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수의사법」 시행령에 따른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를 폐지하고,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따른 중앙가축방역심의회에 편입시키는 행정예고안을 공고했다.
이후, 대한공중방역수의사협회,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 수의미래연구소가 공동으로 반대 연서명을 주도했고, 전체 수의과대학생의 약 44%인 1,365명의 수의대생이 연서명에 참여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해당 행정예고안을 재공고하는 등 독불장군처럼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본 기고를 통해 수의과대학생으로서 수의학 교육에 대한 고충을 말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입법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선진적인 수의학 교육을 받을 권리가 없는 것인가
국가에서 공인하는 면허와 관련된 고등교육은 국가시험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교육부 대학알리미의 표준분류체계에 의해 의학계열로 분류되는 수의학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수의사 국가시험은 크게 기초, 예방, 임상수의학, 그리고 수의법규 및 축산일반을 다룬다. 국내 10개 수의과대학의 교육은 이 순서를 따라 학생들을 교육한다.
여담으로 국내 수의과대학의 본과 교육과정은 1969년 서울대 의과대학의 본과 교육과정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의사 국가시험은 1941년 시험제도가 처음 도입된 이래 큰 변화가 없었지만, 2011년에 일부 통합형 문제가 출제되는 등 최근 들어 개선이 시도되고 있다. 당시 문제은행형 출제, 실기시험 도입 등의 개선 방안이 함께 제시되었지만, 인력이나 예산 등의 현실적인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다.
수의사 국가시험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수의사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 증가에 따라 수의학 교육은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심심찮게 들리는 실습예산 부족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수의학 교육환경은 휘청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물의료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의학 교육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교육환경을 이끌어가야 할 국가시험이 개선되어도 모자랄 판에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 폐지가 한 숟갈 더해지니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가축방역심의회에 수의사 국가시험을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은 수의사의 역할을 가축방역으로 한정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가? 수의사의 역할이 한정되면 수의사 국가시험이 변화할 것이고, 수의학 교육도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수의사는 가축 질병을 주력으로 다루었지만, 지금은 농장동물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야생동물, 해양동물, 실험동물 등 사람이 아닌 모든 동물에 대한 수의료행위를 아우른다. 그뿐만 아니라 MERS, 코로나19, 원숭이두창 등 인수공통감염병 및 역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공중보건 분야에서 수의사의 역할도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약 3년간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 신속 항원 진단키트나 백신도 초대 CEO가 수의사 출신인 기업들에서 개발된 점을 미루어보면, 이미 수의사가 국제보건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반려동물 가구가 급증하여 동물과 사람이 접촉하는 빈도가 잦아지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수의사의 현주소는 원헬스(One Health)적 관점에서 과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급진적인 세계적 흐름에 신속하게 편승해도 모자랄 판에, 수의사의 주무부처인 농식품부가 오히려 수의학 교육의 퇴보에 앞장서고 있다는 현실을 수의과대학생으로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농식품부는 과연 수의사의 존재감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인지, 예비 수의사가 선진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자격은 있는지, 그리고 청년들의 꿈과 잠재성을 억누르고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미 옆집에 밥상이 차려져 있다
수의사 국가시험을 담당하는 검역본부 기획조정과 소속 공무원은 1명인 데다 국회 대응 및 국정감사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수의사법 시행령」 제4조에 따르면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는 위원장 1명, 부위원장 1명, 13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제9조의2에 따르면 시험과목별로 출제 및 채점을 담당할 사람 2명 이상을 위촉할 수 있다. 여기서 부위원장인 검역본부 기획조정과 1명이 국시원에서 6개의 부서로 분담한 실무를 모조리 맡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 농식품부는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를 폐지하여 중앙가축방역심의회에 수의사 국가시험 운영권을 위임하겠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보쌈전문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달라는 억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반면, 보건의료계열의 국가시험은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의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제도를 운영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국시원은 오로지 보건의료인의 국가시험을 위해 경영기획, 출제운영, 시험운영, 실기시험, 연구개발 등의 부서와 131명의 정규인력에 의해 운영된다. 1992년에 재단법인으로 설립되었으며, 2015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법」이 시행되면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국시원은 윤리지침에 따라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직종별 시험위원회 회의내용뿐만 아니라 명단까지 모두 공개하고 있다.
삼겹살을 굽고 싶다면, 보쌈집보단 소고기구이 전문점을 찾는 것이 낫지 않은가?
수의사 국가시험,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위탁할 수는 없나
농식품부가 수의사 국가시험위원회를 통폐합하려는 이유를 전혀 수긍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는 636개 정부위원회 중 정비대상 위원회 목록 246개를 일괄적으로 발표했다. 주관부처별로는 농식품부 소속 위원회가 65%를 차지했다. 정비대상 위원회 목록을 살펴보면, 각 부처 내부에서만 통폐합되고 주관부처 간 협업하여 통합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결국에는 정부 부처의 이기적인 행정편의주의와 근시안적인 정비실적에 눈이 멀어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닐까.
「수의사법 시행령」 제12조의3에 따르면, 동물보건사 자격시험은 해당 시험의 관리업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다고 농식품부 장관이 인정하는 전문기관에 위탁할 수 있지만, 수의사 국가시험은 「수의사법 시행령」 제11조에서 ‘수의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행정기관’으로 명시되어 있다. 수의사 국가시험은 농림축산검역본부만이 관리할 수 있지만, 동물보건사 자격시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실기시험 도입은 수의사보다 동물보건사 자격시험에 먼저 적용될지도 모른다.
한편,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법」 제6조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사업과 그 밖에 보건의료인 국가시험과 관련하여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수의사는 법적으로 보건의료인이 아니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의학계열로 인정했다는 점과 국제보건에서 수의사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근거로 국시원이 수의사 국가시험을 관리할 명분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농식품부에 고한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힘쓰는 농식품부를 위해서, 국제보건과 동물의료의 발전을 위해 늦은 밤에도 노력하는 수의사들을 위해서,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다방면으로 활동할 수의대생들을 위해서, 「수의사법 시행령 제11조」에 ‘그 밖에 수의사 국가시험의 관리업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다고 농식품부장관이 인정하는 관계 전문기관’이라는 예외 조항 개정을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