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대생이 제일 자신 있는 술기는 현미경 조작..반복 실습 여건이 중요하다
임상술기 54개 항목 지침 개발 완성 단계
수의대생이 졸업 전에 반드시 익혀야 할 임상술기의 매뉴얼이 곧 출간된다. 쉽게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동영상 자료로도 제공된다.
학생들이 실제로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매뉴얼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상실습에 실험동물을 활용하기가 까다로워진만큼 모형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랩, 봉사활동과 연계한 실습교육 등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가장 충분한 교육을 받은 임상술기로 ‘현미경 조작’을 꼽았다는 점도 반복실습의 중요성을 드러냈다.
임상술기 54개 항목 지침 완성 단계
동영상 제작도 본격화
수의학교육 연구에서 수의대생이 갖춰야 할 진료역량은 크게 ‘진료수행’과 ‘임상술기’로 구분된다.
진료수행은 환축이 보이는 주증으로부터 출발해 진단과 치료 전반의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는 능력이다. 그 과정에 보정, 주사, 채혈, 청진 등 각종 임상술기가 수반된다.
전북대 이기창 교수팀은 지난해에 이어 기본 임상술기 54개 항목의 지침을 만들고 있다. 전국 수의과대학의 임상과목 교수진 70여명이 나누어 집필했다. 항목별로 필요한 준비물부터 유의사항, 시행순서를 사진과 함께 상세히 기재했다.
이기창 교수는 “’교과서에 다 있는 걸 왜 또 만드냐’는 의문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의기본임상술기지침은 교과서의 요약문이 아니다”라며 “보호자와 나누어야 하는 대화, 디테일한 수치까지 기재한 구체적인 매뉴얼”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척추관을 따라 척추의 좌우 피부를 바늘로 자극하는 검사’라면 몇 번 척추 지점에서 해야 하는지, 가시돌기를 기준으로 몇 cm 떨어진 지점을 자극해야 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전국 어느 수의과대학에서든 표준화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지목했다.
2년에 걸쳐 완성된 임상술기지침은 내년 교재로 제작될 전망이다. 한국수의임상교육협의회(임교협)와 엠서클 베터빌이 이들 항목의 동영상도 제작하고 있다.
이미 베터빌 홈페이지에서는 제작이 완료된 일부 항목의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임상술기지침을 대본 삼아 임상과목 교수진이 촬영에 임했다. 서울대 서강문 교수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임상술기 항목의 비디오 제작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충분한 교육 받았다’ 최다 응답은 현미경 조작
반복 실습 여건 마련이 관건
시뮬레이션 랩, 대학 목장, 봉사활동
문제는 활용이다. 지침이 아무리 좋아도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면 소용이 없다.
수의대생들이 직접 손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정규 실습과목과 대학 동물병원 로테이션 정도다. 그 마저도 살아있는 실험동물은 물론 카데바조차 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학 동물병원마다 진료 환경이 다른 점도 편차를 만든다. 실제 환자를 학생들에게 맡기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서강문 교수는 “로테이션 로그북을 주어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로그북에는 해봤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실제로 시켜보면 못한다며 망설인다”면서 학생들이 환자에 해보기 앞서 충분히 연습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 랩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학마다 시뮬레이션 랩을 갖출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별도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 안태준 회장은 지침 개발을 환영하면서도 “중요한 건 수의과대학의 교육개선 의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수대협은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임상수의학 과목을 이수한 수의대생(본3 이상, 건국대는 본2 이상)을 대상으로 기초임상술기 54개 항목의 실습교육을 충분히 받았는지 설문조사를 벌였다. 총 92명이 응답했다.
그 결과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던 항목은 ‘현미경 조작(99%)’이었다.
동물보정이나 체온·심박수 측정, 심음 청진, 방사선촬영기 사용, 수술복 착용법 등 비침습적 실습이 80% 이상의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반면 위관삽입(2%), 복강 천자(7%), 흉강 천자(13%), 생검 조직채취(30%), 국소 마취(38%) 등 침습적 실습은 대체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안태준 회장은 “충분히 교육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항목은 ‘현미경 조작’이었다. 본과 1~3학년에 걸쳐 계속 해보기 때문”이라며 “정작 중요한 임상술기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가시험이나 졸업요건 등에 실기시험을 요구하는 등 관련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기창 교수도 “현미경 조작 교육이 특별히 훌륭했다기 보단 반복 노출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실습을 하더라도 특정 시기에 단 한 번 하고 지나가는 방식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과대학에 도입된 나선형 교육방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임상술기 교육이 어려운 것은 대동물도 마찬가지다. 기초 임상술기 54개 항목에는 소에 대한 보정, 체온측정, 외부생식기검사, 직장검사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소임상수의사회 김성기 회장은 “학생들이 실습하러 오면 1~2번은 시켜줘도 더 반복하게 해주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축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서 “직장검사를 실습하기 전에 소 골반강의 해부학적 구조를 이론적으로 숙지했다 해도 처음 실시하면 감을 잡을 수 없다. 100번은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반복적으로 실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대학이 자체적으로 목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태준 회장은 수의료 봉사활동에 학생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실습교육에도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기창 교수는 “임상술기지침 일부 항목은 이미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면서 “내년부터는 진료수행의 지침 작성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 보호자와의 상담문 예시와 관련 증례까지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최소 2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