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농장과 친해지기` 수의과대학생 농장동물 기초과정 첫 발
‘사료 주고 우유 짜고’ 농장과 친숙해질 기회 따로 마련..연수원 자체 목장 필요 지적
수의과대학생이 축산농장에 친숙해질 수 있는 실습교육 지원프로그램이 처음으로 열렸다. 매년 여름 평창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에서 열리는 수의과대학생 농장동물교육 프로그램에 ‘기초과정’이 올해 신설됐다.
평창 연수원에서 18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진행된 기초과정에는 전국 10개 수의과대학에서 20명이 참여했다. 예1~본2 재학생을 대상으로 개설된 과정에는 9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수의대생들이 농장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보다 깊이 있는 농장동물 임상 교육을 위해서는 연수원에 자체 목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 자체 목장을 보유한 수의과대학은 단 한 곳도 없다.
‘소를 만져보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수의대생은 농장동물이 낯설다
2017년부터 농식품부 지원으로 시작된 평창 농장동물교육 지원사업은 수의대생들 사이에서 인기 실습으로 자리잡았다.
길게는 10박 11일에 이르는 합숙교육인데다 자부담금도 만만치 않지만 소, 말, 돼지, 가금 등 주요 가축에 기본적인 임상실기를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로 각광받고 있다.
이번 기초과정은 임상실습 대신 축산농장에 친숙해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본과 3·4학년을 선발하는 심화과정과 달리 본2 이하의 저학년만 선발했다.
최근 수의대생이 농장동물 자체가 낯설다는 점은 농장동물 수의사 진로를 택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도시에서만 살면서 소나 돼지를 본 적도 없는 채로 수의과대학에 들어왔지만, 수의대에서도 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본지가 2019년 당시 재학생 1,3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농장동물을 사육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14%에 그쳤다. 본인 가정에서 직접 반려동물 사육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75%에 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번 기초과정에 선발된 20명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친지를 포함해 소, 돼지, 닭 등 가축을 기른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 ‘소를 만져보고 싶어서 지원했다’는 학생도 있었다.
농장동물 임상이 축산농장의 경영에 직결된다는 점도 지목된다. 농장이 어떻게 가축을 키우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아야 농장동물 수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료 주고 우유 짜고
농장은 어떻게 운영되나 체험 교육
이번 기초과정에서 학생들은 서울대 평창캠퍼스에 위치한 농업생명과학대학 목장에서 목장 직원의 업무를 체험했다.
송아지부터 비육우까지 사육단계에 맞춰 사료와 건초를 급이하거나, 우유를 짜서 송아지에게 급여했다. 농장에서 쓰는 건초 사일리지를 트랙터로 옮겨 보거나, 착유실 주변의 분변을 치우고 청소하는 일까지 포함했다.
외부 양돈농장 방문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 상황으로 인해 여의치 않았지만, 평창캠퍼스 내의 스마트 양돈농장 연구시설을 견학했다. 농생대 목장의 계사도 방문해 계란도 줍고, 양계장 시스템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이론 교육도 병행됐다. 농장이 어떻게 가축을 키우고 돈을 버는지, 국내 축산업계의 현황은 어떠한지 소개하는 특강이 이어졌다. 평창캠퍼스 국제농업기술대학원의 교수진이 강사로 나섰다.
김단일 서울대 교수는 “수의대생들은 농장 현장에서 쓰는 용어부터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며 “여러 축종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참가한 학생들도 임상실습에 초점을 맞춘 심화과정에서 분리한 체험교육이 마련된 것에 만족감을 표했다. “아직 진로를 정확히 정하지 않았더라도 농장동물 분야를 체험하고 싶은 학생들이 많다”며 기초과정이 좋은 경험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자체 목장 보유한 수의대 없다
수의대생 교육 위한 자체 목장 필요하다
조영식 회장 기부금 마중물로..’정부 예산도 필요’
김 교수는 “기초과정을 처음 운영하면서 연수원의 자체 목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 절실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농생대 목장의 도움으로 기초과정을 신설할 수 있었지만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연수원은 건물 옆 작은 우사에 소 15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건강한 소에서도 가능한 보정, 채혈, 주사 등 기본 임상실기를 소수 인원이 연습할 수는 있지만 더 깊은 수준의 교육은 어렵다.
가령 전위 수술 등 각종 질병에 대한 실전적인 실기를 교육하려면 ‘환축’이 필요하다. 한우에서 흔한 송아지 설사병을 교육하려면 한우 어미도, 한우 송아지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체 목장에서 일상적으로 번식을 실시하고, 그 과정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도태를 앞둔 아픈 가축이 도축장에 가는 대신 연수원 목장으로 와서 실습에 활용되는 모습도 그릴 수 있다.
임상교육은 대학별로, 프로그램별로 비정기적으로 열리지만 소는 계속 거기에 있어야 한다. 환축도 평소에 확보해 두어야 한다.
김 교수는 “기본·심화과정에 참여한 수의대생들의 피드백을 보면 ‘진짜 목장을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다. 하지만 어떤 외부 목장도 수십명의 학생을 받아줄 수 없다”며 연수원이 자체적으로 목장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는 자체적으로 목장을 보유한 수의과대학이 단 한 곳도 없다. 서울대 평창 대동물병원을 제외하면 농장동물 진료를 활발히 진행하는 대학 동물병원도 없다.
농장동물을 볼 수도, 진료하는 걸 보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농장동물 수의사가 원활히 양성되길 기대하긴 어렵다.
연수원은 자체 목장을 마련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창캠퍼스 목장 측의 협조를 받아 연수원 바로 옆 목초지에 부지를 마련하고, 100마리 이상의 소를 보유한 별도의 목장을 짓는 것이 청사진이다.
최근 조영식 에스디바이오센서 의장이 모교에 기부한 기금 중 일부를 마중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설립 예산도 필요해질 전망이다.
김단일 교수는 “농장동물 수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