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후기 공모전|대상] 기생충 실습과 함께한 공모전·해외학회 발표기

2022 실습후기 공모전 ‘대상’ - 충북대 수의대 윤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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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벳 학생 기자단 8기 활동은 제 대학생활 중 가장 열심히 활동했고, 아직도 감사하고 있는 경험입니다.

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수의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고, 특별히 관심이 생기는 주제는 취재를 하며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 실습 또한 학생기자단 활동을 했기에 시작이 가능한 활동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취재 <KOPRI, 남극에 다녀온 수의사> 인터뷰를 위해 충북대 의대 최성준 교수님을 뵙고, 야생동물 기생충이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과 함께 교수님이 살아오신 삶에 대한 존경과 호기심으로 지원하게 됐습니다.

제 경우는 교수님께 사석에서 직접 말씀드리고 기간을 바로 정해서 실습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모집하는 실습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절차는 따로 없습니다.

지원을 원하시는 분들은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 실험실 최성준 교수(vetazmo@gmail.com)에게 연락을 드리면 됩니다.

 

야생동물 기생충을 연구하고 있는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 연구실에서 2021년 여름방학 4주 동안 실습을 진행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으로서 최성준 교수님을 인터뷰한 이후 야생동물 기생충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다 직접 실습을 부탁드렸다.

실습을 통해 경험했던 것들이 꽤 많아서, 큰 흐름으로 나눠서 얘기해 보려고 한다.

 

I.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 연구실 실습

2021년 8월 충북대 의대 기생충 연구실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실습 프로그램이 체계화되어 있지는 않아서 그날그날 교수님의 일정과 연구실의 상황에 따라 실습 내용이 유연하게 짜였다. 최대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배워갈 수 있도록 교수님이 많이 배려해 주셨다.

주로 교수님을 보조해 야생동물 사체로부터 기생충을 샘플링하고 관찰하는 일을 하게 됐다. 실습 첫 주에는 야생동물센터를 방문해서 사체를 받아오는 것부터 부검하는 법, 기생충을 다루는 법 등을 배웠다.

부검 시에는 먼저 이(louse), 진드기, 벼룩 등의 외부 기생충을 꼼꼼히 살핀 후 내장 중에 보고자 하는 기생충이 있는 장기를 위주로 내부 기생충 검사가 이루어진다. 주로 소화관이나 간을 살짝 으깨듯 압력을 가하는 스퀴징(squeezing)을 여러 번 거쳐 시브(sieve)를 통해 거르는 작업을 반복했다.

기생충을 다룰 때에는 매우 얇고 나풀거리는 ‘곤충포셉’을 사용한다.
시브(sieve)라고 부르는 망체는 촘촘한 정도에 따라 크기가 작은 기생충들을 거를 때 사용한다.

필자는 이전 실습들을 통해 여러 종의 야생동물 부검 과정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연구실에 있었던 다른 학생 중 사체 다루는 일을 힘들어했던 분도 있었다. 비위가 너무 약하다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어질 수 있기 때문에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하루는 외부 기생충이 유독 많았던 오소리 사체의 진드기와 이(louse)를 샘플링했다. 200마리가 넘어갈 때 즈음, 살짝 지루해져 “이렇게 많은 이들이 어떤 연구에 쓰이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교수님께 드렸는데, 그렇게 그 친구들은 실습 한 달간 내 연구주제로 쓰이게 되었다.

이후 연구주제를 잡고 그에 따른 실험을 주로 하게 되었고, 때때로 출장이나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일이 생길 때마다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일들을 전한다.

SEM 촬영 및 시료 전처리 과정

둘째 주에는 연구실 박사님들과 함께 연구시료를 가지고 주사전자현미경(SEM) 촬영을 진행했다.

기생충은 워낙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아서 광학현미경(OM)으로 보기 어려운 구조들이 많다. 때문에 훨씬 고배율로 볼 수 있는 SEM 촬영이 필요하다.

당시 내 첫 촬영본은 추후 수개월 동안 진행된 나의 연구 내용 중 큰 줄기가 되었다.

셋째 주에는 나와 같이 실습하던 선배의 연구 주제인 곰 회충 샘플링을 위해 국내 사육곰농장들로 출장을 다녀왔다.

곰의 분변을 샘플링해서 회충 또는 충란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했는데, 사육곰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를 계기로 실습 이후 화천의 사육곰농장으로 봉사를 다니게 되었다.

보자마자 이걸 다 셀까 싶었던 참돌고래의 이빨.
결국 두 차례에 걸쳐 하나하나 다 세었다.

마지막 주에는 제주도 상괭이 부검 교육을 담당하고 계신 김선민 박사님을 따라 제주도로 출장을 다녀왔다.

교육이 1박 2일로 진행되었고, 교육 이후에도 부검이 계속 진행되어 일주일 동안 상괭이, 참돌고래, 청상아리 등을 부검하며 기생충 샘플링을 도와드렸다. 부검교육 소식도 데일리벳에 전했다(본지 2021년 10월 13일자 그물에 혼획된 토종 돌고래 상괭이, 부검해보니 임신한 개체였다).

II. 2021 대학생 생물분류 분야 논문 공모전 참가

실습 기간이 끝나갈 무렵 교수님께서 환경부 소속의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생물분류 분야 논문 공모전에 나가볼 것을 권유하셨다. 팀 또는 개인 출전이었고, 주제는 <우리나라 자생생물 분류 연구>였다.

논문과 공모전 모두 경험이 없을 뿐더러 심사 및 준비 기간이 시험 기간과 겹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어차피 1차에서 떨어지면 논문 작성은 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덜컥 연구계획서를 제출해버렸다.

원래 연구하고 있던 주제는 오소리를 숙주로 하는 이 1종이었는데, ‘이왕 하는 거 있어 보이게 숙주를 늘려보자’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숙주 5종과 이 8종으로 늘려 개인 출전을 했다. 이는 머지않아 큰 고통으로 돌아왔다.

내가 선택한 숙주는 오소리, 고라니, 독수리, 중백로, 새호리기였는데 모두 우리나라의 자생생물이다.

대학생 생물분류 분야 논문 공모전 과정

자기 객관화가 덜 되었는지 1차 탈락을 확신했는데 학교에서 실습을 하던 중 같은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왔다.

이상함이 느껴져 양해를 구한 뒤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는데, 1차 합격 전달과 동시에 최종 발표 준비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안내전화였다.

놀라움도 잠시 속으로 ‘큰일 났다’를 외치며 학교가 끝나자마자 연구실로 달려가 일시 멈춤 되어있던 내 샘플들을 꺼냈다. 그날부터 수업이 비거나 끝나면 바로 연구실로 달려가 8종의 샘플들과 고군분투했다.

보자마자 ‘내 주제 귀여워’를 읊조린 1차 심사 결과

국내에는 이를 다루고 있는 논문이 거의 없었고, 종에 따라 아예 공개되어 있는 자료의 양 자체가 매우 적은 경우도 많았다. <해리 포터>에 나올 법한 고서적과 해외 논문을 뒤져가며 내가 가진 샘플들의 종 동정을 했다.

몸의 마디마다 달려 있는 털의 개수, 더듬이의 방향과 모양, 생식기 구조의 미세한 차이, 머리와 몸의 비율 등 현미경 고배율로 관찰해서 측정해야만 알 수 있는 세세한 특징들을 룰아웃시켜가며 분류했다.

그렇게 내 연구의 최종 제목은 <국내 야생동물에서 발견된 미기록 무는이아목(Mallophaga) 8종의 형태학적 감별>이 되었다.

총 8종 중 고라니를 숙주로 하는 이는 자료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 신종후보종으로 추정하였으며, 나머지 7종 모두 국내 미기록종으로 보고했다.

개체별 형태학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이뤄졌던 연구와 비교하여 측정값을 비율로 수치화하여 나타냈고, 거의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의 SEM(주사전자현미경) 촬영 사진을 중점적으로 실험 데이터들을 만들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특징을 삽화·줄글과 비교해가며 종을 동정한다.
필요에 따라서 PCR을 실시하고, 모든 종의 SEM 촬영을 진행했다.

준비기간이 중간고사와 완벽하게 겹쳐 매우 괴로워하며 허둥지둥 연구를 진행한 기억이 이 후기글을 쓰며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시험 기간으로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연구실 박사님들과 교수님들의 자문을 받아 가며 결국 최종본이 완성됐다.

최종 발표 전 전문가의 자문을 최소 2차례 필수로 거쳐야 했는데, 국내에는 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 저명한 곤충학자이신 인천대학교 배양섭 교수님이 지도 교수님과 함께 연구 방향성을 고민해 주셨다.

시험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결국 마감 직전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만든 논문

논문 제출 후 최종 발표에는 ppt와 함께 10분의 발표를 준비해 가야 했는데, 발표 후에는 교수 및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최종 심사에 들어온 10개 연구에는 최소 참가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참가상은 확보했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발표를 준비했다. 너무 편하게 했는지 10분 동안 발표해야 하는 ppt 장수가 60장을 넘어가버려서 난감한 상황이 됐다. 연구실 지박령이 되어버린 나를 안타깝게 여긴 발표 능력자 Tilak 박사님이 불필요한 내용 삭제를 도와주셨다.

참가상에 만족하자는 마음으로 전날 허둥지둥 만든 발표자료.
다시 보니 급하게 만든 티가 나서 웃음이 난다.

발표 당일 내 순서는 2번째였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후딱 내 발표를 끝내고 마음 편히 남은 발표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다행히 발표는 조금 떨리긴 했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준비한 대로 마칠 수 있었다. 심사위원의 질문은 예상했던 것보다 평이해서 연구과정에서 했던 생각들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수의대에서 출전한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 나의 진로나 향후 계획들에 대한 다소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다. 실습 중 좋은 경험을 하게 되어 진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다고 에둘러 답했다.

이후 이어진 발표들은 개인으로 출전한 나와 다르게 팀 출전이 많았(어서 조금 외로웠ㄷr…)고,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들이 많이 들렸다. 비교적 단순한 내 연구 방법과 다르게 수준 높은 방법을 적용한 연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나는 순위권 입상은 힘들겠거니 하고 신기한 내용의 발표들을 끝까지 경청했다.

수상자 발표는 참가상부터 쭉 올라가다 대상을 먼저 발표하고 최우수상을 마지막에 발표했다. 가장 먼저 불릴 거라 생각한 내 이름이 끝까지 호명되지 않아 사실 나는 내가 누락된 줄 알았다. 가장 마지막에 최우수상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고, 깜짝 놀란 채 얼떨떨하게 나가 상패를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심사 항목 중 연구의 참신함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내 발표에 최초 보고 내용이 많아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나름의 추리를 해보았다.

이번 대회에서 함께 발표를 했던 9개 팀의 연구 내용을 보며 크고 작은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이는 준비 과정에서 느꼈던 나의 부족함과 더불어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시상식 후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오시더니 ‘수의대에서도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너무 필요했다’며 ‘나중에 생물 분류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어도 취미로라도 계속 해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 연구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 무척 감사했고,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과 동시에 수의사의 진로가 다양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 범위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상과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환경부 장관상과 함께 상금이 주어졌는데 며칠 후 세금을 공제한 금액이 내 계좌로 들어왔다.

공모전을 위해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실의 박사님들과 많은 분들이 가장 기초적인 실험기구 사용법부터 실험 결과 처리 방법 등 크고 작은 도움을 주셨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셨다.

공모전이 끝나고 그 과정들을 곱씹어 보니,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던 나에게 연구실분들이 안 계셨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느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III. ASCM International Conference 포스터 발표 준비 (2022.07~10)

본과 진학 이후 학기 중에 내 욕심으로 놓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었다. 결정적으로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체력적인 부담도 컸지만 무엇보다 학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 다소 부정적인 자기 회의 상태가 계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은 계속 생겼고, 더 이상 학업과 병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으로 충분한 고민 끝에 2022년 초 휴학원을 제출했다.

감사하게도 실험실에서 부검 행사나 컨퍼런스 등 재미있는 일들이 있을 때 종종 불러주셔서 휴학 이후에도 때때로 연구실을 방문하던 중 교수님께서 해외 학회 발표를 제안해 주셨다.

발표를 하게 될 곳은 Asian Society of Conservation Medicine(ASCM)이었는데, 아시아에서 야생동물을 공부하는 분들이 모인 학회다. 본과 1학년 때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으로 활동하며 프로젝트 기사로 Conservation Medicine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는데, 내가 직접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가지고 참가할 수 있다니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작은 개인적인 여담을 덧붙이자면, 이때 상괭이를 연구하고 계시는 김선민 박사님의 2013년 학회 참가 후기를 가장 많이 참고했었는데, 첫 해외 학회를 선민 박사님과 함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늘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선배인 나리 언니와 동행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마침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재개되는 오프라인 컨퍼런스가 태국 제2의 도시로 알려져 있는 치앙마이에서 열렸다. 휴학 후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7월부터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작년에 해 놓은 연구가 있어서 준비과정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학회 등록과 함께 발표를 할 사람들에게는 기한 내 Abstract 제출이 요구되는데, 마감 기한이 연장되어 여유 있게 작성해서 제출할 수 있었다. 발표는 Poster session과 Oral session이 있는데 나는 부담이 적은 포스터 발표를 선택했다.

제출 후에는 주최 측의 심사를 통해 발표 여부가 결정되었고, 초대장같이 생긴 Acceptance letter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포스터 준비에 들어갔다.

학회에 제출한 초록과 심사 후 받은 Acceptance letter.

지난 공모전을 준비하며 이제는 학명도 가물가물한 8종의 이들과 씨름했던 쓰라린 기억으로 이번에는 한 종에만 집중하고자 오소리에서 발견된 이 Trichodectes melis를 단독 주제로 잡아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했다.

사실 추가로 진행하고 싶은 실험이 더 있었지만 제출 기한 전에 결과를 내지 못해 아쉽게 다음을 기약했다.

연구 중 강조하고 싶은 내용과 사진들을 표와 같은 시각자료를 만들어 보기 쉽게 배치하고 나머지 내용 중 중요한 부분들만 편집해서 남은 자리에 구겨(?) 넣었다.

지난 공모전은 한글로 진행되었지만 이번 학회는 국제 학회인지라 전부 영어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보다 나은 표현을 사용하고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작년 공모전으로부터 딱 1년이 지난 상황이라 1년 전의 기억을 되짚으며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포스터를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 걱정이 되었지만 연구실 박사님들의 포스터를 참고해가며 며칠 밤을 새우니 또 어찌저찌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학회 기간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 포스터와 초록

 

IV. ASCM Conference 참가 (2022.10.25-28)

학회 등록 시 나눠준 명찰과 노트.
노트는 여행 중 일기장으로 사용했다.

학기 중이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행복한 휴학생인 나는 학회 전후로 여행 계획을 추가했다. 방콕으로 먼저 들어갔다가 야간 침대열차를 타고 치앙마이로 이동했다. 실습 후기와는 거리가 있지만, 지금까지 해외를 돌아다니며 탔던 침대열차 중 가격대비 가장 쾌적하고 좋았다. 만약 방콕과 치앙마이를 이동할 계획이 있다면 추천한다.

학회 첫 날은 사전에 신청한 사람들에 한해 치앙마이대학 수의대 내부에서 워크샵을 진행했다. 주제는 Reptile and Amphibian Pathology와 Elephant Endotheliotropic Herpesviruses(EEHV) 두 가지였다.

학회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 지원해 주신 교수님 덕분에 단순히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Reptile and Amphibian Pathology에 참여했다. 현직 야생동물 수의사분들 및 관련 전문가분들과 함께 Lizard, Tortoise, Snake 임상 실습과 부검 실습에 참여하게 되었다.

슬프지만 명찰 어디에도 student가 적혀 있지 않았다. 혹시 내가 방해가 될까봐 기회가 될 때마다 수의대생임을 어필하며 열심히 조교님을 카피했다.

본과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터라 아직 임상 과목을 배우지 않아서 다소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다행히 내 차례가 왔을 때 Tortoise의 꼬리 채혈과 Lizard Nasal Flushing을 성공할 수 있었다. 역시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예과 때부터 동물을 이용하는 실습을 할 때마다 항상 되새기는 마음가짐이 있다. 실습을 위해 희생된 동물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것을 확실하게 배워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휴학 후 한동안 동물실험을 하지 않다 안락사 과정을 보려니 조금 울적해졌지만 부검할 때는 가능한 구석구석 보려고 노력했다.

그 중 Lizard의 꼬리 근섬유가 매우 인상 깊었는데, 쉽게 자르고 도망갈 수 있도록 근육이 교차로 갈라져 있었다. 잘라진 꼬리에 바늘을 찔러보며 채혈 지점을 알 수 있었다.

Snake 부검 시에는 끝이 둥근 기다란 막대로 성별을 판별하는 sexing probe 과정이 흥미로웠다.

Reptile Clinical Procedure 채혈방법

2일차부터는 본격적인 학술발표가 세부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공통 강연과 학술발표가 번갈아가면서 이루어졌다.

세부 주제는 Environment/Diversity, One health, Megaherbivores, Wildlife Management/Conservation,  Welfare, Primates, Epidemiology, Pathology, Reproduction Biology, Marine Mammals, Clinical Medicine/Others  등으로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어 듣고 싶은 발표들을 선택해서 강의실을 옮겨가며 들을 수 있었다.

1일차 저녁의 Ice breaking 행사에 이어 2일차 저녁에는 Dinner party가 진행되었는데, 주최 측에서 학회뿐만 아니라 태국의 문화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태국 북부 지방의 전통 음식과 공연을 준비했다.

학회에 우리 학교 교수님들을 비롯한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꽤 많았는데, 이때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기로 활동했던 안상진 선배를 만나게 되어 격한 반가움을 전해드렸다.

나는 poster session이었기에 직접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oral session에 비해 피드백을 활발히 받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영장류 기생충에 대해 발표하신 박사님께서 내 포스터의 SEM 사진을 프로페셔널하게 잘 찍었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oral session 발표자로 참여해보고 싶다.

학회 마지막 날에는 우수 발표자 시상과 함께 내년 학회 장소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가 16번째 ASCM conference의 개최지가 되었다. 이로써 국내 참가자에게는 해외 아닌 해외 학회가 되어버린 셈이다. 제주도 관광 홍보 영상을 치앙마이에서 보게 될 줄이야…!

2023년 학회 장소 제주도가 발표된 순간

 

V. 실습의 마무리

최근 세상을 떠난 사육곰 미자르.
야생동물 기생충 실습이 이어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실습은 끝났지만 사실 내 연구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학회 준비를 통해 수정해야 할 부분과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을 되짚어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실험 결과들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분명 한 달 동안 야생동물 기생충 실험실 실습을 했는데, 1년이 넘도록 실험실 안과 밖에서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값진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하는 중이다.

수의대생 윤서현뿐만 아니라 24살 윤서현에게 수많은 연결고리들을 걸어주었던 야생동물 기생충 실습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실습 중 곰농장을 방문했던 것을 계기로 휴학 후 우리 학교에는 개설되어 있지 않았던 동물복지 수업을 한 학기에 걸쳐 청강하기도 했고, 일요일에는 강원도 화천으로 봉사를 다니는 중이다.

봉사를 다니는 동안 평생 철창에 갇혀 살던 곰들에게는 “작은 곰 숲”이라고 하는 넓은 방사장도 생겼으며, 매주 다양한 환경풍부화와 건강관리를 받게 되었다.

인간으로부터 착취당했던 사육곰들이 보다 나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휴학 후에 했던 가치있는 일들 중 하나다(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 많관부!).

처음 만난 사육곰 농장의 반달가슴곰과 최근 화천에서 환경풍부화를 받고 있는 곰.
곰들도 표정이 다양하다는 것을 봉사하며 깨닫게 됐다.
이번 학회 후에는 코끼리와 사랑에 빠졌다. 태국에 남아 코끼리 생추어리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참여한다면 어떤 실습이 되었든 누구나 진로 결정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은 나는 여전히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야생동물 기생충 실습은 내 20대의 가장 열정적이고 찬란한 기억들 중 하나로 남아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교수님 감사합니다!

연구실 벽을 가득 채운 교수님·박사님들의 샘플 컬렉션에 비하면 내 샘플들은 작고 귀엽다.

[실습후기 공모전|대상] 기생충 실습과 함께한 공모전·해외학회 발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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