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 School:소동물 임상실습 [1부] 실습 교과목
임상교과목 실습 만족도 평균 2.98점, 직접 할 수 있는 기회 부족 호소하는 학생 대다수
2~3년 전쯤 학교 내 교실 곳곳에서는 현판이 하나씩 달렸습니다.
“교육목표 : 수의사 윤리의식에 기초하여..(중략)..아래와 같은 목표를 지향한다.
졸업역량 (Day 1 skill)을 갖춘 수의사 양성
동물과 사람의 질병 예방 및 복지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의사 양성
(이하 생략)”
한창 이것들이 설치되었을 때, 교수님들은 졸업 후 바로 수의사로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Day 1 skill’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때는 본과 초반이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였지만,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지금, 제 자신에게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6개월 후에 Day 1 skill을 가진 수의사가 될 수 있을까?’
나름 외부실습도 몇 번 해보고 학교에서 듣는 수업들도 열심히 참여해왔지만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남은 한 학기동안 열심히 배운다고 하더라도 국가시험 준비와 병행하기 때문에 지금의 지식, 경험보다 드라마틱하게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과연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지, 제 동기들과 다른 학교 본과 4학년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이 프로젝트 기사를 쓰게 됐습니다.
들어가며
수의과대학은 수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합니다. 즉, 원칙적으로는 수의대 교육과정만으로도 필드에서 활약할 수 있는 수의사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커리큘럼이 정착되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해 보입니다.
미국수의사회(AVMA) 인증을 받은 서울대를 포함하여 10개 대학 모두 1주기 수의학교육인증을 받았고 이로 인해 시설과 교육제도의 개선이 어느정도 이뤄졌으나, 정작 학생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본지 2021년 1월 11일자 ‘[젊수 카드뉴스] 수의학교육인증’ 참고).
어떻게 보면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을 다룰 수 있는 직업이 수의사인만큼 소동물임상 뿐만 아니라 대동물, 야생동물, 더 나아가 비임상 분야까지 수의대에서 배우는 모든 실습에 대해 10개 학교별로 비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았습니다. 학생들이 관심있는 분야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표본이 쌓이지 않아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수의대생들의 희망 진로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소동물 임상의 실습교육으로 주제를 한정했습니다(본지 2019년 12월 11일자 ‘[2019 수의대 설문조사③] 더 심해진 반려동물 임상 선호 현상’ 참고).
설문 참여 : 전국 10개 수의대 본과 4학년 재학생 64명
설문 기간 : 2021.08.02 (월) ~ 2021.08.06 (금)
임상 교과목 실습 만족도
먼저, 소동물 임상과목인 외과/내과/영상/임상병리 실습은 모든 학교에서 진행했습니다(외과/내과/영상/임상병리 실습과목이 본4 선택과목으로 분류된 경상대에서는 실습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별 정규 실습시간을 비교해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배정한 실습시간이 비슷했고, 배정된 실습 시간보다 더 많이 진행하는 학교도 있고, 단순히 실습 시간만으로 비교하기에는 실습내용의 차이도 있기에 (가령 보기만 하는 6시간보다 직접 해보는 2시간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요?) 실습 내용의 만족도 위주로 조사했습니다.
전체적인 정규교과 실습의 만족도는 평균 2.98점으로 불만족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
그 이유로는 ‘실습시간에 직접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37%)’가 가장 많았고 ‘실습시간에 별로 배우는게 없는 것 같다(29.6%)’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실습시간에 이론 수업을 한다, 시간 떼우기 식으로 실습 수업을 진행한다 등의 지적이 나왔습니다.
과목별 만족도에서는 영상실습이 3.38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외과/임상병리 3.12점, 내과 3.05점 순이었습니다.
과목별로도 실습 교육에 다양한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영상실습에서는 ‘개 보정만 했다’, ‘실제 필드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사진을 보고 판독하는 것인데 히스토리나 외적 정보가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 사지 관련 문제일 때 보행평가에 대한 문제가 주어지지 않았다’ 등이 있었습니다.
외과실습의 경우 대부분 ‘한정된 기회에 비해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보기만 했다’, ‘수술을 참관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보지 못했고 학생이 주도적으로 하는 실습이 없었다’ 등 학생들이 직접 할 수 없었던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내과실습은 ‘실습 시간에도 이론을 배운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습니다. ‘TPR 측정 외 할 일이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해보는 외과에 비해 내과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등이 있었습니다.
실습시간에 무엇을 가장 많이 하는지 보면 ‘대학원생 선생님들이 하는 것을 관찰만 한다’ (43.6%)로 가장 많았습니다. 실습견 (38.2%), 동물모형(16.4%)을 이용한 실습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과목별 만족도에서 ‘직접 하는 기회의 부족’이 왜 가장 많이 언급되었는지 알 수 있네요.
실습시간에 배우고 싶은 내용으로는 채혈과 주사(IV/IM/SC 등), 응급 실기(CPR, 기관내삽관, 부목고정 등)가 가장 많았습니다.
심혈관질환 평가(심폐음 청진, 심전도기 사용, 심장초음파 등), 외과 시술(국소 마취, 드레싱, 봉합 등)도 다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병력수집 및 기초검진(보정, TPR 측정 등), 영상 검사(X-Ray, MRI, CT 등), 비뇨기과 시술(요 카테터 삽입 등), 신경계 검사(운동평가, 반사 검사 등)가 뒤를 이었습니다.
정규교과목 실습이 필드에서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은 평점 3.65를 기록했습니다. 유용할 것이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학생들은 실습교육의 부족을 지적했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 내 것으로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거나, 학교는 맛보기 수준에 그치고 실제 필드에서 제대로 배운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가르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학생이 외부에서 배워오길 바라는 듯 하다거나, 학생이나 현장의 니즈 변화에 대학이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외에도 전체적인 임상교과목 실습에 대한 개선점을 자유롭게 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역시 학부생에게 기회를 많이 줘야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만 대학들이 각자 다른 교육여건을 가지고 있는 만큼, 대학별로 눈에 띄는 의견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강원대 : 학생은 많고 교원과 실습자재는 부족하니 학생 한명당 돌아가는 실질적인 실습 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진다. 외부 실습을 개인적으로 나가지 않고서야, 교내 실습만으로는 졸업하고 수의사로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겠다.
건국대 : 병원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적극적인 학부생 지도가 가능한 교수 또는 대학원생 수도 제한적이고, 내원 케이스 또한 언제는 많고 언제는 적어서 불규칙적이다.
교수님들께선 학부생들에게 경험의 기회를 많이 주고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싶어하시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뒤따른다.
로컬병원 실습 비중을 늘리거나 다양한 더미모형을 활용한 실습을 기획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학교병원 실습의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경북대 : 배우는 술기의 종류가 늘었으면 좋겠고, 코로나 등의 피치 못한 상황에서 최대한 실습에 가깝게 실습을 대체할 만한 활동이 있어야 한다.
경상대 : 실습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실습견으로 실습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서울대처럼 모형으로 하기에는 대학교 예산이 없다. 봉합 연습도 겨우 할 수 있었다.
서울대 : 없음
전남대 : 실습일수 자체가 부족하다. 일단 실습일을 늘리고 수업 때 배운 내용을 토대로 로컬에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북대 :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임상실습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에 해당되는 사항인데 임상과목과 그 실습에 필요한 시간에 비해 커리큘럼 상 시간이 부족하여 비임상과목과 임상과목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것 같다.
최소한 실습을 통해 기초부터, 개나 반려동물을 다루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실제 개를 이용한 실습은 반드시 필요하다. 배울 수 있는 깊이가 다르다.
1. 구체적인 실습 커리큘럼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2. 필드에서 꼭 알아야 하고 많이 경험하게 될 내용들을 비중 있게 실습하였으면 한다.
3. 임상실습을 이론수업이나 과제 등으로 대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주대 :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를 못하고 이론수업 시간도 부족하여 실습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교과과정 개편이 시급하다. 불필요한 예과 수업을 전부 바꿔야한다.
충남대 : 학교에서는 실습견도 충분하지 않고, 많은 학생들이 기술이 익숙해질 때까지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 상태로 졸업을 해서 바로 동물병원 인턴을 가서 모든 것을 배운다면 수의대 재학 6년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생각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한계만 느껴진다.
충북대 : 체험 수준이 아닌, 각 학생이 충분히 실력을 기를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해서 실습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외에도 많은 의견들이 있었지만 기사에 모든 의견을 담을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한 응답자는 ‘10개 수의과대학이 공통적으로 필수 임상실습 항목을 정하고, 해당 내용은 모든 수의대생이 직접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는 국가시험에 포함되어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수의교육학회는 ‘수의 기본임상실기 2020’을 마련한 바 있습니다. 이를 대학 인증기준에 반영하고, 2027년까지 국가시험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본지 2020년 11월 16일자 ‘수의사라면 할 줄 알아야 할 임상실기 54개 항목 선정’ 참고).
저 역시 위 의견에 공감했기 때문에 설문조사에도 위 임상실기 중 몇 개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 결과 54개 기본수의임상실기 중 절반 이상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38.1%에 그쳤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배정된 임상실습 시간만으로는 수의사가 꼭 알아야 할 술기를 배우기에는 부족하며, 모두 배운다고 하더라도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Day 1 skill을 가진 수의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모든 학교에서 위 임상술기를 배울 수 있도록 실습시간과 인력 및 재정지원 등 환경이 먼저 만들어져야 하고, 국가시험에 실기평가가 도입된다면 미래에는 정착되리라고 봅니다.
[2부] 임상 로테이션으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이성주 기자 elijahlee.ve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