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실습을 아예 못하는 수의대도 있다’ 동물사체 교육 활용 체계 정비해야

3주기 인증기준에 해부실습 예산확보 신설 예고..’안락사되는 유기견·실험견 추가활용해야’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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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기 수의학교육 평가인증기준안 중 발췌

한국수의학교육인증원이 12월 19일(목) 공청회에서 공개한 3주기 수의학교육 평가인증기준안에는 여러 정량지표들이 추가됐다. 인증평가의 공정성·객관성을 개선하라는 교육부의 권고를 반영하고, 각 대학이 교육개선 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차등적인 평가를 실시하기 위해서다.

신설된 정량지표들 중에서는 ‘해부학 및 임상실습을 위한 실습견(비글견)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는 기준이 눈길을 끌었다. 해당 기준이 포함된 시설 및 자원 영역을 발표한 남상윤 충북대 교수는 “대학 본부로부터 별도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격기준으로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해부 실습은 본격적인 본과 교육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 꼽힌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면서도 해부용 시신 확보 문제는 고려해야 할 주요 문제 중 하나로 대두됐다.

수의학교육 인증기준안에 해부실습용 예산 확보 문제가 따로 기재된 것은 그만큼 수의학교육 현장에서 해부실습용 카데바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본지 학생기자단이 지난해 10개 수의과대학의 해부실습에서 사용한 카데바를 조사한 결과 대학에 따라 편차가 컸다(가~차 10개 대학은 가나다순 아님에 유의-편집자주).

8~10마리를 확보해 조원 6~7명당 카데바 1구를 실습하는 형태가 가장 많았다. 대학에 따라 개 이외에도 고양이, 소, 돼지, 말, 닭 등 다른 축종의 해부실습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카데바가 부족한 대학도 여럿이었다. 대는 학생들이 실습에 쓸 수 있는 카데바가 3개에 그쳤다. 조별로 16명이 하나의 카데바에 몰려 있었던 셈이다. 대도 타 대학에 비해 학생숫자가 많지만 카데바는 6개에 그쳤다.

대 학생은 “학생수에 비해 카데바가 적다 보니 공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는 아예 개 해부실습을 진행조차 못했다. 대 학생은 “3D 영상을 활용한 실습만 했을 뿐 실제 카데바에 대한 해부실습은 전혀 못했다”면서 “실습교육 부족을 우려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몇 년째 실제 해부실습은 진행되지 않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카데바에 편차가 있는 주요한 이유로 실습예산이 꼽힌다. 한국수의해부학교수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해부실습비 예산이 가장 적은 곳과 많은 곳의 격차는 28배에 달했다.

해부실습이 마비된 대의 수의해부학 실습비는 연간 150만원으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정식 실험동물로 비글견을 구매하는데 필요한 단가가 250~3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돈이다.

반면 본부 지원을 따로 받는 5개 대학은 2~3천만원을 확보했다. 비글견 8~10마리를 실험동물공급기관에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수의해부학 A교수는 “과목마다 주어지는 정규 실습비로는 비글 1~2마리도 사기 어렵다. 별도의 예산 지원이 없다면 해부실습은 불가능하다”면서 “(해부실습용 개 수급은) 매년 고민이다. 구할 수만 있다면 춘천도 가고 완주도 간다”고 말했다.

3주기 수의학교육 인증기준안은 해부실습을 위해 별도의 예산을 확보하라고만 요구할 뿐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학마다 학생수는 조금씩 다르지만 편의상 학년당 50명이라고 한다면, 5~6인 1조의 해부실습을 위해 필요한 실습견은 8~10마리다. 매년 3천만원의 예산이 필요한 셈이 된다.

또 다른 수의해부학 B교수는 “지난해에도 여러 번 메일을 보내고 찾아가고 사정해서 겨우 (해부실습용 비글을 구매할) 예산을 추가로 받았다. 올해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A교수와 B교수 모두 별도의 본부 지원이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당장 예산 문제로 해부실습이 마비된 수의대마저 있다. 부족한 예산 속에서 해부실습을 하려면 정식 실험동물을 쓰기 어려운 상황으로도 내몰린다. 예산 확보를 수의학교육 인증기준에 명시해 각 대학이 반드시 따르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돈으로 사서 쓰자’를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보기도 어렵다.

취재 과정에서 접한 교수, 학생들 모두 어차피 안락사되고 있는 유기견이나 실험견을 해부실습용으로 추가 활용하거나 기증을 받는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 해부실습을 위해서만 개를 추가로 죽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람 의대의 해부학실습은 기증된 시신으로 진행된다. 김인범(가톨릭의대)·주경민(성균관의대) 해부학 교수팀이 지난해 대한의학회 영문학술지(JKMS)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438구의 시신이 해부학 교육에 사용됐다. 의대생 대 카데바 비율은 7.4대1로 나타났다.

반면 반려견을 기증 받아 수의해부학 실습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A·B교수 모두 기증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A교수는 “대학동물병원에도 반려견 환자가 기증되는 경우가 이제는 거의 없고, 화장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B교수는 “대학원 시절을 포함해 이제껏 기증 받은 사례는 단 2건이다. 그중 한 건은 수의사 출신 의대 교수가 기증했던 경우였다”면서 “대학동물병원에서도 사후 해부학 실습용으로 사용된다며 연구 목적 기증을 제안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전했다.

해외 수의과대학은 반려동물 사후 기증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동물보호센터나 동물실험기관에서 안락사되는 유기견이나 실험견을 해부실습용으로 추가 활용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동물보호법은 유실·유기동물, 봉사동물(사역견)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안락사된 이후에도 금지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A교수는 “이에 대한 정부의 해석을 물어봐도 비협조적이었다”고 말했다.

실험 종료 후 어차피 안락사될 실험견을 해부실습용으로 확보하는 것도 힘들다. 물리적으로는 실험과정의 마지막 종료(안락사)와 해부실습용 카데바 제작 시점을 조율하면 가능하지만, 외부의 시선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B교수는 “CRO 등에 문의해보면 협조해주고 싶어는 하는데, 동물보호단체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에 성사되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편에서는 매년 수 만마리의 개가 안락사되는데, 해부실습을 하려면 멀쩡한 실험견을 추가로 사서 죽여야 한다. 그 마저도 실험견을 살 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

안락사되는 개를 해부실습으로 추가 활용하는 것은 실험동물 복지를 위한 3R 원칙에도 부합한다.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의 수를 직접적으로 감소(Reduction)시킬 수 있다.

수의과대학이 알아서 잘 확보할 테니 믿어달라고만 할 문제도 아니다. 국내 일부 수의과대학이 식용 목적의 개 농장 등 출처가 불분명한 개에 대한 실험으로 논란을 빚었던 사례도 있다.

실험동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안락사된 유기견·실험견을 해부실습에 활용할 수 있게 하면서도 구체적인 출처와 활용, 종료까지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교수는 “정부는 동물사체를 교육·연구에 활용하기 위한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며 “동물사체 기증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민간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해부학 실습을 아예 못하는 수의대도 있다’ 동물사체 교육 활용 체계 정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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