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인 최초 OIE 정식직원 박민경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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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동물보건기구(OIE, 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는 가축 질병과 예방에 대해 연구하고 국제적 위생규칙에 대한 정보를 회원국에게 보급하는 국제기관입니다. 또한 가축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회원국에 신속히 알림으로써 전염병의 확산 방지 및 근절에 힘쓰고 있습니다.

1924년 설립된 OIE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설립과 동시에 동물검역에 관한 국제기준을 수립하는 국제기관으로 공인된 바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동물질병을 다루는 것을 넘어서 축산물 안전 및 동물복지 확대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즉, OIE는 수의사가 주축이 된 국제기구로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OIE에는 현재 178개국이 가입되어 있으며, 한국은 1953년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가입한 지 60년이 되는 올해, 한국인 수의사로서 최초의 OIE 정식직원이 탄생했습니다. 그동안 OIE에 파견근무를 갔던 한국인 수의사들은 종종 있었으나, 정식직원으로 발탁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박용호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의 장녀이자 미국 워싱턴 주립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박민경 수의사가 그 주인공인데요, 한국인 최초 OIE 정식직원이 된 박민경 수의사를 데일리벳에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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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렸을 때부터 꿈이 수의사였나? 어떻게 미국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는지.

어릴 때부터 수의사가 꿈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살면서 과학 쪽에 관심이 갔었다.

아버지(박용호 농림축산검역본부장)께서 미국 워싱턴주립대학(WSU, Washington State University)에서 수의미생물학 박사학위를 하실 때 같이 미국으로 건너가 유년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한국에서 졸업한 후 다시 미국으로 가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WSU에 진학하여 신경과학, 동물학을 복수전공하고 바이올린을 부전공했다. 이후 같은 WSU 수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수의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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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WSU 2학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과학 쪽에 흥미를 느껴서 앞으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수의대에 진학해 동물을 통한 연구를 하는 것이 임팩트도 크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수의대에 가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미국은 인구에 비해 수의과대학이 적어 경쟁률이 치열하다. 내가 진학했을 당시에도 경쟁률이 30:1에 달했다. 학부 성적도 신경 쓰고 아버지께서 계셨던 연구실에 학부생 때부터 나가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 연구실에는 수의대 3학년 때까지 총 7년을 꾸준히 나가서 일을 도왔다. 대학 전공을 어려운 신경과학으로 정한 이유 중 하나도 수의대 진학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Q. 수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에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수의사를 하라고 그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어떤 일을 하라는 식의 권유는 전혀 하신 적이 없다. 내가 어떤 것을 하고 싶다면 지원해 주셨다.

수의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전적으로 내 의지였다.

내가 수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선 내 앞에서는 별 티를 내지 않으셨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많이 좋아하셨다고 들었지만…

물론 아버지가 수의사로서 종사하시는 분야에 있어 열정적이신 점은 내가 어떤 분야에 가더라도 본받고 싶은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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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OIE 총회에 수의사로서 만난 박민경, 박용호 부녀

Q. 미국 워싱턴주립대 수의과대학 유학생활은 어땠나?

학부도 쉽진 않았지만, 수의과대학은 더 힘들었다. 4년 동안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풀스케쥴이 짜여 나오고 선택과목을 듣고 싶으면 점심시간을 희생해야 할 정도였다. 5시에 끝나면 자정까지 거의 매일 공부를 해야 했다. 시험도 계속 끊이지 않고 거의 매주 있었다.

게다가 WSU 수의과대학은 성적이 ABCD 등급제가 아닌 등수제였다. 흔하진 않지만, 여러 과목에서 낮은 등급을 받으면 유급될 수 있는데, 이마저도 학업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던 정당한 이유를 소명하지 못하면 유급이 아니라 아예 퇴학당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미국 수의과대학은 입학 경쟁률이 심해서 ‘네 자리를 바랐던 불합격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도 강했다.

한국의 고3 같은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께서도 딸인 내가 측은하셔서 한 말씀이었겠지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는 것보다 수의과대학을 다니는 것이 더 힘들겠다고 하신 적도 있다.

Q. 수의과대학 시절부터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싶었나? 어떤 분야의 수의사가 되고 싶었나?

같이 수의대를 다닌 친구들 대부분과는 달리 나는 처음부터 임상보단 연구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학부 전공으로 신경과학을 택한 이유도 설령 수의대에 갈 수 없게 되어도 의대 쪽으로 가서 연구자의 길을 걷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수의과대학에서 공부하며 생각이 달라지긴 했다. 연구에 대한 관심이 줄진 않았지만, 미국 수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이 임상 위주로 이뤄져 있었고, 수의과대학 학생 80% 정도가 임상을 하고 싶어하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임상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연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연구와 임상을 병행하는 것도 좋겠다’는 정도였다.

학교 다닐 당시에는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은 없었다.

Q. 어떻게 한국인 최초 OIE 정식직원이 될 수 있었나?

OIE를 처음 접한 것은 2011년이었다. 2011년 9월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때마침 ‘OIE 광견병 국제컨퍼런스 행사’가 인천에서 열렸다. 통역 같은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갔는데 거기서 현재 OIE 과학위원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주 박사님도 처음 뵈었고, OIE에 내가 채용된 부서의 부국장도 그때 처음 만났었다.

그 인연으로 작년 수의과대학 졸업 후 대학원 지원 준비를 하면서 검역본부에 인사를 왔다가 김용주 박사님으로부터 OIE에 인턴십이 있으니까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어차피 대학원 박사과정 지원을 한 후 시작할 때까지 남는 시간이라 가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프랑스 파리 OIE 본부에서 인턴을 했다. 특히 5월 말에 있었던 OIE 총회에도 참여할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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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경 수의사가 인턴쉽 도중 참여한 2013 OIE 총회 현장

OIE에서 일을 해보니 내 적성에 딱 맞는 느낌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앞으로도 정식으로 같이 일을 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였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의 길을 갈까, OIE에서 일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박사학위 취득을 조금 미루고 OIE를 선택했다.

Q. OIE가 UN 산하단체는 아니지만 WHO나 FAO만큼 영향력 있는 기관이라고 들었다. 직원 수는 적지만 많은 일을 한다고.

OIE 본부의 경우 직원은 80여 명이다. 이것도 정규직원과 각국에서 파견된 직원을 합한 숫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8개국이 가입되어 있는 만큼 동물 쪽으로는 OIE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인 것 같다. WHO는 사람 보건 쪽에 더 중점을 맞추는 편이고 FAO는 OIE와 같이하는 일도 많다고 알고 있다.

그 영향력을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예는 올해 OIE 총회에서 미국 광우병 등급을 ‘통제된 위험국’에서 ‘경미한 위험국’으로 상향하는 것을 표결하여 통과시킨 일이다. 이 안건은 OIE 과학위원회가 상정했지만 그 영향력은 정치적, 경제적인 측면에까지 이른다. 우리나라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Q. OIE에서 박민경 수의사님이 담당할 업무는 어떤 것인가

OIE 본부 내 과학 기술 파트(Scientific and Technical Department)에서 근무하게 된다.

OIE에서 각 나라별 질병 등급을 정하도록 지정된 다섯 가지 질병 – 구제역, 광우병, 우폐역(CBPP), 아프리카마역(AHS), 우역 – 에 대하여 178개 OIE 회원국에서 제출한 문서를 검토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을 예정이다.

질병마다 전문가 그룹(Ad Hoc Groups)이 정기적으로 질병등급과 관련된 토의를 하는데 이때 각국 문서를 정리한 내용을 제공하고, 전문가 그룹의 활동 내용도 다루게 된다.

위 다섯 가지 질병 중에 우역은 2011년 박멸이 선언됐지만, 올해 총회를 통해 돼지열병과 PPR(Peste des Pestits Ruminants)이 추가되어 이와 관련한 일이 늘었는데 그래서 자리가 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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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경 수의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자신의 OIE 인턴쉽에 대해 발표 중인 모습

Q. 한국인 수의사 최초직원으로서 OIE에서 해야 할 역할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홍기옥 박사님도 파견되어 계시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이 적다 보니 우리나라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 같아 부담도 좀 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인턴을 하면서 정식 채용까지 제의해 줄 정도로 날 좋게 봐준 OIE 본부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그만큼 그들이 내게 바라는 기대치가 있을 테니,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Q. 현재 우리나라 수의과대학 재학생들 중에서도 국제기구에 관심이 많은 후배들이 많다. 후배들에게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준다면?

무엇보다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인턴쉽도 하고 운이 좋게 채용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구사하는 것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점이 컸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권 국가에 살았던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용주 박사님이나 홍기옥 박사님처럼 검역본부 직원분이 OIE 본부에 파견근무를 하기도 한다. 자신이 노력하기 나름인 것 같다.

아울러 적극적인 자세도 중요하다. 나도 좀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OIE에 있었을 때만큼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OIE 공식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인데,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둘 셋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직원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불어를 알아듣기 위해 노력도 했다.

또 할 일이 없을 때 부국장에게 직접 가서 ‘할 일은 없느냐’, ‘디스커션 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다가갔던 게 큰 인상으로 남은 것 같다.

적극적인 자세는 한국에 있을 때도 중요하다.

나는 2011 광견병 컨퍼런스 행사 자원봉사로 OIE를 처음 접했다. 한국에서 해당 국제기구에서 개최하는 워크샵이나 국제회의 같은 것들 것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것이 인연이 되면 차후에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모르는 거다.

이번 8월에 있는 OIE 동물복지 세부책임자 세미나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OIE 인턴쉽의 경우 OIE 홈페이지를 통해 비정기적으로 모집한다. 학부생도 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구 자체가 워낙 작다 보니까 인턴십 TO가 많다거나 자주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먼저 다가가야 한다. 먼저 묻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Q. 박민경 수의사님의 꿈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비전과 계획에 대해 알려달라

나의 비전은 “내가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후세를 위해 좀 더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미국에서 수의사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래서인지 졸업하고 나니 나 자신을 재정비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OIE 인턴쉽을 하게 되고 정식직원까지 됐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주어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내가 프랑스 파리로 오게 된 사명이나 더 큰 뜻이 있다고 믿는다.

아직 얘기하기는 이르지만, 후에 나와 같은 비전을 가진 후배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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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수의사나 수의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수의과대학에 진학하고서도 수의사가 아닌 아예 다른 길을 택하는 수의대생이 많다고 들었다.

물론 대학까지 다녀보고 정말 수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지원하는 형태인 미국과 달리 고등학교에서 진로를 선택하는 우리나라 환경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은 이해하면서도 안타까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 생각에 수의사는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다. 임상뿐만 아니라 연구부터 공적인 자리까지 진출할 수 있는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매력 있는 직업에 있다는 것을 믿고 수의대생들이 좀 더 수의사로서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인터뷰] 한국인 최초 OIE 정식직원 박민경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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