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장교의 임무는 해외에서도 이어집니다. 한국군이 향하는 곳에는 수의장교도 함께합니다.
레바논 UN평화유지군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동명부대에서도 수의장교 1명이 식품·수질검사부터 방역, 동물진료, 대민지원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7년 12월부터 1년 6개월의 해외파병(수의장교로는 최장기간 해외파병 연속근무 기록)을 마치고 귀국한 수의장교 김형규 중위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김형규 중위의 뒤를 이어 레바논으로 떠난 류미선 중위와의 서면 인터뷰도 이어집니다.
Q.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17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의사관 14기로 임관한 김형규중위입니다.
Q. 동명부대를 소개해주신다면
2019년을 기준으로 22진째 진행중인 파병부대입니다. 21진 기준으로 330명의 부대원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주요 임무로는 특전대대 1개 대대가 현지 정찰, 고정감시초소 경계, 주둔지 정찰, 타군과의 연합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현지인 교화와 대민지원을 위한 민군 작전이나 의료지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레바논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한 난타공연이나 특공무술 시연, 태권무 등 문화공연도 개최하는데요, 부대원들이 직접 연습해 공연하는데 수준이 꽤 높습니다.
이와 함께 다른 나라에서 온 연합군 부대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는 교실도 운영합니다.
Q. 단기복무 수의장교로 해외파병에 지원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어쩌다 보니 수의장교로 선발됐지만, 이왕 임관했으니 복무기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훈련 당시부터 수의장교의 해외 파병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됐고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파병으로서의 경험과 함께 파병 시 대우가 좋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Q. 수의장교 파병에도 경쟁이 꽤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선발되나요?
레바논에 먼저 가 있는 진(부대)의 복무가 2개월 정도된 시점에 다음 진의 모집공고가 나옵니다.
지휘관의 추천서와 함께 지원하면 주변인을 통한 비공개 평가가 진행됩니다. 특별히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자격은 없지만, 어학능력을 따로 제출하거나 파병에 적합한 자원임을 어필하는 식입니다.
선발되면 현지 파병 전에 2개월 정도 국제평화지원단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수의장교 임무를 위해 외부교육기간도 잠시 주어집니다. 저는 서울대와 지역 동물병원, 평창 산업동물임상교육연수원에서 진행했습니다.
훈련을 마치면 전세기 편으로 레바논 베이루트 항공으로 향합니다.
Q. 수의장교는 현지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나요?
크게 대민지원, 영내 수의진료, 유니필(UNIFIL, 레바논 UN평화유지군) 수의진료, 수질검사, 전염병 방역, 군견진료, 위생점검 등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부대로 들어오는 식품에 대한 부식검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8시반부터는 동물진료나 대민지원 등 그 날의 업무를 수행합니다. 보통 17시에 일과가 종료되고요, 그 후로는 개인시간입니다.
Q. 개인시간은 어떻게 활용하나요?
저는 운동과 영어공부를 주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수의장교는 다른 동명부대원들보다도 타군 부대원이나 현지인과 접촉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어의 필요성이 더 절실했습니다. 너무 영어가 엉망이면 망신살이 뻗칠 분위기라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죠(웃음).
인터넷 화상영어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하고, 동명부대가 운영하는 현지인 영어교실에도 참여했습니다. 주말마다 현지인 대학생이 영어를 가르쳐주는 교실인데, 레바논 사람들이 프랑스어와 영어에 능통하거든요.
Q. 동물진료 업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현지 마을로 대민지원을 나갈 때는 주로 동물에게 필요한 약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습니다.
현지인이 기르는 가축을 부대 근처로 데려오기 힘들 뿐만 아니라, 마을에 나가더라도 주요 거점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현지인의 요청을 받아 축사에 직접 가서 진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이 주로 데려오는 동물은 가축보다는 반려동물입니다. 현지인 보호자가 부대원 경호 하에 동명부대 안으로 내원하는 것이죠.
사실 부대 내 동물진료 시설이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수술팩도 있고, 엑스레이도 있고, 주사마취는 가능한 정도의 수준이지만, 90년대 초반의 예전 동물병원은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 진료했습니다.
중성화수술도 많이 실시했습니다. 매주 1마리 정도는 한 것 같네요. 유니필의 대민지원사업 중 하나에 TNR이 있거든요. 유니필 TNR 사업을 위한 기준 프로토콜을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단출하지만 나름 짜임새 있게 진행되는 사업이라 흥미로웠죠.
포획꾼도 따로 있습니다. 그들이 길고양이를 포획해오면 유니필의 수의장교는 중성화수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규정에 포함돼 있습니다.
Q. 가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 달랐던 점이 있나요?
우선 수의사는 혼자인데 진료 범위는 너무 넓다는 점이 힘들었습니다. 총상을 입은 개부터 각종 내과질환, 출산 등 다양한 상황을 갓 부임한 수의장교가 혼자 해결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선배 수의사들에게 조언을 정말 많이 구했죠. 같이 파병 온 전문의 군의관들에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의학에서의 처치나 지식을 물어보고 이를 수의학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또 레바논은 일교차가 아주 큽니다. 38, 39도까지 올라간 낮기온이 저녁이면 10도 언저리로 떨어집니다. 개인적으로도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동물들이 퍼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죠.
좋은 쪽으로 꼽자면, 과일이 너무 맛있습니다. 레바논에 갈 기회가 있으면 꼭 과일을 많이 드세요(웃음).
Q. 8개월 단위인 파병임무를 한 차례 연장해 1년 6개월이나 복무했다고 들었습니다. 연장한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사실 다음 진 모집공고가 나는 파병 2개월차쯤에는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4, 5개월차가 넘어가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지는 것이 함정이지만요(웃음).
단순히 수의장교로서만이 아니라 유니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수의사로서 좀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습니다. 워낙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다음 진(21진) 파병군인분들도 만나보고 싶었고요.
Q. 파병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일도 많을 것 같은데
외부에 검사를 의뢰할 일이 있어 나갔다가 길을 잃었던 적이 기억납니다. 어딘지 모를 어떤 마을로 들어가게 됐는데 현지인들이 도로로 나와 차를 막더니, 험악한 분위기로 추궁하기 시작했죠.
그나마 영어가 되는 사람이 저뿐이라 ‘길을 잃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거기가 ‘헤즈볼라’의 세력권이라는 답이 돌아와 깜짝 놀랐습니다. 다행히 사정을 잘 이해시키고 길을 찾아왔지만 식은땀이 흐르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다른 부대에서도 종종 있거든요.
현지인들과의 교화가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동명부대는 대민지원이나 문화공연을 수 년간 이어오고 있어서 현지인들과의 관계가 좋은 편입니다.
또 학창시절에 농구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파병시절 유니필 전군 대항 5:5 농구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아쉽게 만리장성을 넘지 못해 2위에 그쳤지만, 준우승은 UN군의 공식 상훈으로도 인정됐죠.
20진으로 레바논 현지에 파병된 임무 첫 날 만난 환자도 기억납니다. 양쪽 뒷다리가 부러진 개였는데 어찌어찌 잘 회복되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죠. 그 개의 이름은 ‘키미(Kimmy)’가 됐습니다.
부대 내에서 개나 고양이가 태어나면 현지인이나 유니필 부대원에게 입양을 보내곤 합니다. 다른 나라 부대원들은 파병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부대에서 기르면서 정든 동물들을 함께 데려가는 경우가 많아요. 참 부러운 광경이죠.
Q. 파병기간 동안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중간에 2주를 제외하면 1년 6개월간 한국을 떠나 있다보니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컸죠.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19년 동안 기르던 반려견이 지난해 12월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는데, 와보지도 못하고 돌봐 주지도 못해서 너무 미안했습니다. 맘이 많이 아팠죠.
현지에서 힘들었던 점은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330명의 부대원이 24시간 함께 생활하다 보니 아무래도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Q. 후임(22진)으로 레바논에 가 있는 류미선 중위나 해외파병이 궁금한 후배 수의장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레바논에서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인이 할 준비가 된 범위 이상의 일이 당장 눈 앞에서 기다리고 있거든요. 거기에 정신이 팔리면 기가 죽어요. 저도 그랬고요.
일단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고,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면 어느 순간 짐이 가볍게 느껴질 겁니다. 처음에 힘든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요.
해외파병에 관심이 있는 수의장교들께는 무조건 지원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하거니와 영어도 배울 수 있고, 대우도 좋습니다. 연장도 가능하다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형규 중위의 후임으로는 류미선 중위가 동명부대 22진에 합류했습니다. 파병 전 훈련으로 시간 조율이 어려워 아래 서면 인터뷰로 대체했음을 알려드립니다-편집자주>
Q. 본인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파병 전에는 어떤 임무를 담당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2015년에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류미선 중위입니다. 임상 경험도 잠시 쌓았고 수의사와 관련이 없는 분야에도 있으면서 진로 고민을 하던 끝에 2017년 제14기 수의사관으로 임관했습니다.
임관 후 첫 부임지는 강원도 원주 제1식품검사대 4식품검사반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여군인 선임수의장교님을 만나 사려깊은 지도를 받을 수 있었죠.
식품검사장교 및 반장으로 근무하면서 식품위생검사, 부대별 식당위생점검, 군계약 식품공장 주기점검, 감염병 발생 시 역학조사반 운용 등 수의공중보건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수의장교 여럿이 함께 근무하며 소통하고, 지역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보다 넓은 범위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2년차로 접어들며 전방 부대 경험을 쌓기 위해 경기도 연천의 5사단 예방의무근무대 수의반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업무는 전반적으로 식품검사대와 유사하나 방역업무가 더해져, 사단 예하 부대들의 주둔지 내 시기적절한 방역방제활동을 추가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때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의무병과를 비롯한 다양한 병과와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Q. 해외 파병은 어떻게 지원하게 되셨나요?
대학 시절부터 여군 수의장교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 그 중에서도 해외파병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임관을 준비하면서도 ‘해외파병은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임관 후 공고가 날 때마다 지원했지만 저보다 출중한 후보들에게 매번 고배를 마셨죠. 영어성적이나 직무경험 등 경쟁력을 높여 3번째 지원만에 선발됐습니다.
선발결과 발표날 해외에 있어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가 친한 동기들로부터 축하 문자를 받고 알게 됐죠. 새벽 3시에 깨서는 흥분감에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Q. 여군 수의장교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의병과 내 여군의 활동을 소개해주신다면?
실제로 여군 수의장교 자체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장기 근무를 하신 전·현직 수의장교 선배님들은 전원 해외파병 근무 경험이 있습니다(서부 사하라 국군의료지원단, 레바논 동명부대).
2011년 레바논 동명부대 9진에 수의장교로서 여군이 임무를 수행한 이후로 8년 만에 제가 다시 여군 수의장교로 근무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설렙니다.
수의병과 내에서 여군은 현재 야전에서는 식품검사대장, 예방의무대장 등 지휘관의 자리에서 해당 지역의 예방의무업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상작전사령부 등 보다 상위급 부대에서는 수의보건장교, 즉 공중보건 및 예방의무분야의 전문가로서 정책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의사로서 일하게 되는 여느 곳들처럼 여성이어서 제한이 많다거나 특혜가 있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본인의 열정과 능력만큼 얻는 곳입니다.
업무든 가정이든 성별의 차이로 인한 불리함이 없게끔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서, 혹시라도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분야에 뛰어들기를 망설이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체력적인 부분이 걱정이실 수 있겠네요. 하지만 늦은 나이에 들어온 저도 다 겪어낸 훈련인데, 모두들 생각보다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Q. 동명부대 현지 임무에 임하는 포부를 말씀해주세요
꿈처럼 막연한 동경하기만 했던 동명부대 파병 업무가 실제 코앞으로 다가오니, 사실은 설레거나 기대감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더욱 무거워집니다.
파병단에 하나뿐인 수의장교로서,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신속하고 현실성 있는 판단을 통해 파병지의 작전 수행을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지중해 연안의 청명한 기후 아래, 파병 부대 내외의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고 임무 종료 후에도 이어질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취재에 큰 도움을 주신 육군 수의병과 성경용 소령과 동명부대 22진 공보장교 박희종 대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