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목 평가·이론시험·실기시험’ 수의사 국가시험 다변화 제언
평가목표·문제은행 확립, 전문기관 이관 정책 건의
2019년부터 2차에 걸쳐 진행된 수의사 국가시험 개편 연구가 마무리됐다.
개선방향은 크게 전문기관으로의 시험 관리 이관, 기초수의학시험·필기시험·실기시험 3종으로의 다변화, 문제은행 등 출제 시스템 개편으로 요약된다.
개편 연구를 진행한 건국대 남상섭 교수팀은 6일 건국대 수의대에서 연구성과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평가목표 만들어 출제자·응시자 공유해야
문제은행 구축·운영 1억원이면 시작할 수 있다
올해 수의사 국가시험은 5일 뒤인 1월 13일에 열린다. 국가시험 문제는 그 해 출제위원으로 뽑힌 교수진이 시험 직전 며칠간 합숙하며 출제한다. 일종의 벼락치기인 셈이다.
해부·조직학에서 36문항, 병리학에서 20문항 등 세부교과목별 문항수는 배분되어 있다. 하지만 영역별·축종별 출제비중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 문항 배분이나 난이도, 적절성을 사전에 검증할만한 시간적 여유도, 인력도 없다.
그러다 보니 회차별로 어떤 교수가 출제하느냐에 따라 한 과목 내에서도 출제 영역이 들쑥날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상섭 교수는 “의사 국가시험이 실기·필기 평가목표집을 제시하고 있는데 반해, 수의사 국가시험에는 평가목표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시험 문제가 수의사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묻고 있는지(타당도)를 담보하려면, 사전에 평가목표를 제시하고 출제자와 응시자가 해당 자료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2019년 한국수의과대학협회 교육위원회가 확립한 ‘수의학교육 졸업역량 세부학습성과’를 바탕으로 국가시험 평가목표를 명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시 문제를 출제할 때 어떤 학습성과를 측정하려는 것인지 명시하도록 출제양식도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인수 건국대 수의대 학장은 “(수의사) 공무원 시험 출제 요청을 받아도 최소 2개월 정도는 시간을 준다. 출제근거도 명시해야 하고, 제가 낸 문제를 다른 분이 검증도 한다”고 말했다. 수의사 국가시험 출제방식이 수의사 공무원 선발시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진환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 회장도 “국가시험 학습목표가 있다지만 학생들은 알지 못한다. 여전히 음성적으로 복원된 기출문제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문제은행 도입과 출제인력 확대, 검토인력 별도 구성 등을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남 교수는 “의사 국가시험 문제은행 구축에 1억원, 유지에는 1,5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전했다. 여기에 출제위원 관리와 실제 출제에 대한 수당 등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 교수는 “평시에 출제하고, 시험을 앞두고서는 은행에서 뽑은 문제를 다듬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이론·실기 3단계로 다변화에 공감대
정부 조직개편으로 동력 생길까
연구진이 지난해 8~9월 실시한 국가시험 관련 설문조사에는 수의대생·교수진·수의사 1,429명이 참여했다.
응답자들은 ▲전문기관으로 국시 운영 이관 ▲기초과목 별도 평가(기초수의학종합시험) ▲실기시험 시행 등을 개선 방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이론시험만 있는 국가시험을 기초수의학종합시험·이론시험·실기시험 등 3종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과목에 대한 단계별 평가 도입 필요성에는 응답자 77%가 공감했다. 이를 통과해야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는 자격시험 형태에 무게를 뒀다.
실기시험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86%로 더 지배적이었다. 수의대의 실기교육 표준화·강화의 동력이 될 것이란 기대에 기반하고 있다(본지 2022년 11월 18일자 수의사·수의대생·수의대교수 86% 찬성 ‘국시 실기시험’, 어떻게 도입할까 참고).
남 교수는 “(실기시험 도입 등이) 임상을 하지 않을 학생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의견은 끊고 가야 한다”며 “수의사의 정체성은 동물진료에 있는만큼 국가시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전문기관 이관,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의 검역본부-국가시험위원회에는 변화를 추진할 동력이 없다는 것이 연구진의 지적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2016년 2016년 검역본부 정기감사에서 수의사 국가시험 민간 이관을 요구하면서, 자체적인 개편이나 예산 확보가 어려워졌다”면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는 이관을 거절했고, 농식품부도 동물보건사 시험이 운영될 때까지는 검역본부 관리를 유지하려는 방침이었다”고 전했다.
연간 550여명이 보는 시험으로는 별도 전문기관을 운영할 경제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물보건사 시험을 함께 관리하고, 수의사 국가시험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청사진이 나오는 이유다.
남 교수는 “현재 준비 중인 동물의료산업발전계획에도 국가시험 관련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라며 “연구 과정 중에 만난 국가시험위원회나 관련 공무원의 관심도 높아졌다는 점에서 변화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의뢰한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 김재홍 원장은 “연구 결과에만 그치지 않도록 관련 제언을 정리해 농식품부와 검역본부 양쪽에 정책을 건의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