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동기
수의과대학에 처음 입학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일반적인 소동물 동물병원을 떠올리며 입학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랬고 미래에도 소동물 임상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하지만 수의학개론, 모험과창의(수의사 진로에 관한 수업들)수업에서 교수님과 여러 수의사 선배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수의사의 다양한 진로를 제가 한정 짓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제 편견을 깨기 위해 전혀 관심 없던 대동물 농장으로 실습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너는 이제 막 예과를 끝낸 상태라 임상에서 쓰이는 수의용어도 알아듣기 힘들 것이고, 소동물 임상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고학년 때 소동물 실습을 가면 더 도움이 될 거야. 수의사를 따라다니는 실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농장 전체의 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는 사양학적 측면의 공부는 실습과 병행할 수 있을 거야’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여 지원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대동물 중 왜 굳이 돼지에 더 관심이 갔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그 당시 제 생각으로는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에 훨씬 의존하여 살고, 돼지는 한 농장에 몇 천 마리도 키우며 회전률도 높기 때문에, 금전적인 측면이나 유행에 있어서 안정성과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원방법
데일리벳 리크루트란을 통해 ㈜돼지와건강 실습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능한 시간과 실습기간이 달랐기에 지원하지 않았지만, 교수님의 소개로 돼지와건강 대표 김경진 수의사님과 연락하여 ‘실습 기간조정이 가능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은 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 방학마다 돼지와건강에서 실습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데일리벳 리크루트 페이지에 ㈜돼지와건강을 검색하시면 실습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실습내용
제가 실습한 운도축산은 크게 4파트로 나뉩니다. 첫 번째 ‘자돈육성팀’은 팀장 1명과 팀원 2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돈은 새끼돼지를, 육성돈은 자돈에서 일정기간이나 무게가 넘어서 출하되기 전까지의 돼지를 말하는데, 농장마다 자돈-육성돈을 구분하는 시기나 무게는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처음 돼지농장에 간 후 17여일을 자돈육성팀에 있었습니다. 이곳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지만 단순노동에 가까워, 농장에서 실습생에게 주로 맡기는 파트입니다.
자돈육성 파트에서 실습생들이 하는 일은 우선 ‘기본관리’입니다. 일주일에 3번 정도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하여 기본관리를 시작합니다.
돼지들이 사료와 물을 먹는 급이기를 청소해주고 돈사에 있는 대소변을 치워줍니다. 아파 보이는 돼지가 있는지, 돈사의 온도는 적당한지도 체크합니다.
자돈은 하루 평균 3~4회, 육성돈은 평균 2회 정도 기본관리를 해줍니다. 자돈이 면역력이 더 약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본관리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시기에 맞춰 백신접종, 돈사 보수공사, 사료 옮기기, 샤워실 청소 등을 합니다.
백신은 예정된 스케쥴에 맞춰 구제역, 단콜(돈단독+돼지열병) 등을 접종합니다. 제가 본 백신접종은 마치 사냥과 같습니다. 한 돈사에 적게는 60마리 많게는 100마리까지 있는데, 일반적인 소동물병원에서 마취하거나 보정하여 주사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큰 판으로 돼지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못 움직이게 한 다음 한 마리씩 좌측이나 우측 귀밑 목덜미 부분에 주사합니다. 주사침이 약품과 연결된 연속주사기로 재빠르게 투약하고, 색깔 있는 펜으로 접종여부를 표시하는 방법입니다.
돈사 보수공사 시간에는 온도가 떨어질 때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막거나, 반대로 온도가 너무 높으면 통풍이 되도록 통로를 열어주는 식의 작업을 합니다. 돼지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만들어줍니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8시에 출근해 기본관리를 시작하지만, 나머지 3~4일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출하작업이나 돼지의 돈사이동 작업을 실시합니다.
일주일에 평균 2회 정도 돼지가 출하됩니다. 출하 후 빈 돈사를 청소하고 나면 돼지의 연쇄이동이 이어집니다. 갓 분만하여 조금 자란 새끼자돈들이 기존 자돈방으로, 기존 자돈방에 있던 자돈들은 육성돈으로 이동하는 식입니다.
돼지가 이동할 때는 돈사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돼지를 유인합니다. 암수별, 크기별로 돼지를 구분하여 우리에 넣습니다.
암수별로 구별하는 이유는 제가 실습했던 농장의 암컷 돼지는 비육돈이 아닌 타 농장의 모돈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무게가 적게 나가는 돼지들은 무거운 돼지들에게 밀려 사료를 제대로 못먹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무게별(크기별)로 나누어 배치합니다.
두 번째 파트는 ‘임신팀’입니다. 임신돈사에는 임신한 돼지들과 임신대기 중(발정기 체크중)인 돼지들이 있습니다. 매주 돼지가 출하되는 농장이라 모돈들도 그룹을 지어 매주 임신할 수 있도록 운영합니다.
임신팀 실습 동안 발정기 체크방법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공간에 수퇘지와 암퇘지 몇 마리를 놔두어 보면 암퇘지가 수퇘지에 관심을 보입니다. 이때 사람이 뒤에서 올라타도 움직이지 않고 경직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그렇게 발정기가 왔다고 체크된 암퇘지들은 웅돈(정자를 제공하는 수퇘지)의 정자를 받게 됩니다.
대부분의 돼지농장에서는 자연교배보다 인공수정을 택합니다. 직접 사람이 정액을 암퇘지에 주입하는 것입니다. 돼지농장의 생산시스템과 전국의 돼지 소비량을 생각해보면 비윤리적이라 비난할 수 만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습생들은 임신팀에서 주입하는 정자의 활동성이나 모양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정자의 모습과 달리 돼지의 정자가 꼬리는 없고 동그랗게 생겼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물론 임신팀에서도 ‘기본관리’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자돈육성 파트와 달리 임신돈들은 스톨에 머물기 때문에 기본관리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세 번째 파트는 ‘분만팀’입니다. 분만팀에서는 임신말기인 돼지들과 분만 후 새끼자돈을 포유하는 모돈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룹별로 구분 지어 분만기간에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팀장과 팀원들이 분만을 관리합니다.
그 외에 기본 관리도 당연히 하지만, 여기서 하는 일은 크게 모돈관리와 새끼자돈 관리 두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모돈이 잘 포유할 수 있도록 젖마사지를 해주거나, 분만 과정에서 약품을 투약하거나 직접 손을 넣어 새끼돼지를 꺼내 주기도 합니다. 이를 ‘간호분만’이라고 하는데, 간호분만을 통해 훨씬 많은 새끼돼지들을 살려낼 수 있다고 합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자돈도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태막과 피가 범벅이 된 상태로 분만되기 때문에 몸을 잘 닦아줍니다. 늦게 분만된 돼지들은 양수를 너무 많이 먹어 목이 막혀 있는 경우가 있어, 거꾸로 들어 기관이나 식도를 뚫어주는 작업도 병행합니다. 이후 보온등을 통해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줍니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들은 면역력이 낮아 철분주사와 함께 억지로라도 초유를 먹여야 합니다. 스스로 초유를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하지만, 못 먹는 새끼돼지들은 따로 떼어내 주사기로 모유를 먹입니다.
그 외에 임신기간과 분만기간에는 모돈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여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다 동원합니다.
돼지는 집단으로 사육되기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서로 꼬리를 물며 상처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새끼돼지들의 꼬리를 자르는 작업을 합니다. 수컷의 경우는 비육돈으로 출하되기 때문에 꼭 거세해야 합니다.
이처럼 약 3주에 걸쳐 자돈육성 파트, 임신 파트 분만 파트에서 돼지농장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 파트들 말고도 ‘웅돈사’ 파트도 있는데 실습생으로서는 딱히 배울 것이 많지 않다고 하여 가보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