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99. 최정옥(崔晶鈺, 1941~1992). 전남대학교 수의학과 졸업, 가축위생연구소 근무, 호주 시드니대학교 유학, 전남대학교 수의학과 조교수 및 학생과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941년 10월 3일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항촌리에서 최규천의 3남 중 2남으로 출생하였다.
도암초등학교와 도암중학교를 거쳐 1960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같은 해 전남대학교 수의학과에 입학하여 1964년 3월에 졸업하였다.
1965년 3월에 농촌진흥청 농촌지도직(축산직)에 채용되어 1969년 1월 말까지 농촌진흥청 광양농촌지도소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가축위생연구직으로 직종을 전환하여 1969년 2월부터 안양 소재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 계역과에서 근무하였다(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조류질병과, 김천 소재).
가축위생연구소 재직 중 콜롬보 계획(Colombo Plan, 아태 지역 개도국들의 빈곤 해결과 경제 개발을 위한 협력 계획)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1975년3월부터 1980년 2월까지 호주 시드니대학교에서 학위 과정을 거쳐 닭의 바이러스성 종양병인 마렉병(Marek’s disease)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2년 가축위생연구관으로 승진하였으며 1983년에는 농수산부장관으로부터 연구상을 받기도 하였다.
1984년 9월 모교인 전남대학교 수의학과 조교수로 전직하였다.
전남대학교 재직 중 소속 대학인 농과대학 생물공학연구소 연구기획부장(1986. 7.~1988. 3.)을 겸하였으며, 1988년 3월 소속 학과가 농과대학 수의학과에서 수의과대학으로 승격한 뒤에는 1년간 학생과장을 겸하였다.
신장 158센티미터, 체중 52킬로그램의 왜소한 체격으로 징병 신체검사에서 체격 등급 5급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게다가 가축위생연구소 근무 초기에 원인 모를 통증으로 자주 고통을 겪다가 결국 담석증 수술을 받고서야 통증에서 벗어났다.
형이나 동생은 모두 보통 체격인데 반하여 유난히 왜소했던 것도 오랜 기간 담석증을 앓은 탓으로 짐작되며, 통증에서 벗어나자 특유의 유머감각이 살아나기도 하였다. 수염을 붙이고 모자를 쓰면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할 정도로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친화력이 좋았다. 이에 일화 두어 개를 소개한다.
그는 시드니에서, 필자는 브리즈번에서 유학하던 1975년경으로 기억된다. 두 도시 간의 거리가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였는데, 그가 시간을 내 브리즈번으로 놀러온 적이 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려고 파자마를 입은 모습을 보니 엉덩이 쪽에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더 넓게 불에 탄 구멍이 보였다. 추워서 난로를 쬐다가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는 신혼 초에 첫딸 지향을 본 지 한 달여 만에 가족과 헤어져 유학길에 올랐다. 호주에 도착한 지 1년 반쯤 되었을 무렵, 유학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국에 다녀올 수 있는 행운이 호주 정부로부터 주어졌다. 그런데 너무 기쁜 탓이었을까! 시드니 공항에 나와 탑승 수속을 하려다가 그제야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는 주로 닭 전염병을 연구하였고 17편의 학술 논문과 17편의 종설, 24편의 연구 보고서를 집필했으며, 학회 발표를 15회 하였다.
그런데 애통하게도 1992년 3월 26일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젊은 나이인 51세에 세상과 이별하였다.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천주교 묘역에 안장되었으며 부인 김매남과 슬하에 1남(진영) 2녀(지향, 지윤)를 두었다. 글쓴이_김선중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