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직접 수의학 전문서적 들여오는 `OKVET` 이상돈 대표
수의과대학 학생이나 수의사라면 ‘OKVET’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다양한 수의학전문서적을 국내에 소개해주는 곳이죠.
세계 최대 출판사인 Elsevier의 한국총판으로 수의학 서적을 공급하는 OKVET 이상돈 대표를 데일리벳이 만나 수의사로서 출판업계에 종사하게 된 계기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출판업계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본인이 수의대에 다녔던 2천년대 초반은 지금과 달리 수의학 전문 원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외국서적도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직접 구입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존 사이트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졌고, 인터넷으로 주문한다고 해도 비쌀 뿐만 아니라 시간도 오래 걸렸다. 심지어는 책이 온다는 보장도 없이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당시 국내 일반 출판사들은 수의학 전문서적 주문이 들어오면 필요에 따라 도매로 수입하곤 했는데, 수의대생이나 수의사들도 여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2002년 해외 출판사들까지 참여하는 수의학 국제저널 출판 관련 학회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해외 출판사들이 수의학 분야 서적유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국가별 지사를 통한 유통 가능성을 타진하던 시기였다.
그때까지 본인은 책을 좋아하는 동기들과 아마존, 농경애니텍 등을 통해 책을 구매하곤 했는데, 대전서 열린 학회에서 Elsevier와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학부생이었지만, 수의학 서적에 대한 높은 관심을 Elsevier측에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이를 계기로 Elsevier의 도서를 수의학과에 소개하고 판매를 맡으면서 출판업계에 종사하게 됐다.
Q. 학구적인 목마름 속에서 운명적인 만남이었던 것 같다. 이후 OKVET은 어떻게 발전해나갔나
OKVET이라는 회사명은 OK에 Veterinary(수의학)을 조합한 것이다. 당시 최신 서비스로 출시된 ‘OK캐시백’에서 ‘OK’라는 단어가 어감도 쉽고 활력이 넘쳤다. 젊은 회사니까 더 잘 어울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충남대학교 산학협동관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2009년 대전 대덕구에 테크노밸리가 지어지면서 현재의 위치로 터를 옮겼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Elsevier의 총판이 됐다. Elsevier는 4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의 미디어 회사다. 수의사들에게도 친숙한 Saunders나 Mosby도 Elsevier에 속해 있다. 다양한 출판 분야 중에 의학과 수의학이 포함되어 있다. 관련 도서뿐만 아니라 학술저널도 발행하고 있다.
Wiley-Blackwell사와는 2007년 두 업체의 합병을 기점으로 계약했다. 수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의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 방대한 분야를 다루는 출판사다.
Q. 수의사로서 수의학 전문서적 출판업체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물론 수의사로서 수의학 서적에 대한 판단이나 범주화가 좀더 용이하다. 약간이지만 컨설팅도 가능하다.
‘수의사가 직접 수의학 분야의 다양한 도서를 유통한다’는 점은 Elsevier나 Wiley-Blackwell 등 오리지널 메이커에서도 새롭게 바라본다. 오리지널 메이커의 원서가 OKVET 자체제작 도서의 내용을 참고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Elsevier의 [Canine and Feline Cytology] 3판에 OKVET의 레퍼런스가 실렸다. 최을수 전북대 교수와 작업했던 [Practical guide to diagnostic cytology of the dog and cat]의 일부가 해당 서적의 내분비학 파트 일부에 참고되고 목차에도 올랐다.
본인도 수의사이기 때문에 OKVET은 수의계에 이로운 방향으로 이윤을 추구하고자 한다.
가격경쟁력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학생들과 수의사들이 편리하게 도서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수의사들에게 필요한 책은 웬만하면 수입하고, 적시에 받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Q. 출판업계에 종사하면서 수의대생들과 수의사들이 책을 대하는 모습을 고민할 것 같다.
‘전문가’라는 단어에는 끊임없이 공부해 자격과 역량을 갖추라는 동적인 요구가 있다.
전문가로서 수의사는 면허를 받은 후에도 계속 공부하며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 요구에 1차적으로 필요한 요소가 바로 책이다. 그만큼 아끼고 가까이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Q> 그러한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학생들은 책을 필요로 하면서도 책으로 공부하는 방식에 압박감을 받는 것 같다.
수의학을 공부하려면 다양한 서적을 봐야 하지만 번역판 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결국 원서를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많은 분량의 원서를 모두 다 읽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럴 때는 원서의 가장 큰 장점인 Index를 잘 활용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공부를 하다 보면 그때그때 관련 지식을 찾아봐야 할 때가 있다. Index는 단순한 페이지 표시가 아니다. 내용의 층위에 따라 계단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를 따라가면서 지식을 손쉽게 찾아 확인할 수 있다. 꼭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할 필요는 없다.
두 번째 방안은 그룹 스터디를 활용한 협업이다. 혼자서만 모든 공부를 다 하기란 어렵다. 그룹을 모아 책을 분담하면 시간도 단축되고 선의의 경쟁도 일어난다. 단축된 시간만큼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를 찾아 읽을 여력도 생긴다.
부담을 가진 채로 책을 ‘보기’ 보다는 위 두 가지 방법을 잘 활용하여 수의학도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책을 ‘읽어 나가길’ 권장하고 싶다.
박형빈기자 kamsangchai@dailyve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