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의뢰 동물병원인 웨스턴동물의료센터는 수의사 26명을 포함한 50여 스텝이 낮 시간의 특수심화 진료와 야간의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척추·관절 연구소를 비롯해 일반적인 내외과진료를 포함하여 심장, 비뇨기, 내분비, 종양, 안과, 치과, 정형외과, 신경 등의 특수심화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충북대학교 성봉학술제에서 웨스턴동물의료센터 홍연정 원장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임상수의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11월 말 웨스턴동물의료센터 홈페이지의 실습공고 안내에 따라 동계 실습을 신청했고, 원장님의 배려로 아직 기초수의학만 배운 본과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실습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임상수의학을 배우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공부한 내용을 확인하기보다는, 임상수의사의 삶이 어떤 지 알아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탐색하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래도 4주차에는 세미나 발표 기회를 얻어 hydrocephalus case study를 준비하기도 했다.
근무시간은 9~19시로, 주1회 휴무였다. 매일 다음과 같은 일과를 수행하였다.
9:00~10:00 입원실 처치 보조
10:00~13:00 진료 참관 및 처치 보조
14:00~14:30 내/외과 라운드 참관
14:30~19:00 수술 참관
매일 다른 내과, 외과 수의사 선생님께 맨투맨으로 배정되어, 진료를 참관하고 처치를 보조했다. 할 수 있는 직무의 범위는 테크니션과 비슷했다.
아직 학교에서 임상을 배우지 않았고, 임상현장실습도 처음 해보았기 때문에 보정하는 법부터 배웠다. 집에서 개를 10년째 키우고 있지만, 효과적으로 환축을 제압하는 기술은 없었다. 때문에 처치별로 필요한 보정법을 여러 사람에게 배워야했다.
수의사마다 원하는 보정법이 다르고 채혈, 붕대, 안과진료 등 각종 처치별 보정법도 달랐다. 하지만 결국 보정의 목적은 수의사가 처치하는 동안 환축과 사람 모두 다치지 않고, 환축이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4주 동안 다치지 않고 실습이 끝난 것 만으로 감사할 정도로, 의료진의 부상은 종종 일어났다.
다양한 수의사의 진료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2차병원 실습의 장점이었다.
홍연정 원장님과 황현민 부원장님을 비롯해 오광선, 신경인, 조미란, 김강산, 박정훈, 김윤희, 백주예, 김슬기, 신명철, 강영환, 지서연 등 13명의 수의사 분들이 각각 보호자를 대하고 환자를 진단하며 치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료 시 매뉴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수의사마다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모습은 달랐다. 업무 효율을 우선시하기도 했고, 보호자와 공감을 우선시하기도 했다. 말로만 듣던 안락사를 원하는 보호자를 몇 번 볼 수 있었는데, 이를 만류하는 방법 또한 다양했다.
진료 스타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었다. 모두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대응이었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진료를 하려 노력했다.
“진료실에 최대한 많이 들어가서 롤모델을 찾으라”는 원장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누구 한 명을 골라 롤모델로 삼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들 진심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다. 이후 똑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선택지를 아주 많이 가지게 된 것 같다. 많이 보고 배웠다.
수많은 응급 환자가 의뢰병원에서 이송되어왔다. 심폐소생술 끝에 다시 숨을 쉬고 후속치료가 가능한 환자도 있었지만, 병원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을 거두는 환자도 있었다.
보호자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환자에게 제발 살아 달라고, 수의사에게 제발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가운데, 20분 넘도록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결국 숨을 거둔 케이스도 있었다.
그 날 수의사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 더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반려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또한 수의사의 역할이었다.
그 보호자는 그 뒤로도 병원 한 켠에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보호자는 의료진의 노력을 눈으로 보면 보다 쉽게 반려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곤 했다.
실습을 하면서는 계속 서 있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학기 중에는 하루 종일 앉아서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하느라 서 있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을 먹는 시간을 빼고는 서 있어야 했다.
뭔가 일이라도 하면 그에 집중하느라 다리 아픈 줄 모를 텐데, 진료 참관과 수술 참관이 주된 일과였기 때문에 다리가 무척 아팠다. 그래서 초음파실에서 보정하는 일이 가장 좋았다. 그 시간만큼은 앉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초음파실을 좋아했던 더 큰 이유는 영상진단부장님이 내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초음파를 보며 그게 무슨 장기를 보여주는 건지도 구별을 못하는 나에게 해부학과 생리학부터 짚어가며 초음파 검사의 원리부터, 왜 해당 환자에서 해당 장기를 중점적으로 보려는 건지 설명해 주셨다. CT촬영실에서는 마취 보조와 바이탈 체크도 해볼 수 있었다.
Hydrocephalus case study를 준비할 때에도 영상진단자료를 많이 참고했는데, CT를 보면서 비강을 뇌실이라고 착각한 나에게 두부 3차원 이미지를 찾아주셨다. 실습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살뜰히 챙겨 주신 강영환 부장님께 감사하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원장님이 차트 작성부터 초기 바이탈 체크까지 나에게 맡겼던 환자가 있었다. 악하선 유래 침샘 점액낭종 때문에 침샘 절제술을 받은 9살 말티즈였다.
초진부터 진료를 참관하고, 수술도 지켜봤으며, 마취에서 깨어나도록 발가락을 꼬집고, 입원차트를 작성하고, 수술 후 바이탈 체크를 스스로 하면서 ‘내 환자’라는 걸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체온이나 심박수가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며 입원장 주위를 지날 때마다 살피곤 했다. 지켜보기만 하던 임상 수의사의 삶에 살짝 손끝이 닿은 느낌이었다.
아직 아는 게 없어서인지 내과 진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외과 진료는 무척 재미있었다. 보호자에게 해부 구조를 설명할 때 배웠던 내용을 다시 복기할 수 있었고, 처음 듣는 수술 방법들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수술실에서 오후 내내 시간을 보냈다. 첫 주에 동맥관개존증 수술을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아까웠기 때문에, 이후로는 내과 진료를 참관하는 주에도 오후에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정형외과 수술은 CTWO, IVDD, 슬개골탈구교정술, 분쇄골절접합술 등을 볼 수 있었고, 장 문합술, 각종 종양 절제 및 장기 절제 수술도 볼 수 있었다. 특히 폐엽 절제술을 할 때, 심장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있는 동물을 수술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아직 본과1학년이기 때문에 뭘 모르는 상태로 현장에 나온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낭비를 하는 것 같아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현장을 겪고 나니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내가 봤던 질병이 보이고, 들었던 병명이 들린다. 지겨운 책 속의 글자와 사진이 다르게 보인다.
앞으로 산업동물분야와 제약회사 등 수의사가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업종에서 실습을 할 생각이다. 3학년에 학교 병원에서 임상 로테이션 과목을 들을 때까지 임상 현장에 다시 갈 계획은 없다.
내가 정해 놓은 한 번뿐인 반려동물 임상수의사 실습을 웨스턴동물의료센터에서 하게 되어 다행이다. 실습 기간 내내 병원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신 황현민 부원장님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