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후기 공모전/우수]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2022 실습후기 공모전 ‘우수상’ - 충남대 수의대 최지영
눈길을 사로잡는 귀여운 상괭이 그림이 담긴 포스터와 함께 학교별 공지방을 통해 공개적으로 모집 공고가 내려왔다. 모집 대상은 ‘해양동물에 관심 있는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 본과 1~4학년’으로, 예과생은 지원이 불가하다.
총 25명이 최종적으로 선발되는데, 선발 기준은 구글 설문지 제출 내용을 평가하여 10개 대학에서 골고루 선발한다고 했다. 지원서는 6월 초까지 구글 설문지를 통해 제출받았다.
작성해야 하는 설문 문항은 총 두 개였는데, 첫 번째 문항은 ‘좋아하는 해양생물’이었고, 두 번째 문항은 ‘지원동기 및 이번 부검 교육에서 기대하는 바’를 500자 내외로 작성해야 했다.
경쟁률은 매우 치열했다. 25명을 선발하는데 총 200여명의 수의대생이 전국 각지에서 신청했다고 했다.
나중에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경쟁률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게 치열했기에 지원서에서 비추어 보이는 ‘해양 동물 덕후력(?)’이 선발 기준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당시 넷플릭스 <나의 문어선생님>을 보고 두족류 ‘문어’에 심취해 있어서 시험기간 스트레스를 풀 겸 문어를 좋아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 놓았는데, 아무래도 거기서 덕후력을 높게 평가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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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수의대생이라면 모두들 자유롭게 대지를, 상공을, 해양을 마음껏 노니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에 동경심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망망대해를 유영하며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고래들, 분수처럼 물을 뿜어내고 뱃고동 같은 소리를 내며 노래하는 고래야말로 동경하지 않을 수 없는 동물이다.
사람만큼이나 똑똑하고 사회적인 동물이라던데, 고래들만의 특별한 생활양식은 알면 알수록 깊게 매료된다.
생김새가 아주 다채로운 동시에 또 하나같이 얼마나 근사한가. 무엇보다도 가까이 닿을 수 없기에 이 동물을 향해 품게 되는 의미나 상징성이 더욱 커지는 동물인 것 같다.
그런 고래를 직접 부검해 볼 수 있는 기회라니!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차오르는 호기심에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막연하게 야생동물과 그들의 생태를 연구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픈 상태의 동물 또는 그들의 본 생태 안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철창에 갇혀 있는 동물들을 직접 접하며 살 자신은 없어 야생동물을 향한 꿈은 점차 흐려져 갔다.
‘제인 구달 박사님이나 최재천 박사님처럼 동물학과 생태학을 아울러 공존의 가치를 설파하는 수의사가 되어야지!’ 하는 원대한 꿈(?)을 안고 수의대에 입학했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야생동물들을 조금이라도 돕는 방법이 부검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이들의 죽음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해양동물은 물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개체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생태학적 관점의 접근이 중요한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곧장 지원서를 작성했다.
부검은 말 못하는 동물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는 일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 오프닝 뮤지컬 시퀀스가 아주 기가 막힌다.
돌고래들이 경쾌한 음악에 맟추어 춤을 추며 ‘우리가 그토록 경고했는데, 당신 인간들은 정말이지 우리 말을 못 알아듣더군요! 그러니 잘 있어요! 그동안 생선은 고마웠어요(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라고 합창한다. 그리고 다같이 지구별을 떠난다. 곧 파괴될 예정인 지구에 인간들을 내버려 두고 말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와 함의하고 있는 메시지가 어우러져 웃기고도 슬픈,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 준다.
‘사물이 항상 겉보기와는 똑같지 않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동일 소설책의 첫 번째 문장이다)’
우리를 향해 절대 찌푸린 표정을 보일리 없는, 웃는 얼굴의 상괭이가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부검은 곧 말못하는 동물의 마지막 말을 들어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설렘을 안고 한림읍 옹포리
부검 교육이 시작되는 첫날 설렘을 안고 옥빛 협재 해안을 끼고 있는 한림읍 옹포리에 위치한 한국수산자원공단(FIRA) 제주본부에 도착했다.
첫 순서로 전국 10개 대학에서 모여든 수의대생끼리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고 좋아하는 해양동물을 말하기로 했다.
지원자 200여 명 가운데 심사를 거쳐 선발된 25인 답게 상괭이부터 귀신고래, 범고래, 바다거북, 고래상어, 문어 등등 좋아하는 해양동물이 가지각색에, 하나같이 자연과 바다를 향해 품고 있는 동경심이 엿보였다.
무언가를 진득이 사랑하고 몰입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 소위 ‘덕후력’을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다들 정말 개성이 넘쳤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은 수의대라지만 이정도 덕후 액기스(?) 집단이라니, 짜릿하고 생경했고 진귀했다…!
나는 전날 제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고래가 가득 그려진 하와이안 셔츠를 용기 내서 입고 갔는데, 이거라도 안 입었으면 기 팍 죽었겠다며 안도했다.
부검 교육을 개회하며 제주대학교 해양과학대학 김병엽 교수님께서 제주 주변 해역 혼획, 좌초, 사망하는 해양 동물에 대해 발표했다. 우리나라에 출현하는 해양포유류는 고래류가 총 35종으로 제주도에 20종이 서식한다고 했다.
한반도 남, 서해안 바다에 상괭이가 주로 서식하며, 제주 주변 해역에는 남방큰돌고래가 정주한다. 2013년 남방큰돌고래 방류 프로젝트를 통해 방류되었던 제돌이, 춘삼이 그리고 2016년 방류된 복순이와 태산이도 제주 해역에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고래는 해양생태계 내 최상위 포식자로, 바다의 종 다양성 유지에 필수적인 핵심종(keystone species)이자 바다 환경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시자(indicator)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 동물들에 대한 연구 의의는 이렇게 설명되겠지만, 생태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건, 어떤 매력을 가진 동물이건, 어떻게 평가받건 모든 생명체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삶을 살아가며 고통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고래들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웃는 돌고래’로 알려진 상괭이는 부리와 등지느러미가 없어 마치 웃는 표정을 짓는 듯한 귀여운 얼굴과 전체적으로 동그란 외형이 특징적인 토종 돌고래다.
이 상괭이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고래들이 죽어가는 가장 첫 번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혼획’이다. 여기저기 양식장이 생겨나고 어업이 무분별하게 확장하며 애꿎은 상괭이까지 어망에 걸려 죽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드넓은 바다에 살고 있는 고래가 아프고, 죽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살아있는 동물을 병원에 데리고 들어와 진찰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이들의 죽음을 규명해내기 위해서는 결국 죽음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 죽어서 해안가로 떠밀려와 발견된 사체를 해부하여 검사함으로써 사인을 규명해내는 ‘부검’을 해야 한다.
이성빈 수의사님께서 고래류 해부학과 부검 과정에 대한 이론 강연을 해 주셨다. 고래류 부검 순서는 ▲CT촬영 ▲Virtopsy ▲계측 및 외부 검사 ▲부검과 샘플링 ▲사체처리 및 청소 순으로 진행된다.
고래류 부검을 위한 첫 단계로 ‘Virtopsy’를 한다고 했다. ‘virtual(가상의)’과 ‘necropsy(부검)’의 합성어로, ‘신체의 모습을 3차원으로 자세하게 보여주는 의학 영상 장비를 이용한 가상 부검(출처: 네이버 사전)’을 말한다.
덩치가 큰 동물의 모든 부위을 육안으로 꼼꼼히 살펴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이 고래류 부검에 큰 도움이 된다. CT를 찍어 한눈에 주요 병변부를 부검 전에 확인하면, 부검 과정을 설계할 때 확인한 병변 부위에 집중할 수 있고 필요한 추가 검사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미리 알 수 있다.
가령 CT 영상에서 간에서 massive cavitary lesion이 발견되었고, 이 병변이 위장을 압박하고 있는 것을 미리 확인했다면, 암이 의심되기 때문에 부검 과정에서 조직검사가 필요한 부위를 미리 알 수 있다.
Virtopsy를 통해 Necropsy를 보다 편리하게 할 수 있고, 사인 진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Virtopsy와 Necropsy는 상호보완적 관계라고 설명하셨다.
고래 사체의 CT는 제주대 수의대 말전문동물병원에서 찍는다. 하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CT기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곳일 테니, 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리 수행해둔 Virtopsy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될 부검 과정에서 사진을 찍는 방법, 차트 기록 방법, 샘플링 해야 하는 조직 목록과 샘플링 방법 등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외부 검사 및 계측 – 피부 제거 및 개복 – 흉강 장기 노출 – 복강 장기 – 소화기계 – 생식·비뇨기계 – 두개골 순으로 각 부위의 장기를 어떻게 노출시키고 무엇을 주로 살펴보아야 하는지, 샘플링 항목은 무엇인지 배웠다.
이론 강의가 모두 끝나고, ‘닥터수달’로 이미 소문이 자자한 금손 이성빈 수의사님께서 직접 디자인하신 정말 멋진 티셔츠를 선물 받았다! 제주도에서 파는 여느 기념품 안 부러울 정도로 엄청 예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들 무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5일 내내 정말 잘 입었다!
네 개의 낚시바늘을 삼킨 인도태평양 상괭이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부검이 시작되었다. 우리 조는 5일간 인도태평양 상괭이와 상괭이, 올리브각시 바다거북, 무태상어와 별상어까지 총 5마리의 사체를 부검했다.
부검은 세 조로 나뉘어 조별로 한 마리씩 맡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되었는데, 5일 내내 종일 붙어있느라 조원들과 정말 많이 친해졌다.
우리 2조는 정원준 선생님과 박다솔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부검 보조 2명, 차트 1명, 샘플링 2명, 사진 촬영 1명, 측량 2명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부검을 진행했다. 매일 역할을 바꾸며 부검의 모든 과정에 한 번 이상 참여해 볼 수 있었다.
첫 부검 후 어느 정도 프로토콜에 익숙해지자 새로운 역할을 인수인계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각자의 역할을 해냈다. 훌륭한 협동력으로 우리 조의 부검 실력과 속도가 날로 늘었던 것 같다.
나는 첫 역할로 차트를 담당했다. 차트 담당자는 차트 순서대로 확인해야 하는 장기를 집도자에게 지시하고, 장기 병변을 확인하고, 계측 담당자가 측정한 장기나 병변, 이물의 크기와 무게를 적어 넣고, 샘플링 담당자가 샘플링한 조직 목록을 체크해야 한다.
즉, 차트 담당자는 펜을 들고 여기저기 쫓아다녀야 하는 중역이다(!). 부검 첫날 나홀로 손과 술복이 깨끗했지만 나름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가위바위보 꼴찌를 해서 첫날 차트 담당자가 되어버린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부검 프로토콜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우리 조가 처음으로 부검한 해양 동물은 ‘인도태평양 상괭이’였다. 같은 날 다른 두 조는 각각 남방큰돌고래와, 임신 중인 상괭이를 부검했다. 냉동 보존되었던 사체가 충분히 녹아야 부검할 수 있기 때문에, 부검 전날 상온에 두고 미리 계측을 해 두었다.
인도태평양 상괭이는 체장 171cm로 일반 상괭이(110cm 정도)보다 덩치가 더 크고, 등쪽에 돌기가 있다. 이 친구는 22년 3월 안덕면 사계리 해안가에 떠밀려 발견되었다고 했다.
외관 검사 결과 부패 지수가 2 정도로 외형이 비교적 깨끗한 것으로 보아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되었을 것이다. 머리 분수공 뒤쪽이 살짝 움푹 들어가 땅콩 모양으로 보여, 약간 마른 상태로 판단할 수 있었다.
차트에 그려져 있는 상괭이 모식도에 외상, 따개비 등 외관상 확인할 수 있는 병변들을 꼼꼼히 그려 넣었다. 외관 검사 시 주변 조직의 괴사, 섬유화 흔적을 통해 사후 변화인지 사망 전 외상인지 병변을 잘 감별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상괭이는 virtopsy 결과 forestomach에서 낚시 바늘 3-4개와 위 내용물이 확인되었다고 보고 받았다. 부검 프로토콜에 따라 각 장기를 모두 차근차근 꼼꼼하게 살펴볼 테지만, 이 낚시바늘이 주요 사인일 것임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인기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인 변호사 영우가 고래 덕후인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이 덩달아 고래에 모이고 있는지, 아침부터 기자들이 몰려들어 있어 신기했다.
기자분들은 부검대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보도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셨고, 틈틈이 선생님들께 인터뷰를 요청하셨다. 그리고 virtopsy 보고를 미리 듣고 오셨는지 위장을 도대체 언제 여냐며 여러 번 질문해왔다.
낚시바늘을 꺼내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오셔서 종일 하염없이 기다리시는 모습에 마음이 쓰이기도 했으나, 우리는 꿋꿋이 정해진 부검 순서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오후 세 시경에 이르러서야 위장관계를 열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눈부시게 터졌다. 그날 우리는 각종 방송사의 저녁 뉴스에 보도되었다!
본격적으로 집도자가 부검도를 쥐고 등쪽 피부와 지방부터 절개해나갔다. 기관과 기관지, 폐에서 혈액성 포말이 관찰되었는데, 이는 질식사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소견이다.
식도에서 이석과 기생충 십여 마리를 발견했고, 폐에서 diffuse multiple nodules, 간에서 5개 nodules과 흡충, 작아진 비장 등을 확인하고 차트에 소견을 작성했다.
대망의 복강부 진입 타임, 드디어 위에서 낚시바늘을 꺼내들 차례! 식도와 duodenum 전단을 케이블타이로 결찰하여 위장관계를 체강 밖으로 꺼냈다.
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다. 고래목의 친척이 우제류라는 것을 아는가? 그래서 소처럼 위가 총 4개다! (pyloric stomach – fundic stomach – fore stomach – duodenal ampulla, duodenal ampulla를 제외하고 3개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장도 소의 것과 같이 다엽의 포도송이 모양이다.
겉모습만 보고는 연관성을 생각지도 못할 두 종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천천히 연속적으로 진화하여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히 흘러온 우주적 시간의 규모에 압도당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진화학과 동물학에 대한 동경을 품어온 수의대생으로서 설명하기 어려운 설렘을 느꼈다.
메스로 forestomach을 열자 위장 안을 빈틈없이 꽉꽉 채우고 있던 커다란 기생충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말도 안 되게 많은 수의 기생충이었다.
오잉, 그런데 낚시바늘이 안 보여 아주 잠시 다같이 당황. 그러던 중 조원이 뒤엉켜 있던 기생충 덩어리를 물에 풀어 헤집자 드디어 낚시바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낚시바늘은 크고 날카로웠다. 3-5cm의 낚시 바늘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낚시줄은 길이가 무려 2m였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충북대 기생충 연구실 팀에서 분석한 결과, 이 많은 기생충들은 고래회충(anisakis spp.)으로 판명 났다.
이렇게 기생충이 많으니, 기생충 때문에 죽은 걸까? 기생충학 성적이 매우 나빴던 나는 그때만 해도 병원체=나쁜 것, 더러운 것, 해로운 것이라는, 부끄럽게도 참 수의학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김선민 박사님께서 기생충의 생활사에 대해 설명해 주신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고래회충은 고래를 종숙주 삼아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의 자연적인 생활사는 보통 고래를 해치지 않는다. 그래야 자신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래 회충의 충란은 고래의 분변을 통해 배출되고, 부화한 유충은 중간숙주인 작은 물고기나 새우에게 먹히고, 그 중간숙주를 다시 고래가 섭취하여 고래의 체내에서 성장한다.
그러니 중간숙주를 과도하게 섭취했거나, 낚시바늘 때문에 소화 속도가 느려져 체내에 성충이 많이 쌓이게 되었지 않았을 지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위벽에서 pinpoint ulcer와 volcanic ulcer가 관찰되었는데, 이 또한 위 내에 기생충이 과다하게 많아지면서 위벽에 기생충이 박혀 물리적인 손상이 가해진 것이다.
김선민 박사님은 ‘다양한 기생충이 살고 있는 환경은 오히려 건강한 생태계’라고 설명하셨다. 기생충은 기본적으로 먹고 먹히며 생활사를 완성하기 때문에, 다양한 기생충이 살고 있다면 먹이 그물이 촘촘히 얽혀 있어 생태계 균형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생충이 주요 사인이었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처럼 기생충학은 기생충의 먹고 먹히는 생활사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병리를 이해할 수 있는, 생태학적 접근이 중요한 흥미로운 학문이구나! 라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렇게 각 장기로부터 부검 소견들을 모으면, 이 녀석의 마지막 순간을 그려 볼 수 있다. 낚시바늘을 네 개나 먹어버리는 바람에 소화 기능에 문제가 생겨 야위어 갔을 것이다, 그물에 걸렸거나 기력이 없어 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여 숨을 쉬지 못하는 바람에 질식했을 것이다,
그 날은 엉켜 있던 커다란 낚시 바늘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 무언가 숙연해졌다.
그물과 스티로폼을 삼킨 올리브 각시 바다거북
바다거북 부검 전 일명 ‘거북이 마스터’ 정원준 수의사님께서 바다거북의 해부학과 부검방법에 대한 이론 강의를 해 주셨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연구하며 살다니 진정한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계신 것이다(!).
우리 조가 부검한 ‘올리브리들리 바다거북’은 IUCN Red list 취약종(vulnerable)이다.
부패 지수가 3으로 이미 부패가 진행된 상태여서 냄새가 아주 심했다(수술복에 짙게 밴 냄새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빠지지 않았다).
배갑이 안쪽으로 움푹 꺼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마른 상태임을 알 수 있었는데, 위장관계 전반에서 초록색 그물, 스티로폼, 고무가 발견되었고 장에 충출혈이 의심되는 검은 pinpoint ulcer가 관찰되었다. 따라서 소화 기능이 원활하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관, 기관지, 폐에서 포말이 관찰되어 질식사가 주요 사인임을 알 수 있었다.
바다거북은 구토를 하지 못한다. 해파리나 오징어와 같은 말랑말랑한 먹이를 소화시키는 기능을 하는, 한 방향으로 뾰족뾰족하게 돋은 돌기(esophageal teeth)가 식도 내강을 뒤덮고 있어서다.
때문에 거북이는 물속을 헤엄치다 입을 쩍 벌려 쓰레기를 먹으면 뱉어낼 수 없다. 수명이 긴 거북이가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쓰레기 한 톨 안 삼키고 평생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성공한 진화체, 상어
‘상어 마스터’ 김상화 박사님께서 일명 ‘TMI 상어 사랑’ 강의를 해주셨다. 눈을 반짝이며 상어 이야기를 쏟아내고 계신 상어 덕후 선생님을 따라 포유동물의 이빨과 기원이 같은 방패비늘, 저서성 상어에서 눈 뒤쪽에 발달한 spiracle, 냄새에 아주 민감한 코, 로렌치니 기관 등 상어가 가진 특징들을 살펴보니 어느새 상어 사랑이 나에게로 옮아온 기분이었다.
“전류를 감지하는 로렌치니 기관이 극도로 발달해서 코가 넓어진 망치상어가 제 최애입니다. 이렇게 진화하다니, 정말 너무 귀엽습니다!”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무한 공감의 끄덕끄덕을 하고 있었다.
상어는 고생대 데본기부터 지금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성공한 진화의 기준이 ‘오랜 기간 살아남은 것’이라면, 상어는 그야말로 성공한 진화체인 것이다.
상어라고 하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에 나오는 흔히들 집채만 한 크기의 극악무도한 백상아리를 쉽게 떠올릴 것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크고 사나운 동물에 대한 소유욕 또는 정복욕을 가져왔는지, 상어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아쿠아리움의 역사와 함께 발전했다고 한다. 가장 오랫동안 상어를 수족관에 가두어 사육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상어에 대해 연구했던 것이다.
뼈가 연골로 된 생명체의 무리 연골어강 중 상어상목에는 상상 이상으로 매우 다양한 종류가 속해 있다. 종별로 식성부터 생김새, 크기, 생리적 특징이 아주 다채롭다. 아직도 상어는 미지의 동물이자 흥미로운 연구대상인 것 같다.
백상아리처럼 집채만 한 상어도 있지만 우리가 부검한 상어들처럼 조그마한 상어도 있고, 사나운 상어를 떠올리기 쉽지만 고래상어처럼 온순한 상어도 있다.
우리 조가 부검한 별상어와 무태상어는 흉상어목에 속한다. 팔뚝 길이 정도 크기다. 무태상어는 구강에서 낚싯줄이 관찰되었는데, 연결된 낚시바늘은 식도를 뚫고 지나 위에서 발견되었다.
무태상어는 IUCN Red list 취약(vulnerable)종이다. 이 상어를 잡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혼획된다면? 보호를 위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둔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허무한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아이러니했다.
오래도록 간직할 장면, 해안가 플로깅
마지막 날 오전에는 해안가 플로깅이 계획되어 있었다. 플로깅은 스웨덴어인 ‘plocka up(줍다)’와 ‘jogga(조깅하다)’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활동을 말하는 신조어다.
최근 극심한 기후 위기 현상으로 인해 자연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일상 속에서도 자연보호활동을 실천하자는 의미에서 떠오른 활동이며, 최근에는 SNS를 통해서도 플로깅 모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쓰레기 줍는 거 정돈 잘할 수 있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썬크림으로 무장하고 운동화를 신고 나간 그 시간에, 나는 오래도록 간직할 장면을 사진처럼 포착한 것 같다.
숙소에서 공단까지 걸어 다니며 지나다녔던 해안가에 다함께 모여 집게와 마대 자루를 손에 쥐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에, 쓰레기가 진짜 많아도 너무 많았다.
움직이는 화산섬답게 금방 흘러넘친 것 같은 까만 현무암이 그리는 멋드러진 형상이 참 예술작품 같았고, 저 너머 수평선에 걸쳐 고래등처럼 떠있는 비양도는 쨍한 햇볕을 받고 유화처럼 질감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송글송글 구멍이 뚫려 있는 날카로운 현무암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유리조각, 도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짐작도 안가는 색 바랜 과자봉지, 도대체 왜 여기 있는지 모를 칫솔, 소주병, 그리고 낚시바늘, 낚시줄, 그물망, 밧줄, 부표와 같은 해양 쓰레기들···, 끝도 없이 쓰레기들이 껴 있었다.
어찌나 집요하게 껴 있는지 빼내려 안간힘을 써도 집게만 힘없이 휘었다. 암담했다. 이 쓰레기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이렇게 백날 주워도 다 못 주울 거고, 모래처럼 조각나 흩어져 바닷물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 갈 거고, 어디까지 가려나. 분해도 안 될 거고 물고기들은 입을 쩍 벌려 분별없이 삼켜 버릴 것이다. 그 와중에 쓰레기는 계속해서 버려지겠지.
광대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 위에서는 더욱이나 자신이 아주아주 작은 존재처럼 느껴져 지금 자신의 손을 떠나는 게 어디로 가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무언가를 바다 속으로 던져 버리고 있을 테다.
미끼를 걸고 걸쳐 둔 낚시 바늘이 사라지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새로운 낚시바늘을 꺼내들 것이다.
그런데 아주 당연한 물리학의 법칙이지 않은가, 소멸은 없는 것이다. 내 손을 떠났다면, 어디로 흘러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모두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광경을 보았으니 말이다. 밝은 표정으로 즐기면서 모두들 열심히 플로깅에 참여했지만, 모두 마음에 어떠한 동요가 일었을 것을 공기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순간을 깊이 담았다.
동물과 사람. 만들어진 경계를 밟고 서서
마지막 날 오후에는 모두 강의실에 모여 조별로 부검 결과 보고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차트에 작성한 내용을 토대로 토론한 후 추정한 사인을 발표했다.
발표 말미에는 해양동물 폐사 예방을 위한 제언을 해야 했다. 발표를 도맡은 멋쟁이 조원 친구가 마지막 제언을 갑작스럽게 나에게로 넘겨 덜덜 떨면서 더듬더듬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를 조합해 내 의견을 말했다. 급하게 발표를 준비하느라 충분히 정리하지 못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바람에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것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사유의 주제가 되었다. 해양동물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속 가능한 어업’이란 존재할까. 무분별한 수산업으로 인해 닥쳐온 위기 상황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생존을 위해 낚시를 하며 살아가는 빈민촌의 사람들이 겪는 식량난이었다.
물고기를 대량으로 휩쓸어 가버리는 대형 어선들 때문에 마을 연안에서 더이상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더 깊은 바다로, 더더욱 깊은 바다로 작은 나룻배를 휘청이며 위태롭게 아득한 수평선을 향해 나선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거친 파도 위로 내몰린다.
이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바다 생물들의 생존에 대한 위협과 우리네 인간에게 다가오고 있는 위기 사이에 그어져 있던 경계선이 무력하게 허물어진다.
거대 자본이 장악한 바다 위에서는 낚시바늘을 삼킨 고래처럼, 그물망을 삼킨 거북처럼, 지구 어딘가에서는 우리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인간도 똑같이 생존을 위협당한다.
그런데 그 규모를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바다의 광대함은 정도의 차이지 우주와도 같은 속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다른 문제들에 비해 바닷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수면 아래로 모두 던져 넣고 쉽게 잊어버린다. 그게 속 편하니까.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어류’는 분기학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분류 체계라고 말한다. 알고 보면 물속에 사는 고래랑 물 밖에 풀을 뜯으며 사는 소랑 친척인 것처럼 겉모습만 봐서는 생명체의 근연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사는 곳이 물 속이라고, 외피가 비늘로 덮여있다고 오랜 시간 동안 멋대로 먼 관계의 생명체들을 다 물속으로 던져 넣고선 ‘다 물고기야!’라며 손쉽게 질서를 세워 지배했다. 자연을 지배한다고 ‘착각’했다.
우리는 여전히 쉽게 사람과 동물을 경계 짓고선 ‘그래도 사람이 우선이지!’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애써 불편한 진실 앞에 눈을 질끈 감고 원래 살던 방식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러나 고래랑 금붕어, 상어, 문어, 장어, 오징어가 똑같이 물속에 산다고 해서 ‘어류’로 한데 묶어 놓는 게 말이 안 되듯, 동물과 사람을 나누는 이분법적 경계선은 더더욱 터무니없는 것이다. 해양동물을 지키려면 이 사실부터 직시해보면 어떨까. 생명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마무리하며
수료식에서 이번 부검 교육을 총괄하신 이성빈 수의사님께서 직접 수여해 주신 수료증을 받아드니 아쉬운 마음이 왈칵 차올랐다.
그리고 또 근사한 선물을 받았다! 이번에는 금손인데 센스까지 넘치시는 이성빈 수의사님께서 직접 디자인하신 비치타올을 모두에게 선물하셨다! 실습을 하며 친해진 우리가 뒷풀이로 바다에 놀러 갈 것을 염두에 두고 비치타올이라는 아이템을 선정했다고 하셨다. 기가 막히도록 탁월한 센스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부검 실습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스노클링을 하러 가서 정말 정말 잘 사용했다.
넓은 비치타올에는 우리가 5일간 만난 해양동물들 그림이 모두 담겨 있다. 선물 받은 티셔츠와 비치타올은 두고두고 해양동물 부검교육 1기 수료생으로서 자부심의 증거로 삼겠습니다!
실습 5일 동안 어떤 설득도 설명도 필요 없이 당연하게 자연과 동물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들과 나눈 대화들이 귀하고 귀했다.
마지막 날 저녁에 다 함께 모여 회식을 하며 행복하게 동물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선연히 떠오른다. 무언가를 향한 사랑을 기원으로 한 열의는 아무나 따라 잡을 수 없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걸 바라고 내가 수의대에 왔구나 싶었다. 전염 당하고 싶은 열정이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가치관을 품고 살아갈 것인지 나 스스로와의 대화가 많았던 시간이었다.
안개 낀 듯 흐려졌던 꿈들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랐던 시간이었던지라, 고작 4박 5일밖에 지나지 않았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종종 꺼내 보게 될 장면들을 참 많이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