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편 임상교육협의회, 시뮬레이션 랩·e로그북 새 방법론 조명
서울대 시뮬레이션 랩·벳노트 프로그램 소개..임상실기 매뉴얼 집필 참여 독려도
한국수의임상교육협의회(임교협, 회장 서강문)가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대학 내 임상교육 발전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시 고민하는데 주력한다.
임교협은 20일 경북대 동물병원에서 2022년도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전국 수의대의 임상교수진 30여명이 참석했다.
서강문 협회장은 “임교협이 처음 발족한 2003년에는 국내 수의사를 위한 국제 임상컨퍼런스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이제는 수의사 교육이 자리잡은 만큼 대학의 임상교육 발전을 고민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14개 스테이션 시뮬레이션 랩, 선택과목도 개설
그 일환으로 임교협은 이날 서울대 수의대가 도입한 시뮬레이션 랩과 로테이션 관리 프로그램 벳노트(Vetnote)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문을 연 시뮬레이션 랩은 학생들이 주요 임상실기를 스스로 연습해볼 수 있는 각종 기자재와 모형(dummy)을 구비했다.
신체검사부터 주사, 수술기구, 봉합, 심폐소생술, 심폐음 청진, 붕대법 등 기본실기 14종을 스테이션별로 구성했다.
올해부터는 시뮬레이션 랩을 활용한 모의 연습을 정식 선택과목으로 신설했다. 서강문 교수는 “각 교수가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개설해 임상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계부터 리모델링, 기자재 구입 등에 1억 3천만원이 소요됐다. 스마트 강의 실습 시설을 지원하는 본부 예산을 일부 활용했고, 대학별로 재활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여부에 따라 예산은 달라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인형 서울대 교수는 학생 동아리 ‘동실동실’과 함께 개 암컷 중성화 더미를 제작했다. 이를 활용해 오는 여름방학 본과 3학년 재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난소자궁절제술 실습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반려동물 임상의 Day 1 스킬의 기준 중 하나가 ‘난소자궁절제술을 단독 수행할 수 있는가’이다”라며 “별다른 보상도 없는 일이지만, 학생들이 혼자 난소자궁절제술을 집도할 수 있게 되는 날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벳노트, 임상로테이션 배운 것 기록하고 자기평가·교수평가
도구 좋아도 안 쓰면 무용지물
본과 4학년 임상로테이션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프로그램(e로그북) 벳노트도 눈길을 끌었다. 벳노트는 서울대 출신으로 현재 의료인공지능 개발기업에서 근무하는 프로그래머인 이홍석 수의사가 개발했다.
벳노트는 기본적인 과목별·학생별 실습일정뿐만 아니라 각 로테이션 과목별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할 수 있는 루브릭을 탑재했다. 학생들도 스스로를 평가하고, 담당 교수도 각 실습생을 평가해 비교할 수도 있다.
학생들은 매일 진료에 참여하며 접한 내용을 벳노트에 기록한다. 일과시간에 진료에 참여하느라 짬을 내기 어려우면 밤에라도 입력해야 하는 구조다. 교수진이 이를 보고 첨삭할 수도 있다.
이인형 교수는 “’버겁다’는 학생들의 반응도 있지만, 교수가 강의하고 학생은 듣고 시험보는 익숙한 공부형태가 아니라서 그렇다”면서 “당장 진료에 참여하면서 여러 과목에서 배운 지식을 떠올려 통합적으로 응용해야 하는데 익숙치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아무리 좋아도 제대로 써야 의미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과목별로 벳노트를 잘 활용하는 교수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벳노트는 학생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도구이자 학습성과를 평가하는 좋은 툴이지만, 교수진이 관심을 갖고 활용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숙제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꼬집었다.
54개 항목 임상실기 매뉴얼 집필, 대학 교육에도 반영돼야
올해 한국수의과대학협회 교육위원회는 주사, 채혈, 보정, 수술절차 등 수의대생이 반드시 익혀야 할 임상실기 54개 항목을 대상으로 세부 매뉴얼을 만든다.
연구책임자인 이기창 전북대 교수는 매뉴얼 제작 과정에서 내과, 외과 교수협의회 의견수렴을 거쳐 조정된 항목을 소개했다.
이기창 교수는 “올해는 각 임상과목별 교수협의회장을 함께 모시고 항목 수정을 포함한 매뉴얼 작성을 진행하고 있다”며 “6월까지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의학교육계에서는 이미 기본임상술기지침을 10년 이상 활용하고 있다. 지침에 따라 술기를 교육하고, 의사 국가시험에서 실기평가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교육과 평가 모두 모형을 활용한다. 모든 의대생이 받아야 할 실기교육과 국가시험을 실제 사람에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향을 수의학 교육에도 적용한다면, 결국 더미를 활용한 실기평가를 도입하고 각 대학에 이를 위한 시뮬레이션 랩을 갖추는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이기창 교수는 가장 쉽고 중요한 술기부터 우선 교육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매뉴얼을 만들었다면 실제로 학생이 해볼 수 있고, 평가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사, 채혈, 봉합 등 비교적 간단하고 흔한 실기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서강문 협회장은 “임상실기지침이 나오면 대학별로 시험에 출제하고, 인증원의 평가기준에도 반영하는 등 정책적 실천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