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獸醫師)라는 직업명이 그러하듯, 동물은 수의사라는 직업의 존재 이유이다. 사람들은 동물의 존재를 교과서에서 정의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한 탓에 곁에 있는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상에서 늘 동물을 접하면서도 동물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수의사라면, 동물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떠한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와 같다. 예를 들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길가의 돌멩이와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면, 나는 그 사람을 굳이 발로 차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예로, 배아를 단순히 세포 덩어리로 보는 사람들과, 온전한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사람들은 결국 같은 배아를 놓고 도덕적 견해가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르게 대우한다.
이처럼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도덕적으로 고려하게끔 하는 것을 ‘도덕적 지위(moral status)’라고 하는데, 도덕적 지위를 가지는 대상에게 우리는 도덕적으로 대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진다.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윤리적 화제들을 묶어서 ‘동물윤리(animal ethics)’라고 칭할 수 있다. 그 중 ‘동물을 도덕적으로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동물윤리의 시작이며, 끝나지 않는 핵심 쟁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면에서 동물윤리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서 시작하는, 결국 인간에 대한 학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선한 행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데 사용되는 도덕적인 기준들을 ‘도덕원리’라고 한다. 동물윤리에서도 보편적인 도덕원리를 이용하여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주장하는 이론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으로는, 공리주의에 근거하여 ‘쾌락이나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지각력(sentience)을 가진 존재는 인간과 같은 선상에서 이익의 평등을 고려해야 한다(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라는 것이 골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동물해방론(animal liberation)’과, ‘동물 역시 본래적 가치(inherent value)를 지닌 자기 삶의 주체(subject of a life)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톰 리건(Tom Regan)의 ‘동물권(animal rights)’이 대표적이다.
그 외의 다양한 이론들에 대해서는 동물윤리를 다루고 있는 여러 책을 참고해도 좋고, 본지의 다른 칼럼(링크:박종무의 생명이야기7)에서도 이미 다룬 적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다만, 윤리는 같은 이론을 설명할 때에도 글쓴이의 주관적 견해에 따라 전반적인 글의 뉘앙스가 다르기도 하므로, 받아들일 때 이러한 성향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도덕원리 한두 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띄고 있으며, 그 정도와 기준이 너무나 다양하다. 도덕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이론 안에서는 동물을 경계선이 다소 모호한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설명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에 대해서는 의인화(擬人化)와 같은 방법으로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동물을 실험에 이용하는 것은 정당화된다고 믿기도 하고,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거나 지능이 높은 몇몇 종에게 더 치우쳐 새로운 종차별(new-speciesism)을 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기계가 아닌 이상 발생하는 감정이라는 요소도 동물에 대한 견해에 분명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요소를 다 반영할 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생각하는 단계를 묶어 도식화한다면 그림과 같다.
일단은 우리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만약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대중들의 견해를 분포표로 나타낼 수 있다면, 현재 우리 사회는 아마도 동물보호나 동물복지 영역에 최댓값이 위치할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여야 할 것은, 이 모든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에 자리했을 때 오른쪽에는 동물권을 위한 행동을 하러 가는 사람이 앉아있고, 왼쪽에는 취미를 위한 사냥을 하러 가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수의사라는 정체성을 가진 우리는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할까?
먼저 스스로 동물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 존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단순히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래도 되는’ 존재들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야 하는 도덕적인 선이 있는’ 존재라는, 동물에 대한 수의사로서의 가치관이 분명해야 한다. 이것은 임상에서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임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수의사가 아닌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같이 일할 때에도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 그것은 분명 수의사의 전문성으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직업에 따라 그 사람에게 조금 더 높은 기대치를 가지거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찰이 음주운전을 한다거나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아동학대를 했을 때 대중들이 더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것 이상으로 사회질서를 수호하고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선에 있어야 할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중들은 수의사에게 ‘동물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임을 수행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로, 보호자가 멀쩡한 개를 데리고 와서 안락사를 요구하는 경우에 수의사가 안락사를 거절하고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은, 보호자의 이익이 아닌 동물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의사의 판단이며, 많은 대중은 이러한 행동을 지지한다.
이런 식으로 일반적인 대중이 “수의사라면 이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가치들은 대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라고 하는 ‘전문가 의식’의 요소들에 포함된다. 이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다.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동물의 도덕적 지위는 수의학의 발전과 연관된다. 수요에 의해 발전하는 학문의 특성상 첨단의, 고가의 기술이 필요한 임상 분야나 사회적 차원에서 수요가 발생하여야 하는 법수의학(veterinary forensics), 보호소 의학(shelter medicine) 같은 분야가 그러한 예일 것이다.
또한,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수의사의 사회적 지위와도 연관된다. 즉, 우리 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도 직결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내가 어떠한 가치관을 지향하고 행동해야 할지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물과 관련된 강의에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간디의 말이 있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 정도로 가늠할 수 있다.”
이쯤에서, 자신에게 다시 질문을 던질 차례이다.
‘나에게 동물은 어떤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