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을 떠나기 전에..
샤다이 말 진료소 실습을 처음 알게 된 건 3년 친한 선배의 후기에서 였다. 말 수의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큰 감흥은 없었다. ‘일본까지 가서 말 실습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단지 하나 흥미를 끈 것은, 말 수술을 원없이 볼 수 있다는 점. 그거 하나 제외하곤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실습지였다.
최대한 이곳 저곳 많이 다니면서 배워야지, 방학때는 노는게 무조건 남는거다, 실습도 돈이 있어야 하지, 뭐라도 해볼까?
매년 실습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바뀌었다. 본과 2학년쯤 되자 선배들의 조언, 여러 경험을 쌓는 동기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뒤섞여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과 2학년 학생이 갈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직 임상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괜히 해외까지 가서 겉핥기 식으로 익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3년전 지나쳤던 샤다이 말 클리닉이 생각났다. 말 수의사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지만, 오히려 졸업 후 말 수의사를 할 것이 아니라면 학부생 시절 한번쯤은 말 진료를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정도 경험을 위해서라면 꼭 임상과목 전체를 배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처음 마주친 후 3년이 지난 올해 초 ‘샤다이 말 클리닉’에 실습을 신청하게 되었다.
지원 방법
IVSA를 통한 지원이었기 때문에 IVSA 시스템을 따른다. 상시지원이 가능하지만 선발과 실습확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므로 최소한 실습을 원하는 방학 6개월 전에는 신청해야 한다.
1차 선발은 국내에서 진행된다. 국문지원서와 영어지원서, 개인 포트폴리오를 작성하여 보낸다. 1차에서 선발되면 CV와 교수님의 영문추천서를 준비해 2차 선발단계에 지원한다.
이후 한국 IVSA 개인실습 담당자와 일본 IVSA의 담당자가 연락을 주고받으며 실습희망을 알리고 일본 담당자가 실습병원으로 연락하여 실습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이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본인이 실습을 원한다면 넉넉히 1년전, 최소 6개월전부터 실습신청을 준비해야한다.
실습 신청 당시 필자는 IVSA 임원진이었기에 해외 실습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익숙했다. 그래서 더 신청이 수월했던 것 같다.
일본 홋카이도로 향하다
샤다이 말 클리닉은 홋카이도에 있다. 일본 중에서도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가본 적도 없고, 눈이 많이 오는 도시라는 것 이외에는 아는게 없었다.
다행이 올해 여름부터 저가항공사에서 신규노선을 취항했다. 덕분에 왕복 28만원 정도의 아주 저렴한 가격에 항공권을 구할 수 있었다.
실습은 7월 11부터 22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됐다.
미리 병원장님과 메일을 주고 받아, 약속된 기차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마중 나온 야마가 선생님은 병원에서 가장 어린 분이다. 좀 친숙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으나 낯을 가리시는건지 영어로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다. 물론 필자의 영어 실력 탓도 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펼쳐진 드넓은 평야와 뛰노는 말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들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홋카이도가 대한민국 땅의 2/3이라는데, 얼마나 넓은 땅을 말들을 위해 사용하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필자가 도착한 일요일은 진료가 없어 바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병원 바로 코앞! 게스트하우스처럼 지어진 일본식 단층주택이었다. 실습에 설레는 마음과 낯선 곳에서 혼자 자려니 무서운 마음에 첫날밤 잠을 설치고 월요일, 실습이 시작됐다.
7/11(월) 실습 1일차
아침 일곱시부터 일정이 시작된다. 병원 전체 일정은 거의 9시쯤 시작되지만, 농장 별 회진이 새벽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하루 시작이 빨랐다. 야마가 선생님을 따라 마사 6곳 정도를 둘러봤다.
샤다이 코퍼레이션 내에는 많은 농장과 마사(말들이 생활하는 집)가 있다. 전체 운영 시스템에 대해 여러 번 들었지만 의사소통 문제로 잘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아침 회진 때에는 수술 후 처치가 필요한 말을 드레싱하고, 간밤에 별 문제가 없었는지 전반적으로 확인한다.
이날 아침에는 3마리 말을 진료했다. 관절경 수술 후 드레싱을 해주고, 걸음걸이가 이상한 말을 살폈다.
파행증상을 겪는 말에서는 먼저 문제가 있는 다리를 촉진한다. hoof부터 무릎, 고관절까지 손으로 꼼꼼히 만져 본 후, 말 관리사에게 말을 걷게 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말의 걷기는 속도와 형태에 따라 평보-속보-구보-습보 4단계로 나누는데 그 중 속보를 시켜본다. 2박자의 리듬을 갖는 속보는 걸음걸이에 문제를 찾아볼 때 유용한 단계다. 이후 X-ray 등 추가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오후에 예약을 잡는다.
회진이 끝나 사무실로 돌아와서 진료진들과 첫 인사를 나눴다.
샤다이 말 클리닉에는 원장님을 포함해 수의사 4명, 테크니션 3명과 행정직원 1명 등 총 8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7월 11일과 12일에는 이틀간 ‘Select Sale’이 진행되어 응급을 제외하고는 진료가 없었다. Select Sale이란 경주마 경매다. 경마산업에 있어 한 해 중에 제일 큰 행사다. 이틀간 종마를 포함해 약 550여 마리의 경매가 진행됐다.
보통 2,3억원은 기본이고 경매 과정 중 제일 비싼 말은 30억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보기엔 다 비슷해 보이는 말이었는데 말이다. 말의 혈통을 크게 중요시 여기는 것 같았다. 말의 전체적인 균형이나 근육형태, 걸음걸이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경매 시작 전 판매 대기중인 말에 문제가 있다는 전화를 받고 진료를 나갔다. 큰 문제는 아니라 예방차원에서 수액을 주사했다.
보통의 말은 바로 경정맥에 혈관주사를 하지만 말이 많이 흥분한 경우에는 진정제를 놓거나 코를 잡고 진료를 본다.
사람도 인중부위에 여드름이 나면 매우 아픈 것처럼 말도 입 주위가 예민하여, 인중부위를 잡으면 보정에 도움이 된다. 수액이 들어가는 도중 말이 움직이면 바늘이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목 피부에 얇게 선을 꽂아서 수액라인이 움직이지 않도록 묶어 둔다.
이날은 하루 종일 경매를 지켜보다가 스즈키 선생님을 따라 오후 회진에 나섰다.
Prosthetic laryngoplasty(일명 Tie back) 수술을 받은 말의 후처치를 진행했다. 수술부위에 파스튜렐라균 감염이 생겨서 매일 소독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감염부위를 절개해 놓고 매일 약을 주사하면서 씻어내고 삼출액이 잘 나오도록 솜을 꽂아 놓았다.
7월 12일(화) 실습 2일차
둘째날도 비슷했다. Select Sale 중이라 아침 회진 이후에는 응급을 제외하면 별 다른 진료가 없었다.
오전 회진에서 산통이 의심되는 말을 발견했다. 다행히 응급 상황은 아니라 금식 후 계속 걷게 하도록 조치했다.
오후 회진에서는 눈에 문제가 있는 말이 있었다. 눈 주변이 부어 있었는데 큰 문제는 아니고 알러지 반응으로 진단됐다.
둘째 날에는 첫 응급내원을 경험했다. 왼쪽 뒷다리 구절(Fetlock) 부위가 심하게 부은 상태였다. 엑스레이, 초음파, 혈액도말을 시도했지만 원인을 정확히 밝힐 수 없었다. 부종 부위에서 삼출액을 빼네 현미경으로 관찰했더니 lymphocyte만 존재했다.
만성적으로 증상이 심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던 말이라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종의 증후군이라면서 최근 유행한다고 했다. 별도의 수술적 처치는 진행하지 않았다.
7월 13일(수) 실습 3일차
처음으로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진료를 참관했다. 이틀간 경매로 미뤄뒀던 진료가 몰려 일정이 빡빡했다.
샤다이에서는 농장별로 아픈 말을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담당수의사가 먼저 예찰한 뒤 추가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 clinic으로 리퍼하는 시스템이다.
이날 오전 회진이 끝나자 응급수술이 잡혔다. 처음보는 말 수술이었다. 산통에 걸린 암말이었는데 새끼와 같이 왔다. 어미들은 새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더 흥분하기 때문에 항상 같이 다닌다고 한다.
말은 고통으로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초음파를 보려는데 통증에 소리를 지르면서 드러누워버렸다.
육안으로도 배가 많이 부풀어 있었다. 초음파 결과도 심각했다. 마취실까지는 말이 걸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간신히 흔들어 깨웠다.
마취실에서는 모든 사람이 달라부터 말을 세운다. 마취후에 갑자기 쓰러지면 넘어지면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취 후에 크레인으로 말을 옮긴다. 보통 500~600kg이기 때문에 1톤짜리 크레인을 사용한다.
말을 수술대 위로 올리면 말 관리사는 모두 퇴실하고 수의사들과 테크니션이 함께 수술을 준비한다. 방광 카테터를 삽입하고, 오염방지를 위해 네 발을 모두 비닐로 감싼다. 관절경 수술에 비해 개복수술은 감염위험이 높아 보다 소독을 철저히 실시한다.
-카테터 삽입하고, 발을 비닐로 싸고 수술부위를 면도하고 소독을 시작한다. (사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분이 clinic의 원장, Tagami선생님이다)
수술 과정 중 마취는 막내 수의사의 담당이다. 규칙적으로 혈액을 채취해서 검사하고 혈압과 체온을 관리한다.
말의 체온은 반려동물보다는 낮고 사람과 비슷하다. 수액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면서 저혈압은 도부타민 등 약물로 대응한다.
수술 준비가 끝나자 타카미 원장이 수술을 집도했다. 개복 후 large colon을 모두 꺼내어 병변 부위를 찾는다. 이 말은 torsion으로 가스가 차 통증이 유발된 케이스였다.
부풀어 올라 있는 부위는 바늘을 꽂아 가스를 빼냈다. 냄새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가스를 제거하고 꼬인 장을 풀어준 후에는 변을 빼낸다. 수술 뒤에는 소화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도 정말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Colic을 제거한 후에는 omentum을 함께 제거해준다. 수술 후 유착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tortion은 암말에서 가장 흔하다. 보통 colic증상을 보이면 바로 수의사에게 진료를 요청하고 금식하면서 많이 걷게 한다.
Colic으로 수술까지 진행되는 건 소수라고 한다. 진료 실습 첫날 산통 수술을 봤다고 하니 몇 번씩이나 ‘You are lucky’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수술 후에는 말을 마취실로 옮기고 테크니션 분들과 수술실을 정리했다. 말은 수술 중에 아주 많은 땀을 흘리기 때문에 시트를 세탁하고 매트와 보정틀을 걸레로 닦아야 한다.
그때 남겨져 있던 온기와 특유의 말 냄새가 후기를 작성하는 지금도 떠오르는 것 같다.
오후에는 폐렴에 걸린 망아지가 내원했다. 해당 농장의 동물병원에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의뢰됐다고 한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폐렴이 너무 심해 엑스레이 상 대정맥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예후는 비관적이었다.
동맥혈액분석 결과 산소포화도가 매우 낮아(56) 산소를 공급해줘야 했다. 부종을 감소시키기 위해 이뇨제를 주고 항생제를 함께 처치했다.
산통 수술마와 폐렴마에게 주사하기 위한 줄기세포를 준비했다.
다른 지역 병원에서는 아직 줄기세포 시스템이 없어 샤다이의 줄기세포 치료가 거의 유일하다고 한다. 다른 말의 지방조직에서 채취한 세포를 액체수소 상에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고 한다.
줄기세포는 전신질환, 인대질환 등에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전신질환의 경우 특수 필터를 활용해 목정맥으로 주사하고, 관절에는 초음파 가이드 아래 병변부에 직접 주사한다.전신적 문제일 경우에도 줄기세포의 homing effect로 인해 문제 부위의 빠른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줄기세포치료는 아주 고가다. 그래도 말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부자 마주들이 많아 줄기세포 치료를 자주 실시한다고 했다.
7월 14일(목) 실습 4일차
JRA(일본마사회)주관 심포지엄이 있는 날이다. 오전 회진만 빨리 끝내고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경마로 유명한 도시답게 가로등마저 말과 벚꽃 문양이었다. 심포지엄 도시로 이동하는 해안길이 무척 멋있다. 일본어 하나도 못하는 나에겐 심포지엄 보다는 하루의 휴가와 드라이브를 즐긴 날이었다.
7월 15일(금) 실습 5일차
select sale과 심포지엄에 다녀오니 금새 금요일이다. 불금이라지만 샤다이에서는 도시 번화가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대중교통이 거의 없고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한국처럼 콜택시가 발달한 것도 아니다. 도보로는 40분정도 이동해야 한다.
역시 하루는 아침 회진으로 시작된다. 그저께 진료한 산통마와 폐렴마의 상태를 점검했다. 폐렴마의 경우 엑스레이 상 혈관이 다시 관찰될 정도로 상태가 매우 호전됐다.
오전 10시 예약된 수술을 진행했다. 왼쪽 앞다리 골절로 인한 뼈 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개복수술에 비해 간단한 관절경 수술이라 원장이 직접 집도하지는 않았다.
수술부위에 구멍을 두 개 내고 내시경과 수술기구를 넣어 내시경 화면을 보면서 뼈조각을 정리해준다.
관절경 수술이 끝나고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데 급한 호출이 왔다. 제발 큰 수술만 아니길,, 빌며 달려가보니 천포창(pemphigus) 환자였다.
천포창은 각질세포에 대한 자가면역 질환으로 말에서 드문 질병이다. 산통수술 이후 두 번째 럭키인 셈이다.
앞서 내원하여 생검을 진행했는데 오늘 천포창으로 확진된 것이었다. 자가면역 질환이라 스테로이드 처방을 진행했다.
오후에는 양쪽 다리에 대한 screw 작업을 참관했다. 수술실에서는 계속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각도와 방향을 맞췄다.
어린 말의 다리에 문제가 있을 경우 screw작업을 하고 보통 2주정도, 정상이 될 때까지 기다린 뒤에 제거한다. 어린 아이들의 치아 교정과 비슷한 느낌이다.
수술 중에는 오래 서있어야 하는게 제일 힘들다.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세밀한 수술이나 여러 과정이 필요한 경우에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수술 이후에도 무거운 장비를 세척하고 수술실 전체를 소독하다 보면 더 걸리기도 한다.
수술 후 숫말의 도보검사를 하였는데 Wobbler syndrome으로 진단됐다. Wobbler syndrome은 주로 숫말에서 다발한다고 한다.
경추 엑스레이 결과 C5-6, C6-7 사이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articular process가 정상보다 커져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약간 비틀거리면서 걷는데, 이 경우 다른 도보 검사와 달리 제자리 회전을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시키고 후진도 시켜본다. 신경계 문제로 인해 관절문제가 없어도 걸음걸이가 이상해질 수 있어서다.
Wobbler syndrome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암컷은 새끼를 나을 수라도 있지만, 수컷은 경주에 뛰지 못하면 안락사를 당한다.
병으로 안락사한 경우 보험에 가입한 마주는 큰 보험금을 받는다. 해당 말은 근처 수의대로 보내져 학생들의 해부실습에 이용된다.
한국에서는 말 해부는커녕 말 한번 제대로 보기가 힘든데, 해부나 부검실습이 자주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후에는 이동식 엑스레이를 가지고 회진을 나갔다. 스크류를 삽입한 말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말이 병원까지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간단한 엑스레이 촬영 등은 보통 장비를 가지고 왕진하는 편이다.
7월 16일(토) 실습 6일차
토요일이라 쉬는 줄 알았지… 토요일은 진료가 없다고 했는데 10시에 시술 예약이 잡혔다. 기존에 장착했던 screw를 제거하는 시술이었다.
수술대로 따로 옮기지는 않고 마취 후 마취방에서 누운 자세로 바로 시술을 진행했다.
보통 수술이나 시술 후 말을 깨울 때는 무작정 기다린다. 말에게는 마취제의 길항제가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봤을 때는 깨우는 모습이 좀 충격적이었다. 말이 너무 늦게 일어나면 강제로 깨운다. 발로 차거나 때린다.
머리 쪽 고삐와 꼬리에 밧줄을 묶고 마취방에 설치된 도르래에 걸어서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밀어준다. 큰 말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는데 보통 앞다리를 지지할 수 있게 펴준다.
물어보니 말은 뒷다리에 힘이 거의 안들어가고 앞다리 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말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앞다리를 꼭 펴줘야 한다고 하셨다.
11시 두 번째 말이 도착했다. 토요일은 진료가 없다더니, 속은 기분이다.
말의 머리가 계속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엑스레이를 촬영했다. history를 들어보니 ataxia와 비강출혈이 지속되고, head tilt가 있었다. 그러다가 비중격에서 혈종을 확인했는데 이날 내원시에는 크기가 좀 작아진 상태였다.
내시경으로 혈종을 세척하기를 반복했다. guttural pouch을 맘껏 볼 수 있었다.
드디어 토요일 모든 진료가 끝나고 다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처음으로 현지식당을 방문하는 터라 기대를 아주 많이 했다. 관광객이 전혀 없는 동네 라멘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짰다. 너무 뜨겁고 짜서 혀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역시 외국에 나가서 음식 먹을때는 관광객이 많은 곳으로 가야한다.
이후 월요일까지는 휴가였다. 7월 18일(월)은 바다의 날이라는 공휴일이었다.
휴가라고 해도 딱히 할 건 없다. 편의점의 나라라는 일본이지만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걸어서 한 시간이었다. 샤다이에서 운영하는 말 테마파크를 산책한 것을 빼면 그냥 숙소에서 머물렀다.
7월 19일(화) 실습 9일차
지난 주 입원했던 폐렴마와 산통마는 경과가 좋아 퇴원했다. 폐렴마의 회복은 기적적이었다.
오전에는 intercarpal, metacarpal joint에 문제가 있는 말이 내원했다.
일본에서는 말의 오른쪽 다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경주트랙이 시계방향이다 보니 오른다리에 더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트랙이 반대방향이라 왼쪽 다리의 문제가 잦다고 한다.
오후에는 지난주에 만났던 wobbler syndrome 환자가 한번 더 내원해 검사를 받았다.
7월 20일(수) 실습 10일차
응급수술이 두 건이라니! 집에 돌아갈 날짜가 다 되어 그런지 몸이 안 좋았다. 홋카이도는 한국보다 훨씬 위쪽이라 (평양과 비슷한 위도) 날씨가 많이 선선했다. 농장이 숲 속에 있어서 그런지 더 추웠다. 이런 날씨 탓에 감기기운으로 고생했지만 한국에서는 모두들 나를 부러워했다. (한국의 여름은 너무 뜨거웠다)
그만큼 컨디션이 엉망이었는데 아침부터 산통으로 응급수술이 생겼다.
수술의 전반적인 과정은 지난주 처음 봤던 수술과 동일했다. 다만 이번에는 장기 내 출혈이 있었다. 확인해 보니 colon에 구멍이 있었다. torsion이 심하면 장이 약해져 찢어지게 된다고 한다. 구멍을 찾아 봉합하다 보니 수술은 더 길어졌다.
오후가 되자 산통 응급이 한 번 더 내원했다. 응급수술이라 기존에 예약된 수술은 다음 날로 연기됐다. 이날 하루만 산통수술을 2번 참관했다.
산통수술은 준비부터 집도, 정리까지 4~5시간이 소요된다. 덕분에 이날 일정은 밤 9시를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7월 21일(목) 실습 11일차
어제 수술한 두 마리의 colic 환자들을 산책시켰다. 사람도 개복 수술을 하면 가스가 잘 나올 수 있도록 걷게 시키는 것과 같다. 똑같이 배에 붕대를 감고 걸어다니는 광경이 너무 웃겼다. 말도 사람하고 똑같구나!
오전 회진시 문제 있던 말이 추가 내원했다. 엑스레이, 초음파 결과 관절에 fluid가 정상보다 많이 차 있었다. 관절경으로 응급 수술을 진행했다.
7월 22일(금) 실습 마지막 날
벌써 마지막이라니.. 금요일 오후 3시 비행기로 돌아간다. 오전 진료까지만 보고 점심을 먹은 후 출발하기로 했다.
오전에 참관한 마지막 수술은 LP(Prosthetic laryngoplasty), Tie back수술이었다. 흔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실습기간 동안 한 번도 못 봐서 아쉬워 하던 차에, 마지막 럭키였다.
후두편마비의 80%는 숫말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서러브레드종 경주마에서, larynx의 덮개가 완전히 열리지 않아 경기중 호흡이 원활하지 않으면 경기력이 떨어진다.
말의 larynx는 사람처럼 개체마다 모양이 다르다. 때문에 똑같은 수술법으로도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아무래도 수술 후 그 말이 타는 상금에 따라 수술 예후를 판단하는 것 같다.
말 머리 쪽에 내시경을 설치한 뒤 달리게 하여 후두의 열림을 확인 뒤에 수술을 결정한다. 내시경을 통해 피열연골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당겨서 묶어준다.
목 부위 수술이라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실시한다. 코로 내시경을 넣고 피부를 절개하여 전기지혈기로 혈관을 지혈하면서 술부를 찾아 들어간다. 녹지 않는 실로 강하게 묶어준다.
운이 좋으면 이게 잘 풀리지 않아 오래 경기를 뛸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묶어준 부위가 다시 내려와 수술효과가 떨어진다. 하지만 유착이 심해 재수술시 연골을 찾기 힘들어 tie back은 오직 한 번만 시도할 수 있다고 한다.
실습을 마치며..
전반적으로 돌아보면 많은 것을 보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남는 실습이었다.
2주동안 말을 진료하는 모습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세세히 배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사전에 말에 대해서 공부하고 갔으면 좀 더 유익한 시간이 되었을 것 같아 그 점이 제일 아쉽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다. 학교 수업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개강한 지금 그 마음이 점점 옅어지는데 다시 한 번 다잡아야겠다).
말 수의사는 전문분야 지식 못지 않게 체력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것 같다. 단순 진료 외에도 힘으로 말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며 감정적으로도 말과 교감해야 한다.
이번 실습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준 IVSA 한국과 일본 담당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또 따뜻하게 실습생들을 받아준 Shadai 병원의 선생님들과 직원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다음번에 필자가 또 어디로 실습을 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더 적극적이고 탐구하려는 자에게 그만큼의 깨달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실습후기를 읽고 있는 다른 수의대 학생들도 IVSA를 통해 해외실습이나 국내 실습을 접하고 여러 가지 직업군을 체험했으면 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수의 관련 직종에서 실습을 제공하여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
ps. 이상 제 실습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 의사소통 문제로 인해 혹시나 틀린 정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shadai나 해외실습관련 문의가 있으시면 IVSA 한국지부 각 학교 FO나 저(hy2961@naver.com)에게 문의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