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면서부터 수의사들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문을 두드립니다. 인턴으로 불리는 1년차 임상수의사 뿐만 아니라 직장에 취직해도, 결혼을 해도, 이직을 해도 심지어 은퇴를 해도 1년차가 됩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0기는 다양한 진로 앞에서 고민하는 수의대생, 새로운 생활에 직면하는 수의사들을 위해 [수(獣)타트 : OO은 처음이라]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타트 프로젝트는 임상, 기업, 공직,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1년차에 도전하고 있는 수의사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유학, 결혼, 입사, 개원, 창업, 은퇴 1년차인 수의사들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첫 번째 주인공 ‘은퇴 1년차’ 고홍범 수의사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전남대학교에서 수의미생물학 교수로 30여년간 재임한 고홍범 명예교수는 지난해 정년퇴임해 은퇴 1년차를 보내고 있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1991년 전남대 수의대에 부임해 수의미생물·전염병을 강의했던 고홍범 교수입니다. 2022년 2월부로 정년 퇴임했습니다.
Q. 은퇴한 지 얼마나 되었나요?
2022년 2월 28일 정년 퇴임했으니 (인터뷰 시점상) 7개월여가 지났네요. 지금은 명예교수로서 후임 교수가 오기 전까지 수의세균학과 수의전염병학 강의를 맡고 있습니다.
Q. 대학 교수를 선택하셨던 이유가 있나요?
제가 학부를 졸업한 1983년 당시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폭이 좁았습니다. 공무원을 하거나, 대동물 임상수의사를 했죠.
군대에서 제대한 후 복학해 수의산과학 실험실에 있었는데, 당시는 유방염에 관한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 실험이 상당히 흥미로웠죠.
당시 수의산과학 교실 주임교수님이셨던 강병규 교수님은 실험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한 많은 동기부여를 해주셨습니다. 임상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분야에 대해 자부심을 많이 가지신 분이셨고 당연히 제자들에게 이 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주신 고마운 은사님이셨습니다.
교수님의 가르침은 진로 설정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대학원 석사부터 덴마크 수의혈청학 연구소 연수, 독일 하노버 수의과대학 박사학위를 마칠 수 있는 힘을 얻었죠. 이후 교육·연구 분야의 길로 접어들게 됐습니다.
연구를 통해서 얻는 기쁨이 제 목표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모교에서 제 전공에 맞는 교육과 연구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도 학부생활부터 가졌던 목표 설정에 맞게, 자연스럽게 교수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제자들이 잘되는 것이죠.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제자들이 각 분야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자들이 교수로 부임하거나 기업·연구소 등에서 활약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Q. 교수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교수는 지나고 보니 힘든 직업이었어요. 일 때문에 때로는 가족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환영받지 못하는 아빠가 되기도 했죠(웃음).
학문의 길을 간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분야에 평생 연구할 각오로 간다면 결과도 좋을 것이고, 어려움이 있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공부할 때는 외국에 갔다 와야만 교수를 할 수 있다고들 했어요.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대학은 실험실 장비, 연구비 수준 모두 외국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 전력투구할 소프트웨어인 연구인력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연구하고 싶은 분야의 목표를 정하고 최선을 다하면 교수와 같은 외형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더 좋은 결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은퇴 첫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최근에는 꿀벌 질병, 꿀벌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벌이 우리에게 주는 것으로는 달콤한 꿀만 떠올리게 되지만, 벌의 마이크로바이옴은 자연 환경과 꿀벌, 인간과의 상생에 대한 다양한 생물학적 정보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시작은 늦었지만, 이 분야의 다양성을 확인하는 결과들을 보며 새로운 기쁨을 느끼고 있죠.
Q. 아름다운 은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을 하지만,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정년에 도달한 마음 한 켠에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섭섭함이 남네요.
정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건강입니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은 연구와 교육, 좋은 생각의 밑거름이 됩니다.
이런 마인드로 생활한다면 교육이나 연구의 목표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고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량화되고 경쟁을 유도하는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 준비인 셈이죠.
은퇴 즈음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급하고 조바심이 나서 준비가 잘 안됩니다. 적어도 5년 전부터 자기가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중요하죠. 경제문제는 상대적이기에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노후의 건강과 활동 기반을 미리 차분히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Q. 자신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생리학적 진행에 산술적인 계산이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현재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전원생활을 해보고 싶네요.
그동안 동물과 많이 대화하는 생활이었다면, 이제는 식물과도 대화하는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수의대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복잡한 경쟁구조와 경제 제일주의 안에서 수의대 학생들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임상분야를 가장 선호하는 만큼 그 안에서 제2의 경쟁도 시작되죠.
수의사의 진로는 한 쪽으로 치우치기 보다, 그 전문성을 살린 공중보건과 연구계통으로도 다양하게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외국의 수의사처럼, 연구능력을 펼치는 수의대 학생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 싶습니다.
학생들은 큰 포부와 함께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남들이 가는 편한 길만 가선 안 됩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개척하는 학생을 마음속으로 두는 학생이라 답하고 싶어요.
홍성난 기자 hong4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