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진료처럼 묻고 설명하는 학생 모의환자 실습, 매뉴얼로 만든다
로테이션 중 만난 증례로 수의사 역할 해보기..보호자 커뮤니케이션, 임상적 판단 역량 함양
한국수의과대학협회·한국수의교육학회 이기창 교수팀이 11일 오송역에서 첫 오프라인 회의를 열고 수의기본진료수행 지침 작성 추진방향을 논의했다.
조규완(내과), 배춘식(외과), 최수영(영상의학과), 이성림(산과), 나기정(진단검사의학과), 서강문(안과) 등 진료과목별 교수진과 박인철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장이 참석했다.
이날 연구진은 진료수행 항목 일부를 조정하는 한편 진료과목별 교수진이 나누어 집필할 지침의 틀을 잡았다.
특히 진료수행 지침 개발로 가능해질 모의환자 실습을 이미 실시하고 있는 서울대 수의안과 로테이션(서강문 교수)의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신생 자견 관리, 중성화 상담 추가
2016년 졸업역량 설정을 시작으로 매년 이어져 온 수의학교육 개선 연구는 학부생이 진료역량을 익힐 수 있는 실습 지침을 만드는데 이르렀다. 크게 머리로 생각하고 말로 설명하는 ‘진료수행’과 손으로 하는 ‘임상술기’로 구분된다.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쳐 54개 항목에 대한 수의기본임상술기 지침을 개발한데 이어 올해부터는 수의기본진료수행 지침 개발에 나선다.
61개 항목으로 구성된 보호자의 주호소를 출발점으로, 감별해야 할 원인과 이를 위한 검사를 구조화하고 보호자와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2019년 개발한 수의학교육 학습성과와 연계하는 한편 주요 증상 확인, 원인 감별, 주요 신체진찰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관련 증례를 통해 스스로 연습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날 연구진은 61개 항목 중 산과 영역의 일부를 조정했다. 중복될 수 있는 4개 항목을 2개로 축소하는 대신 ‘새끼를 낳았어요’와 ‘중성화에 대해 알고 싶어요’를 추가했다. 질병 상황은 아니지만 모견과 신생견 관리, 중성화에 대한 보호자의 궁금증에 조언하는 것이 일선 수의사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아울러 진료수행 항목별로 제시될 대표 상황에서 기재될 기본 정보는 체온·맥박·호흡수·체중으로 정했다. 의학교육의 진료수행지침이 기본 정보로 혈압·맥박·체온·호흡수를 제공하고 있지만 동물 진료에서는 혈압을 기본적으로 측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진료 시작 전에 체중을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고려했다.
연구진은 8월까지 지침 초안을 마련해 10월말 공청회를 거쳐 11월까지 최종보고서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로테이션 중 만난 증례로 모의환자 실습
학부생이 수의사, 대학원생이 보호자 역할..’쌍방 교육’
실제 진료처럼 묻고 설명한다
의사 국가시험은 진료수행지침에 기반한 배우가 연기하는 모의환자를 진료하는 CPX 실기시험을 치른다.
이번에 개발될 수의기본진료수행 지침도 추후 수의사 국가시험에 실기시험이 도입된다면 CPX 형태의 시험에 활용될 수 있다. 국가시험에 합격한 수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실제 진료에 가까운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틀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이미 이 같은 교육을 한 발 앞서 실시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이날 서울대 서강문 교수는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학생 모의환자 실습’ 교육을 소개했다.
서 교수는 “AVMA 교육 인증에서는 학생의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임상적 판단 역량을 요구한다”며 “학생이 수의사로서 상담하는 실습에 임하고 이를 교수가 조언하는 형태의 미국 수의대 교육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모의환자 실습은 본과 4학년 수의안과 로테이션 과정 중에 진행된다. 학생들은 2주간의 안과 로테이션 중 접한 증례 중 하나를 택해 모의 진료에 나선다. 본4 학생이 수의사 역할을, 서울대 동물병원 안과 진료진(대학원생)이 보호자 역할을 맡는다.
실제 진료와 같이 수의사(학생)가 진료실의 문을 열고 보호자(대학원생)를 맞이하는 것부터 시작해 주호소 및 병력 청취, 검사 결과 및 처방, 치료계획 설명까지 진행한다.
실습자가 부담없이 집중할 수 있도록 모의진료 공간에는 수의사(학생)와 보호자(대학원생), 촬영 담당 1명만 남는다. 교수도 별도의 공간에서 줌(ZOOM)으로 생중계되는 모의진료를 참관한다. 모의진료가 종료되면 보호자 역할을 했던 대학원생과 교수가 개선점을 조언한다.
이날 소개된 모의환자 실습 영상도 줌으로 진행된 교육을 녹화한 것이다. 수의사(학생)가 쉽게 설명하지 못하거나 어려운 용어를 쓰면 보호자(대학원생)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재차 질문하기도 하는 등 실제 진료와 유사한 대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서강문 교수는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좋다. 시켜 보면 정말 잘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면서 “대학원생도 보호자 역할을 하고 코멘트 해주는 과정에서 ‘진료를 어떻게 해야겠다’를 느낀다. 쌍방 교육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검사결과까지 확보된 증례를 활용하는만큼 학생 1명의 모의환자 실습 1회에 10~2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고, 교수는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형태라 생각보다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도 덧붙였다.
전북대 이기창 교수는 “진료수행지침이 만들어지면 이러한 교육을 매뉴얼화하여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수의사 국가시험에) 실기시험으로 도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