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86. 전윤성(全允成, 1927~1997).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졸업, 미네소타 프로젝트 참여, 서울대 수의학과장, 수의과학연구소장, 녹십자 연구고문, 대한수의학회 회장, 태평양과학회(PSA) 상임위원, FAO 한국지부 축산전문위원.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1927년 3월 13일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말 부친의 사업지인 전라남도 광주에서 광주공립중학교(5년제)를 마치고 조선대학교 1학년을 수료한 후 1947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51년에 졸업하였으며, 195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7년 9월 ‘미네소타 프로젝트(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University of Minnesot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Project)’에 따라 출국하여 1962년 3월까지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에서 다시 석사(1959) 과정을 거친 후 박사(1962) 학위를 취득하였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까지 둔 처지에서 공부를 위해 4년 반이라는 긴 세월을 홀로 학업에 몰두하며 지냈다. 당시 미국에서 수의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재직 교수는 모두 3명이었으나 2명은 1960년대 초반 다시 미국으로 떠났고, 전윤성만 정년 때까지 학교를 지켰다.
1953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미생물학 조교로 시작하여 1954년 전임강사를 거쳐 1992년 8월 정년퇴임하기까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봉직하였다. 재직 중 농과대학 수의학과 시절 수의학과장(1968. 5.~1970. 5.), 수의과대학 시절에는 교무 담당 학장보 및 수의학과장(1977. 11.~1979. 11.)을 역임하였으며 1982년부터 4년간 수의과대학 부설 수의과학연구소 소장을 맡기도 하였다. 정년퇴임(1992. 8.) 후에는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1997년 5월까지 ㈜녹십자 연구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독감 백신 개발에 진력하였다. 1967년 ㈜녹십자의 전신인 ㈜극동제약이 용인 신갈에 설립될 때 설계부터 감리까지 깊이 관여한 인연이 있기도 하였다.
후학을 위한 대학원 교육에서, 석사 과정은 제약 없이 받아들였지만 박사 과정은 시설과 교육 체계가 선진화된 해외에서 이수하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의 지도로 석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비교적 많았지만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적었다. 그들 대부분은 해외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거나 연구 환경을 제대로 갖춘 국내 연구 기관이나 산업체 연구소에 근무하였다.
그는 박사 과정을 이수하면서 부전공으로 생화학을 선택하였다.
현대 미생물학에서 생화학 지식은 필수인데 생화학은커녕 화학 기초 교육마저 부실한 당시 국내 교육 때문에 유학 중에 겪어야 했던 고충을 감내하기 어려워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의 강의는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개조식이었으며 대부분의 설명은 (생)화학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자주 치른 퀴즈가 학생들에겐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강의다운 강의를 듣는 기분이 들게 하였다.
『가축 방역사(家畜防疫史)』, 『가축 질병(家畜疾病)』 같은 저서와, 「돼지에서 분리한 Yersinia enterocolitica의 생물형, 혈청형 및 항균제 감수성」(1992) 같은 논문을 포함한 전염성 가축 질병에 대한 많은 문헌을 발표하였다.
대한수의학회 부회장과 회장(1983. 11.~1985. 10.)을 비롯한 국내 학술 단체 활동뿐 아니라 태평양과학회(PSA) 상임위원, FAO 한국지부 축산전문위원 등 국제기구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작은 키는 아니었으나 비교적 가냘픈 인상을 주는 체격인 데다가 젊어서부터 흰머리가 많아 평생 공부만 한 사람 같은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그런데 의외로 낭만이 있고 유머 감각이 풍부하였으며, 고전 음악뿐 아니라 유행가에 대한 식견도 젊은이들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어서 1960년대 초부터 승용차(FIAT)로 서울-수원을 출퇴근하였으며 수년 후에는 수원 근교에 초지 수천 평의 목장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1997년 9년 11일 영면하였으며 용인 천주교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미망인 박재신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수의미생물학 전공(MIA)대학원생들을 위한 장학기금 1억 원을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하였다. 글쓴이_김선중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