실동실’입니다. 저희는 실험동물의 복지 증진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고 26명의 행동풍부화팀과 14명의 더미제작팀으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어요. 이 안에서 견사개선팀도 꾸려져 유기견 보호소 방문, 교수님 면담, 자료조사 등을 통해 실습견·공혈견의 견사 개선안을 작성 중입니다. 행동풍부화팀은 직접적인 복지 개선의 일환으로 실습견과 공혈견의 산책과 목욕을 주로 담당하고, 더미제작팀은 실습 시 이용되는 동물을 대체하거나 연습 대상을 제공하기 위해 더미를 만들고 있어요. 보정 느낌 구현, 음압의 표현, 지속적 이용이라는 세 가지를 주요 관점으로 잡아 제작을 시작했고, 많은 교수님, 조교님과 테크니션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아 2020년 여름에 Rat IM, SC 약물 투여 더미를 완성했습니다. 현재는 새로운 더미를 제작하고 있어요.
Q. 동실동실과 더미제작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김희원: 본과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동기와 시드니 여행을 떠났던 저는 외국 수의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드니 수의과대학에 방문했습니다. 수상하게 기웃거리는 저희에게 한 조교님께서 다가오셨고, 한국 수의대생들이라고 말씀드리니 정말 친절하게 견학을 시켜주셨습니다. 실습실, 강의실, 해부학 표본실 등을 구경한 후 끝으로 실습 준비실에 들어갔는데 제 예상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아있는 동물 대신 실습용으로 제작된 더미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런 더미들이 실제로 많은 실습에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함께 계신 조교님께서 실습 더미 제작 담당이셨던 덕에, 더미를 어떻게 제작하는지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외국 수의대에서는 실험동물 수를 줄이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부럽기도 했습니다.
귀국하고 천명선 교수님을 찾아뵈어 시드니 대학에서 봤던 실습 더미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너도 만들어보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2학기가 시작된 후, 실험동물 복지에 관심 있던 동기와 후배들을 모아 10명이 ‘더미제작 소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40명의 부원이 속한 동아리가 되었네요. (웃음)
Q. 동실동실 더미제작팀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조민서: 먼저 회의를 통해 어떤 더미를 제작할지 결정합니다. 수의대 실습이 워낙 많다 보니 처음에는 학우들을 대상으로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거나 더미로 대체하면 좋을 것 같은 실습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참고했었어요.
김나영: 최근에는 이 설문 결과와 첫 번째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실습동물의 복지에 대한 기여도와 재현 가능성을 고려하며 다음 우선순위를 정했고, 현재 두 가지 더미를 선택해 팀별로 제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민서: 그다음에는 해당 실습과목의 교수님과 조교님께 연락을 드려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 제작한 더미를 실습 때 이용할 수 있을지 여쭤봅니다. 가능하다고 하시면 역할을 분담해서 실습에 이용되는 동물의 해부학적 구조, 실습 목표 및 방법을 파악합니다. 어디에 중점을 둘지 조사하고, 어떤 재료로 어떻게 제작할지 내부 회의로 정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참 많이 나와 상상해보지 못한 재료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웃음)
구매한 재료들이 도착하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나서 제작하고, 중간중간 교수님과 조교님들께 보완할 점에 대한 피드백을 받습니다. 더미를 완성하면 조교님들과 일정 상의를 거쳐 실습에 이용하게 됩니다.
Q. 더미를 만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없었나요?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요?
김희원: 처음에는 당장 더미 백 개라도 만들어버릴 듯한 패기로 시작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막막하더라고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만든다면 어떤 실습 더미를 만들어야 하지?’ ‘어떤 자료를 참고해야 하지?’ 등 질문투성이였던 제게 천명선 교수님께서 많은 조언으로 방향성을 제시해주셨어요. 어떤 실습에 더미가 필요한지를 알기 위해 수의대생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고, 참고할 만한 해외 더미 제작 사이트도 알려주셨죠. 그렇게 첫 어려움은 잘 극복했지만, 제작 단계에 들어선 후에도 정말 많은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학교에서 사용 중인 실습 더미가 거의 없었고, 해외 사이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듯이 해부학 공부부터 시작했어요. 그렇게 매주 만나 회의를 해가며 더미 디자인을 완성했지만, 실제 동물과 최대한 비슷한 재료를 찾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특히 랫드 모습을 재현할 쥐 인형이 가장 필요했는데, 쥐는 전 세계 어디서나 인기가 없는지 딱 한군데서만 팔아서 비싼 사이트에서 직구할 수밖에 없던 일도 있었고요.
안하림: 비교적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조합해 더미를 만들다 보니 이 재료들을 연결하고 고정하는 방법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바느질 동아리인가 싶을 정도로 바느질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접착제를 쓰다가 손이 엉겨 붙기도 했죠.
김희원: 더미를 만들다가 어려움이 생길 때면 조교님들께도 자문을 많이 구했습니다. 실제 랫드와 정말 비슷한지 알기 위해 실험동물실에 가서 랫드를 만져보기도 했고요. 힘든 과정을 거쳐 손수 만들어낸 더미들이라서 그런지 자식처럼 애착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추후 더미를 제작할 동아리 후배들을 위해 프로토콜도 상세히 만들어 놓는 중입니다!
Q. 작년 겨울 랫드주사더미를 약리학 실습에 활용했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알려주세요.
안하림: 우선 약리학교실 조교님들께 더미 구상에 대한 조언을 받았고, IM, SC더미의 시제품을 제작해오면 실제와 비슷한지, 실습에 활용 가능할지 피드백을 받기로 했어요. 시제품을 완성해 약리학교실 교수님 및 조교님들과 면담한 결과, 근육의 경도, 음압 확인, 보정 느낌 등이 실제와 비슷해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되었고 그해 약리학 약물 투여 실습에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실습 중에는 더미로 보정 연습, 주사 위치 파악, 주사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더미에 주사할 때는 약물은 주입하지 않고 음압을 확인하는 위주로 실시했고, 이렇게 더미로 연습한 후에 실제 마우스와 랫드에게 약물을 투여했습니다.
실습이 끝난 후, 참여했던 본과 1학년 학생들에게 피드백도 받았습니다. 보정 연습과 주사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되었고, 이 기술을 습득한 후 실제 동물에 실습하게 되어 동물의 고통 감소에 기여했다는 답변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연습 기회가 늘어나 교육적인 효과도 있었고, 학생들의 두려움과 불편함을 줄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어요. 저도 이 실습에서 처음으로 랫드와 마우스를 보정하고 주사기를 다룰 때 제 미숙함이 동물에게 더 큰 고통을 줄까 두려워하고 긴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실습에서 과거의 저처럼 긴장한 학생들이 더미에 몇 번이고 연습해보고, 자발적으로 IM더미에 IP연습도 시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직 더미가 실제 동물을 완전히 대체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더라도, 보조적 활용이 동물과 학생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더미 제작이 지속되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저희 활동을 지지해주시고 실습 활용에 협조해주신 교수님들과 조교님들께 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반면 피하가 늘어나는 느낌이 실제와 달랐던 점, 주사액을 투여할 수 없었던 점, 보정할 때 다리가 등 쪽으로 당겨지지 않았던 점 등이 아쉬움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추후 보완점과 관련해서는 PO더미의 필요성을 느낀 학생들이 가장 많았어요. 학생들이 이번 경험을 통해 더미의 필요성을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 저는 이 답변이 정말 반가웠어요. 현재는 학생들과 조교님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PO더미 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동물권을 우선시하는 학생들도 있고, 학습권을 중요시하는 학생들도 있어 실습모형에 대한 의견이 학생들 간에도 갈릴 것 같습니다. 더미 대체실습은 다소 예민할 수 있는 소재인데, 이런 부분이 갈등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되도록 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있을까요?
김나영: 저희도 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기에 더미 제작의 필요성이 동실동실 구성원만의 의견인 건 아닌지를 확인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대체하면 좋을 것 같은 실습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예상치 못했던 실습들도 순위에 있었고, 윤리성보다 현실성을 걱정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이에 저희는 동물권과 학습권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방향을 탐구했습니다.
그래서 동물복지를 개선할 여지가 많으며, 제작이 가능하고, 실습의 기회와 질을 향상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5개의 ‘랫드 약물투여 더미’를 기존 실습에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실습 적용 전에는 해당 학년에 충분히 공지하며 더미 이용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고, 실습 후에는 설문조사를 통해 갈등을 줄이며 더미 활용의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장려하려 노력했습니다. 더미 제작으로만 끝내지 않고 피드백 수렴과 보완의 과정을 꾸준히 거치다 보면, 학생들이 더미 대체실습에 대해 활발히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점차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수의대생에게 더미가 어떤 의미에서 중요성을 가진다고 생각하나요?
안하림: 수의대생이 실습에서 동물을 반복적으로 이용하다 보면, 동물의 고통과 희생에 대해 무뎌져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 쉬운 것 같아요. 더미는 ‘정말 어쩔 수 없는가?’나 ‘다른 방법은 없는가?’ 같은 의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꼭 더미가 아니더라도 3D기술이나 수술 참관 같은 대체 방안이 존재함을 생각해보게 하는 거죠. 동물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케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수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의대생 스스로 이런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더미의 활용이 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미를 이용하면 여러 번 연습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반복적인 연습으로 손에 기술을 익혀야 하는 외과 실습에 특히 효과적일 것 같아요.
Q. 동실동실 더미제작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조민서: 궁극적인 목표는 ‘3R’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습에 이용되는 동물들의 수와 고통을 줄이고 더미로 조금씩 대체해 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상대적으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동물들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고 동물 이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도 저희의 목표입니다. 실험과 실습에 쓰이는 동물들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있는 생명을 다룬다는 것에 무뎌질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고 싶어요. 학생들이 동물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사회에서도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더미 산업이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아직 해외에서도 더미 산업의 규모가 크지 않고, 국내에서는 사례를 찾기가 더더욱 어렵습니다. 지금 저희는 주로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더미를 만들고 있는데, 더미 산업이 더 커진다면 제작된 재료를 납품받아 실제와 더 유사한 더미를 전문적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고 나아가야 할 길이 멀지만, 앞으로 더 다양한 더미를 만들고 꾸준히 홍보하며 모든 동물에게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정세민 기자 sjung04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