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기관 : Small Animal Teaching Hospital, Faculty of Veterinary Science, Chulalongkorn University
실습일정 : 2016.01.11.~2016.02.05., 4주
지역의 이름 있는 동물병원에서 실습을 한 후 호기심에 임상학회에 참석했다. 어설픈 약리지식과 실습 동안 어깨너머로 진단과정을 경험한 것이 도움이 됐는지 강연내용이 들리기 시작했다.
임상과목에 대한 목마름, 강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쁨에 열심히 학회를 다녔다. 현재 임상의 진단은 어느 정도 체계적인지, 진단기법과 장비는 어느 수준으로 이용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며 학회를 다니다 문득 ‘이왕에 학회 다니는 것, 통 크게 해외학회를 가보자’하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보았다.
2015 WSAVA 컨퍼런스, 5월 방콕.
‘방콕이면 비행기 값을 감당할 수 있겠구나’. 많은 고민 끝에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을 받아 태국에 갔다. 해외 교수님들과 전문의들의 강연을 듣고 겨우 깨달은 것은 학교 교수님들 자료와 강의가 결코 세계 수준에 뒤쳐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비가 빠듯해 공원, 사원에서 이름 모를 개, 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친절한 태국 사람들 만큼 길거리 개, 고양이들도 순해서 한참을 개, 고양이들과 놀았다.(두어번 제대로 물려서 아직 광견병 잠복기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5년째 다니는 수의대가 지겨웠고, 첫 해외여행이 설레기도 했고, 만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친절했으며, 이름 모르는 절에서 개냥이들과 한가롭게 보낸 시간이 아련해서 다시 오고 싶었다.
귀국 후에 데일리벳의 카셋삿(Kasetsart) 수의과대학 동물병원 탐방기를 읽고 태국 수의료 환경에 매료되어 마음이 더 깊어졌다.
일이 되려고 했는지 보름 후에 IVSA 2015 겨울학생교류프로그램(Winter Individual Exchange Program)이 공고 되어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서류(영문 포트폴리오, 영문지원서, 국문지원서)를 준비했다. 하필 기말고사 기간과 겹쳐서 학점이 참……잘! 나왔다.
(IVSA가 주관하는 Program은 개인EP, 그룹EP, Congress, Conference, Symposium등 다양하다. 내가 다녀온 2015 겨울 개인EP는 2015년 5월 27일에 공고되었고, 2016여름 개인 EP는 2015년 9월 20일에 공고되었다. IVSA홈페이지를 방문해 지난 프로그램들의 구성과 참가자격, 지원서류를 살펴보면 준비에 도움이 될 것이다)
1차 선발의 기쁨과 동시에 기말고사와 2차 서류(교수님 추천서, 영문CV)를 준비해야 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모자란 제자를,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인재인 듯이 정성으로 추천서를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1,2차 서류를 준비하면서 영작문이 참 힘들었다. 바른 문법과 좋은 문장을 고민하다가 글이 짧아져 최종선발까지 불안했다. 돌이켜보니, 정확한 문법이나 유려한 문장보다 ‘왜 가고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잘 정리해 꿈과 열정을 드러내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6월말 2차 서류를 제출하였지만 7월, 8월, 9월, 10월이 되도록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 9월에 다음 해 여름 개인 EP가 공고되고 1차 선발자 발표도 났지만 ‘서류를 검토중입니다’라는 답변만 얻었다. 10월에는 반쯤 포기하고 다른 실습을 알아보려 했다.
(IVSA 개인EP를 준비한다면 자교 IVSA staff와 상담을 통해 충분한 조언을 얻기를 권한다. 조언을 바탕으로 ‘과거에 개인EP가 성사된 곳은 어디인지’, ‘해당기관에서 원하는 때에 실습이 가능한지’, ‘요구되는 자격(또는 언어, 비용)이 있는지’등을 두루 고려해서 전략을 세우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나라와 각국의 IVSA staff들이 바쁜 시간 쪼개서 성심으로 지원자를 도와주지만 실습의 최종허가는 해당 실습기관에 달려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 IVSA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경로를 찾아 메일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병행하길 권한다)
10월 중간고사 기간에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최종허가 답장이 왔다. 기쁨도 잠시, 실습비가 들지 않는다는 IVSA 공고와는 달리 비용이 생각보다 많았다(왕복 항공편 40만원, 실습비 15만원 × 4주=60만원, 숙소 보증금 30만원, 월세 30만원). 그리고 서둘러 항공편을 예매해서 태국 IVSA에 일정을 알려줘야 했다. 장학재단 생활비대출(한 학기당 150만원)받으면 돌려막기로 하고, 이렇게 저렇게 능력자 친구1과 유부남 친구2의 비자금을 털어 준비를 마쳤다.
(데일리벳 사이트를 자주 방문했지만, 해외실습후기들은 읽지 않았다. 영어 잘하는 ‘금수저’학생들의 실습을 핑계로 한 해외여행이라는 편견과 삐딱한 질투 때문이었다. 함부로, 다른 학생들도 빚을 내서 해외로 나가라고는 못하겠다. 다만, 천천히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준비해서 한 번은 도전해보라고, 적어도 지금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전해주고 싶다.)
1/11 Ophthalmology Unit
실습 첫 날, 문자 그대로 veterinay ‘teaching’ hospital을 너무나 사무치게 느꼈다.
출라롱콘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의 정책. “응급실을 제외한 병원의 첫째 우선순위는 학생교육이다. 환자진료는 두 번째다. 이 룰을 따를 수 없는 보호자는 다른 병원을 이용하라.”
일선 동물병원에서 리퍼한 차트가 인자한 할머니 안과 교수님께 전달되면 교수님께서 환자의 상태를 학생들(6학년)에게 브리핑을 한다. 보호자와 강아지가 진료실에 들어오면 1 case씩 돌아가며 학생(우리조는 4명)이 기본검사를 진행한다(STT, menace, PLR, Dazzle)
학생들은 보호자와 이야기하고 웃으면서 야무지게 기본 검사를 진행 한다. 학생들의 기본 검사를 바탕으로 교수님이 일부 테스트를 다시 하거나 좀 더 난이도 있는 테스트를 한다. 유심히 관찰해야 하는 병변은 학생들에게 자세히 보여주면서 설명한다.
교수님이 보호자 교육을 하는 와중에 학생들도 보호자들과 중간 중간 이야기하는데, 교복 입은 작고 앳된 여학생들은 보호자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보호자들은 매우 공손하게 배꼽 손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환자가 나가면 교수님이 학생들의 가진단을 검토하고 감별진단에 대해서 짧지만 내공 있는 강의가 이루어진다.
이 무슨,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냐. 화목한 친구네 놀러 온 불우 아동마냥 낯설다. 알아들은 척 했다가 이어지는 질문에 번번히 대답을 못해 ‘poor student’가 되었다. 인자한 할머니 교수님께서 나에게도 기본검사 기회를 주셨지만 보호자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차마, 할 엄두가 안나 썩은 미소 어정쩡하게 웃고 만다.
1/12 Neurology Clinic
우리나라는 아직 수의신경과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외과에서 신경계 검사를 해서 수술여부를 결정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신경과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태국에서 Neurology Clinician이 되기 위해서는 학위가 필요하지는 않고 Certificate이 요구된다. 신경계 수술은 하지 않고 진단과 처방, 환자관리를 담당한다. 신경외과가 아니라 신경내과인 셈이다.
대부분의 환자가 노령이며 후지마비 또는 부전마비를 가지고 있다. 진료 전에 차트를 보여주면서 병력을 요약해주시고 태국어로 진료하는 와중에도 중간 중간에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려주신다. 환자가 가고 나면 어떤 처방을 어떻게 왜 했는지 설명한다.
진료 사이사이 남는 시간에도 뭐라도 설명해주시려고 CSF카테터를 꺼내 보여주고 인상적인 케이스의 MRI를 설명해주셨다.(출라롱콘 MRI없음, Kasetsart에 의뢰)
한국에서는 선생님들이 너무 바쁘셔서 질문하기가 두려웠는데 아무런 거리감도 권위의식도 없이 따뜻하고 자상해서 적응이 안 된다.
8시 진료시작 12~1시 점심 1시~3시 오후 진료 3시~4시 차트정리, 퇴근
햇빛이 환한 오후 4시에 퇴근하며 저녁 메뉴와 디저트를 고민하는 여유가 참 부러웠다.
노숙자아저씨가 콧털을 머리카락처럼 휘날리며 노끈 둘둘 감긴 박스떼기를 풀자 부끄럼 많은 후지마비 고양이가 있었다. 종이차트의 파일철이 두꺼운 걸 보니 고양이는 꽤 오래 치료를 받은 모양이다. ‘아! 이래서 태국 수의학이 발전했구나’ 싶었다.
노숙자 아저씨 본인 몸이 아프면 대학병원가서 신경 진료 못 받을 텐데. 후지마비라 때 마다 밥 챙겨주고 똥, 오줌 치워야해서 온전한 아이들 보다 더 손이 많이 갈 텐데. 똥오줌 못 가리는 동물을 버리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수의신경과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잠시, 고민했다
1/13 Dermatology Clininc
Dr.도넛은 큰 누나 같다. 자상한데 자꾸 뭘 시킨다.
“이리 와서 여기 병변을 봐. 이건 모기 물린 자국 이고, 이건 염증인 것 같아”
“이리 와서 현미경을 봐. 말라쎄지아야”
“Uhm. I cannot distinguish it”
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캡쳐하더니 천천히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What is this?”
“그건 아티팩트야.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몰라. 모르는 것은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면 돼. 두려워하지마.”
보호자와 환자가 기다리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조곤조곤 나에게 설명한다. 기다리는 보호자가 민망해 두 눈 부릅뜨고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I’m sorry. I didn’t understand. Thank you for explanation”
“고마워하거나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너는 비용을 지불했어”
‘아. 맞다. 나는 돈을 냈구나’
Dr.도넛이 나에게 대기실로 가서 환자를 불러 오라 한다. 대기실로 나가 태국 개 이름을 힘차게 쭈뼛쭈뼛 불러본다. “락키~”“콜라~”“마루아이~”“까흐땅~” 대기실 가득한 태국 보호자들이 당황하거나 키득키득거린다. 다행히 보호자들이 잘 알아듣고 진료실에 온다.
Dr.도넛의 Waiting List를 보았다. 다음 두 달의 예약환자가 빼곡하다. 두 달 동안 예약이 밀려 있는 것도 놀랍지만, 8시~12시에는 시간당 4 case씩, 13시 ~ 15시에는 시간당 3 case씩 시간 여유가 충분하게 잡혀있었다.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Dr.도넛이 나에게 숙제를 주었다. 그녀는 항상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고 있어서 뉘앙스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래도 숙소에서 졸음을 참으며 ‘쿠싱증후군의 특징과 진단’을 정리해서 다음 날 드렸다. 며칠이 지나 다른 부서에 있는데 제출한 숙제가 여기저기에 자상한 코멘트가 달린 채 되돌아 왔다. 태국 학생들이 부러웠다.
1/14 Cardiology and Nephrology clinic
Clinician들이 학부생들을 소개할 때 항상 “This is Doctor OOO”라고 한다. 태국 학부생들은 Doctor대접 받을 자격이 있다.
환자가 오면 차트가 Clinician에게 전달되고 차트를 바탕으로 Clinician이 학생들에게 ‘병원에 왜 왔으며, 어떤 진단을 했고, 처방을 어떻게, 왜 했으며, 오늘은 아마도 이러 저러한 부분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라고 브리핑한다. 브리핑을 받은 학생들이 환자를 만나 병력청취, 신체검사, 채혈, IV 카테터 삽입을 보호자 앞에서 당당하게 수행한다. 투약 용량, 수액 용량 계산도 거침이 없다.
브리핑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Clinician이 와서 환자를 살피고 보호자를 만나 상담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자를 처음과 끝에 만나는 사람은 학부생이었다.
Clinician, 학생들 모두가 나에게 청진기를 가져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실습할 때, 청진기를 목에 메고 있으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병원놀이 하는 건방진 실습생’으로 보일까봐 청진기를 목에 두르는 게 어색했다고 답하기에는 영어가 짧다.
Meww는 소지섭을 좋아하는 눈웃음이 예쁜 6학년 학생이다. 나를 불러 이 강아지는 오른쪽과 왼쪽의 심잡음이 다르니 청진기로 들어보라 한다. 나는 깜짝 놀라 “Can you distinguish murmur of right side and left side?” 물어보니, 대답 대신 당황한 표정을 짓는데 ‘그럼 너는 5학년이라더니 좌우심잡음을 구별 못하니?’하는 것 같다.
Meww, Oil, Yui는 열광적인 한류 팬이다. 한류 덕분에 소지섭 부럽지 않은 인기를 잠깐 맛보았다. ‘Oppa(오빠)’와 ‘Ahjeoussi(아저씨)’의 차이를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Abdominal Distension Ahjeoussi가 되었다.
1/15 Emergency Unit
Emergency Unit은 응급환자와 중환자관리를 담당한다. 내가 간 날은 응급환자가 뜸했고 수혈이 요구되는 빈혈환자들이 많아서 수혈 절차와 출라롱콘 수의과대학 혈액은행(CU Blood Bank)의 시스템을 살펴볼 수 있었다.
태국 학생들과 수의사들은 농담으로 ‘Thailand is paradise of parasite’라고 했다. 실제로 태국 실습 4주 동안 Ehrlichia canis 감염에 의한 빈혈, Anaplasma 감염에 의한 혈소판 감소증을 매일 숱하게 만났다. 벼룩, 이, 진드기와 같은 외부 기생충 중증 감염으로 인한 빈혈환자들도 많았다.
질병의 치료나 수술에 앞서 빈혈을 관리해야 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혈액은행은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PCV 15% 이하일 때 수혈이 권유되는데 수혈을 두 번, 세 번씩 받은 환자도 많았다. 수혈 전과정에 학부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공혈견들은 공혈의 댓가로 돈을 받지 않는 대신 백신접종과 건강검진을 받고 혈액을 기부한다. 수혈비용은 대략 10만원 정도인데, 수혈이 일상적이어서 마치 조제실에서 비싼 약을 꺼내 쓰는 느낌이었다. 기부에 의한 공혈과 일상적인 수혈 처방, 혈액은행은 참으로 부러운 시스템이다.
Dr.Joe가 신체검사를 지시했다. 입원 케이지 안에 있는 코카스패니얼. IMHA, CKD, Splenomegaly. 슬픈 눈으로 바닥에 엎드린 녀석의 푸석한 피부를 잡아보니 축 늘어진다. 주위의 학생들이 그 개는 공격적이니 만지지 마라 한다. 기운이 있을 때는 공격적인가 보다. 저녁에 보호자 아주머니가 왔다. 수수한 옷차림,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
Dr.Joe에게 물었다. “저 개의 예후는 매우 좋지 않다. 보호자의 attitude가 궁금하다”
나는 그냥 Dr.Joe가 느낀 보호자의 태도를 물어 보았는데, Dr.Joe는 다시 가서 보호자에게 물어본다. 대화중에 ‘꼬레’, ‘꼬레’가 나오고 두 사람이 간간히 나를 바라보는 것으로 보아 내가 한국에서 온 학생이며 무슨 질문을 했는지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Dr.Joe가 돌아와 나에게 답했다. “She understands.”
두 사람이 꽤 길게 얘기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해한다” 한마디뿐.
무엇을 이해한다는 뜻일까. 아주머니의 개가 치료비만 계속 들고 완치는 안 되고 언젠가 죽게 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일까. 사람도, 개도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일까. 그래, 아주머니도 나이가 있으니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은 나보다 잘 아시겠지. 보호자 아주머니가 입원케이지 앞에서 씨익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다.
일반진료과, 한방수의과, 산과, 외과, 영상진단과에서의 일화를 담은 하편(바로가기)으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