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수의사 6개월차, 첫 문진을 덜덜 떨면서 했다”

환자 만날 준비 안된 채 졸업한다..의사소통·임상추론 역량 기를 진료수행지침, 적용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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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목) 분당 스카이파크 센트럴호텔에서 열린 수의기본 진료수행지침 연구 공청회에는 특별한 손님이 왔다.

올초 수의과대학을 졸업해 일선 동물병원서 인턴 8개월차인 수의사 2명이 현장에서 느낀 수의학교육의 문제점을 전했다. 다른 수의대 출신이지만 한 병원에서 근무 중인 이들이 지적한 아쉬움은 비슷했다. 뭘 실제로 해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A수의사는 “인턴 입사 전에는 채혈, 보정, 카테터 장착 등의 기본 술기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술기 능력이 안 따라주면 지식이 있어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다”며 결국 동물병원 선배수의사들의 지도 아래 하나씩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A수의사는 “입사 6개월차부터 실제 진료에 투입됐는데, 첫 문진을 덜덜 떨면서 했다. 대학에서는 아예 경험이 없었다”면서 “술기나 문진 교육이 강화되면 예비수의사들이 실무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수의사도 마찬가지 아쉬움을 전했다. B수의사는 “입사 당시에는 수의사 면허는 있지만 일반인보다 좀 (수의학) 지식이 있다 정도이지, 술기나 문진에서는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고 토로했다.

대학원 진학도 고민했지만 환자 문진도 기본 술기도 갖춰져 있지 않아 경험을 먼저 쌓기 위해 인턴행을 택했다는 것이다.

B 수의사는 “보호자를 문진하거나, 초진 보며 차트 작성하는 것을 내과 시간에 알려주시긴 하지만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몸에 익지 않는다”며 “기본적인 차트 작성부터 (동물병원) 선배수의사 분들께 처음부터 배웠는데, 학부생 때 체계적으로 배우고 졸업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건국대 현재은 교수는 “문진이 굉장히 어렵다. 보호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아내야 하다 보니 난이도도 더 높다”면서 “이에 대한 트레이닝을 못하다 보니 임상수의사를 하다가 중간에 전공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뤄져야 했을 진로선택이 일단 임상수의사로 일한 이후로 미뤄지는 셈이다.

수의기본 진료수행지침 중 발췌. 환자의 주증에 대한 스키마와 문진, 관련 증례를 제시한다.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이 매년 진행해온 수의학 교육 개선 연구는 올해 수의기본 진료수행지침 개발로 이어졌다.

진료수행지침은 총론에 해당하는 의무기록작성, 환자상태보고를 시작으로 동물환자가 보이거나 보호자가 호소하는 주증상 63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지침은 ‘머리로 생각하고 말로 진료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매뉴얼이다. ‘오줌을 못 싸요’, ‘설사를 해요’, ‘걸음걸이가 이상해요’ 등의 주호소에서 출발한다. 환자가 보이는 해당 주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원인을 구조적으로 떠올린다. 이를 감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보호자에게 질문하거나, 추가 검사를 제안한다.

그 과정에서 신체를 진찰하거나 검체를 채취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까지 개발한 수의기본 임상술기지침과도 연계된다.

진료수행지침 개발 연구진에는 진료과목별 교수협의회 대표들이 참여했다. 63개 항목별 지침은 진료과목별로 분류해 전국 수의과대학 임상교수진이 나누어 작성했다.

각 항목별로 가능한 원인을 구조화한 스키마(scheme)와 문진 사항, 학생들이 연습해볼 수 있는 관련 증례를 담았다. 의학교육의 기본진료수행지침과 동일한 형식이다.

    

문제는 실제 수의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날 공청회는 먼저 진료수행지침을 만들어 교육에 반영하고 국가시험 실기평가까지 하고 있는 의대의 경험을 구했다.

간담췌외과를 전공한 외과전문의이자 의학교육 전문가인 인제의대 의학교육학교실 노혜린 교수가 강연에 나섰다.

의대가 고민했던 교육 문제는 지금의 수의대와도 닿아 있다. 갓 졸업한 의사들이 환자가 내원한 주요 이유나 임상표현(CP, Clinical Presentation)을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하고, 임상표현에 기반해 구조적으로 원인을 찾기 보다 암기식으로 진료하고, 문진·의무기록 작성·신체진찰 등 기본부터 불완전했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진료수행지침을 활용한 교육의 목표가 임상추론(clinical reasoning) 역량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환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가능한 원인을 분류하고, 규명하기 위한 검사를 제안하고, 객관적 근거에 기반해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핵심역량이다.

노 교수는 “(진료수행지침은) 실기시험 대비용이 아니라, 실제 진료현장에서 전문가가 어떻게 진료하는지 예시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진료수행을 다룬 의대 교육과정과 국가시험 실기평가 모두 표준화환자(SP, Standardized Patient)를 활용한다. 환자 역할을 하는 배우다.

50개가 넘는 진료수행 항목의 주증상을 제대로 연기하며 학생들이 문진할 수 있도록 하려면 표준화환자 역할을 할 배우 20명 이상이 필요하다.

노 교수는 “실제로도 지역의 아마추어 배우를 많이 쓴다”면서 “한 대학이 운영하기엔 부담이 커서, 근처에 있는 의대들이 컨소시엄을 이뤄 표준화환자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규모의 경제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컨소시엄을 통해 배우들을 교육해 표준화환자로 만든다.

세부 질환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환자의 주증을 분류하고 그에 따른 원인의 유형을 추론하기까지를 의과대학에서의 교육목표로 지목했다 (자료 : 노혜린 교수)

학생들은 여러 증례에 해당하는 표준화환자를 만나 대화한다. 환자와 라포르를 형성하면서 주호소와 관련한 증상, 병력, 기저질환 등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임상표현형을 뽑아내고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스키마를 스스로 만든다. 환자와의 의사소통 역량과 임상추론 역량을 함께 익히는 셈이다.

가령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에게 통증이 만성적이었던 건지, 다른 곳도 아픈지, 소화불량인지를 체크해야 한다. ‘정말’ 아랫배가 아픈 건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어서 급성충수염처럼 긴급한 문제일 수 있는 벽쪽통(parietal pain)인지, 아니면 내장통인지(visceral pain)도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노 교수는 “진료수행지침에 제시된 스키마도 그 부분을 작성한 교수가 가진 스키마를 보여줄 뿐 정답이 아니다”라며 “학생들이 다양한 맥락의 사례를 접하면서 의학지식을 스스로 조직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추론과 의사소통을 통합적으로 다뤄야 한다”며 “의사소통 역량이 부족한 학생들도 환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부족하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만큼 빨리 노출하고 빨리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 교수는 학생들이 임상표현을 찾아내고 스키마를 구조화해내는 실습을 자체적으로 도입한 후 동료 교수들에게도 확산시켰다.

국가시험에서 표준화환자를 진료하게 하는 임상수행능력평가(CPX)가 도입되면서는 대부분의 의대가 본과 4학년 2학기의 실습과목으로 시작했다고 전했다. 실기평가에 대한 시험대비과목 정도였던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진료하는 방식의 실습교육을 시켜보니 더 큰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3학년 임상실습 진입 전에 다루거나 아예 1학년때부터 지역환자를 만나보게 하는 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 연구진 회의에서 서강문 교수가 소개한 모의환자 실습

당장 수의대에 진료수행지침을 활용한 교육을 전면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시험에는 없지만 의대처럼 초기에는 본과 말미의 실습교육으로서 시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서강문 교수는 본4 로테이션 수의안과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학생 모의환자 실습’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안과 로테이션에 참여한 2주동안 학생들이 만났던 케이스 중에서 임의로 하나를 골라 대학원생 안과 진료진이 보호자 역할을 한다. 일종의 표준화환자인 셈이다.

수의사 역할을 맡은 학생은 보호자(대학원생)와 대화하며 주증과 병력을 파악하고 검사를 제안한다. 해당 케이스에 확보되어 있는 검사결과를 제시해주면 수의사(학생)가 처방, 치료계획까지 설명한다. 해당 모의진료 과정은 줌(zoom)으로 녹화하여 교수와 대학원생이 피드백한다.

서 교수는 “모의환자 실습이나 진료수행 지침 교육은 임상과목까지 다 배운 학생이어야 가능하다”면서 본과 4학년이 교육대상이 될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진료수행 지침의 안과 관련 3개 항목(눈이 빨개요, 앞을 못 보는 것 같아요, 눈이 이상해요)은 내년부터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 김진수 비대위원장은 임상과목을 배운 이후 여러 진료과목의 진료수행지침을 교육할 통합과목을 개설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학생이 진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자를 확보하고, 교수들이 환자 중심으로 교육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점도 지목됐다. 대학병원을 찾는 보호자가 학생 교육이 함께 이뤄진다는 점에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한편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보호소 동물에 대한 사회공헌도 적극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참석한 인턴수의사 2인 모두 로테이션 과정에서 실제로 뭔가 해본 경험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진조차 따라가서 들을 기회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개발된 임상술기지침과 내년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는 진료수행지침을 본과생 실습에 어떻게 반영할 지가 관건이다.

박인철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장은 “진료수행, 임상술기 지침의 교육 이행여부를 3주기 수의학교육 인증기준에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강문 교수는 “(수의학교육 개선은) 선두에 선 교수 몇 분이 이끄는 것이다. 만장일치를 기다리면 절대 못한다. 나부터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턴수의사 6개월차, 첫 문진을 덜덜 떨면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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