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를 둘러싼 수의사 간 고발 사건’ 토론한 수의대생들
내재된 윤리적 이슈·사회문화적 배경을 분석하는 ‘다양한 시각’에 방점

2월 16일(일) 서울대 수의대에서 열린 제2회 수의인문사회학 컨퍼런스는 수의인문사회학을 소개하고,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수의인문사회학 수업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천명선 서울대 교수는 “실제 수의인문사회학 수업의 방식”이라며 조별토론 세션을 진행했다.
실제 사례를 각색한 아래 케이스를 학생들에게 제시하여 내재된 윤리적 이슈와 사회문화적 배경, 수의사 집단의 대응 방향을 토론하도록 했다. 천명선 교수와 연구원들이 토론 과정을 도왔다.
조별로 발표한 토론 결과의 텍스트 마이닝을 적용하고, 천 교수가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2년 전 열린 첫 컨퍼런스의 조별토론이 다룬 문제는 ‘안락사 대행 서비스’였다. 이번에는 진료비 문제를 둘러싼 수의사 간의 갈등을 다뤘다.
수의사 A는 서울 지역 한 동물병원 원장이며 보호자를 위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채널 구독자들은 종종 적정한 진료비에 대한 질문을 해오곤 한다. 그래서 채널을 통해 타 동물병원의 진료내역과 진료비 자료를 받아서 의견을 주고 있다.
수의사 B는 동물에게 최고급 의료를 제공하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의료 장비와 재료 모두를 최고급 수입 제품으로 사용하며, 매년 휴가를 내고 미국 임상 컨퍼런스에 참여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데도 여념이 없다. 그래서 본인의 진료 수가를 다른 병원에 비해 당연히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의사 A는 수의사 B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한 보호자로부터 해당 진료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B병원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믿을 수 없는 진료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채널을 본 수의사 B는 수의사 A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3~5인씩 11개조로 나뉜 학생들은 수의사 A, B와 관련된 윤리적 이슈를 토론했다. 단순한 호불호나 잘잘못 따지기를 넘어 다양한 윤리적 키워드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학생들은 수의사 A에 동료의식이나 홍보 목적일 수 있는 공개 저격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보호자의 알 권리 측면도 살폈다. 수의사 B를 두고서는 보호자와의 소통 문제나 수가 책정 기준이 반복적으로 거론됐다. 수의사 A는 보호자 중심, 수의사 B는 환자 중심의 가치를 중시했다고도 봤다.
학생들은 위 케이스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배경도 함께 탐색했다. 동물진료 수가 설정, 동물진료의 가치 책정, 수의사에 대한 사회적 기대, 수의사의 책임과 의무 등의 배경이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배경들은 다양한 시각으로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틀이 된다.
동물에게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도, 합리적인 가격 설정을 통해 보다 많은 동물이 보편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나름의 가치를 갖는다. 동물진료에 부여하는 가치는 시대별로, 개인별로 달라진다.
각자의 진료 수가를 책정하는 것도 수의사의 책임이지만, 특정한 진료에 대한 가격이 과도하게 높거나 낮은 지, 과잉진료인지 아닌 지를 판단하는 것도 결국 수의사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단순히 ‘공개 저격은 선 넘었지’라고 치부하고 넘길 문제가 아니라, 수가 문제에 대한 수의사 간 논의는 사회적인 기대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이날 컨퍼런스에서 강조한 수의인문사회학의 특징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시각이다.
천 교수는 “수의사를 둘러싼 문제들에 당장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문제의 본질을 보다 면밀히 이해하려는 과정이 수의인문사회학”이라고 설명했다.
‘동물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비판을 두고서도 진료비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지불되어 왔는지, 동물병원에서 청구되는 형식은 어떤 지, 진료행위에 들인 수의사의 투자를 보호자들이 구분하거나 필요성에 공감하는지, 수의사의 업무환경은 어떤 지, 환자별로는 어디까지가 진료의 적정선인지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이러한 다양한 측면을 인문학, 사회학적 도구로 분석하는 것이 수의인문사회학”이라며 “수의사와 관련된 이슈에 본질적 질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까지가 학부생에게 요구되는 수의인문학적 소양이라 볼 수 있다. 그 해답은 수의사로서 평생에 걸쳐 탐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컨퍼런스를 주최한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수대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수의인문사회학은 수의사의 전문직업성을 만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한다”면서 “수대협은 예비수의사의 윤리의식과 전문직업성을 확립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