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면서부터 수의사들은 여러 번에 걸쳐 새로운 문을 두드립니다. 인턴으로 불리는 1년차 임상수의사 뿐만 아니라 직장에 취직해도, 결혼을 해도, 이직을 해도 심지어 은퇴를 해도 1년차가 됩니다.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10기는 다양한 진로 앞에서 고민하는 수의대생, 새로운 생활에 직면하는 수의사들을 위해 [수(獣)타트 : OO은 처음이라]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타트 프로젝트는 임상, 기업, 공직,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1년차에 도전하고 있는 수의사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유학, 결혼, 입사, 개원, 창업, 은퇴 1년차인 수의사들의 이야기도 궁금한데요,
세 번째 주인공은 ‘기초 대학원 1년차’ 김경훈 수의사입니다.
서울대 수의대 발생유전학교실 석사 과정에서 대학원 1년차를 보낸 김경훈 수의사(사진)를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만났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발생유전학교실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경훈이라고 합니다. 2017년에 제주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했어요.
Q. 왜 이 분야(기초 대학원)를 선택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교를 가기 전부터 연구원이 되는 것을 희망했습니다. 학부 때도 조직학 실험실에 4년 동안 학부 연구생으로 있으며 연구 분야로 가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조직학 실험실에 있으면서 조직을 섹션하고, 염색하는 것도 손에 맞았어요. ‘연구할 거라면 조직 공부나 해볼까’ 생각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슬라이드 한 장에서도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어 재미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Q. 지금의 연구실에 오기 전에 약물 관련 벤처기업에서 잠깐 일하셨다고요
그 곳에서는 간단한 일을 했어요. 약물 전임상 시험 업무를 담당했는데, 마우스의 무게를 재거나 부검 조직을 섹션·염색하는 업무였죠.
사실 그 기업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실험 업무를 맡다 보니 실수도 많이 했어요. 거기 계신 팀장님도 ‘좀더 연구 경험을 쌓고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고, 이 곳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Q.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어떤 것인가요? 학부 때 배웠던 지식과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하고 있는 연구라고 한다면 보통 대학원생에게는 학위 연구겠네요. 지금은 저희 실험실 주제인 마우스 대사 표현형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표현형이라는 것도 호흡수, 몸무게, 당 대사 등 굉장히 다양한 분석 방법이 있어 뭐라고 딱 특정 지어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것 같은데요, 저는 주로 조직학적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제가 병리에 관심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질병 모델 동물 슬라이드를 판독할 기회를 주셔서 이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학부 때 배웠던 지식은 지금 정말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동물의 병리학·조직학·생리학을 배우는 수의사는 동물실험을 할 때 비(非)수의사에 비해 좀더 유리한 출발선상에 선다고 생각합니다.
과목으로 생각하면 실험동물의학, 병리, 조직, 생리학, 심지어 임상 과목도 지금 하고 있는 연구 중에서 마우스를 어떻게 다루는지에 쓰입니다. 모든 과목이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Q. 기초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준비해야 할 것들이나 필요한 것들 또는 마음가짐이 있을까요?
입학 전에 교수님과 만나보는 것이 가장 우선이죠. 인턴 생활을 하면서 실험실 분위기와 자신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고요.
그 외에 행정상 서류를 갖추고 영어 성적 맞추는 정도만 하면 입학은 수월할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 학부 때 공부 열심히 하시면 좋습니다. 학점이 높은 분들이 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고, 실제로 성적 높은 분들이 자신이 할 일 빨리 찾고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더라고요.
마음가짐이라면..아무래도 대학원생 신분이다보니 월급 자체가 적기 때문에 돈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 연구라는 것이 막연하기 때문에 안개 속에서 미로를 찾듯 굉장히 힘듭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겠다는 마음가짐도 필요합니다.
Q. 그러면 선생님께서 느끼는 지금 직업에 대한 만족도나 워라밸은 어떠신가요?
그 측면에서는 사실 만족도가 높진 않습니다. 연구 자체가 막연하고, 엄연히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안정적이지 않은 느낌을 받거든요.
워라밸의 경우는 사람마다 연구실마다 다를 것 같아요. 우리 연구실은 주로 마우스를 가지고 실험하기 때문에 한 번의 실험마다 걸리는 시간이 긴 편입니다. 사료 실험만 해도 6개월 정도를 잡습니다. 워라밸을 너무 챙기다보면 실험이 많이 늦어지고, 연구 성과가 안 나오면 졸업도 늦어질 수 있어요.
저는 최대한 기간 내에 졸업하고 싶기 때문에 워라밸을 챙기기보다는 연구나 실험에 집중하고 있죠.
Q. 대학원 생활이 역시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1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셨나요?
작년 여름에 타 실험실에 부검 지원을 나갔을 때 마우스를 부검하며 50마리 넘게 Swiss roll(마우스 부검 시 소장 및 대장을 말아서 샘플을 준비하는 것)을 했었죠.
그렇게 힘들게 하고 나서 집에 올 때 KTX가 고장 나서 2시간을 날리고 집에 도착하니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Q. 연구실에 적응하는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셨나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기초 대학원 연구 분야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대학원 생활의 적응을 ‘목표를 잡는 것’이라고 본다면 사람마다 다르겠죠. 저는 연구 방향을 잡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제 적응기간은 1년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사실 제가 남들보다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느려요. 그래서 좀 오래 걸린 편이죠. 3개월 만에 연구방향과 목표를 잡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아무래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 지, 어떤 결과를 내고 싶은 지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 적응도 쉬울 것 같아요.
부가적으로는 앉아 있는 것을 잘하고, 반복 업무에도 쉽게 질리지 않는 분이 연구 생활에도 잘 적응하실 것 같습니다.
Q. 1년 뒤와 10년 뒤 각각 그리는 모습이 있다면
졸업 후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르겠네요. 신약 개발기업으로 돌아가 약물 효과나 표현형 분석을 할 수도 있고, CRO 기관에 취직해 병리 분석을 할 수도 있고, 미국으로 건너가 수의병리전문의에 도전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10년 후 목표도 이 세가지 길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제가 정한 그 길에서 열심히 일하며 경력을 쌓고 있겠죠.
그렇기에 앞으로의 1년이 제게도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1년차가 0년차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비임상 분야에 종사하려면 학위는 필수 덕목이니 대학원 생활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원을 오게 되지만 사실 연구라는 것은 굉장히 막연한데다 그 과정은 굉장히 길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정성이나 편안함을 포기할 수 있으면 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안세정 기자 dkstpwjd4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