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농장동물, 야생동물, 전시동물, 실험동물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수의사에 대한 사회의 기대도 커졌으며, 수의사들에게 적용되는 잣대도 강해졌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의사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것 같다.
동물실험을 위해 불법 개 번식장으로부터 개를 공급받는 수의대, 유기견을 수술 실습용으로 사용한 공수의사 및 공중방역수의사,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농약 불법제조·판매에 직접 관여한 수의사, 대학원생 제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교수, 향정신성의약품을 불법 유통한 동물병원 원장과 불법 투약한 수의대 학생, 사역견 동물실험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서울대 수의대까지. 모두 몇 년 사이에 발생한 일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할수록 수의사에 대한 사회 전체의 불신이 커진다. 대한수의사회에서 윤리 및 법규교육을 의무화하고 수의사 윤리강령을 강화하고 나섰지만, 수의사 개개인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수의사가 눈에 들어왔다.
과거부터 ‘생명’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책을 출간했던 박종무 수의사(사진, 평화와 생명 동물병원장)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2월 생명윤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최근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을 만들었다. 포럼에서는 생명과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을 나누게 된다. 이 포럼은 ‘책 읽기’로 첫 활동을 시작했다.
우연히 생명대학원 홍보를 접하고 생명윤리학 박사가 되기까지
6월의 어느 날, 그의 동물병원(평화와 생명 동물병원)을 찾았다. 작은 동물병원이지만, 병원 이름에도 ‘생명’이 들어가 있다.
병원에 들어서면 그가 지은 책들을 만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살아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 <개 아토피 자연치유력으로 낫는다> 모두 그가 지은 책이다.
동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수의사가 됐지만, 그가 수의사가 처음 됐을 때는 ‘동물을 하나의 생명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뜬금없는 얘기였다고 한다.
예전부터 생명과 관련된 책을 읽고, 생명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블로그에 정리해왔던 그는 몇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펴냈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생명대학원에 진학했다. 우연히 ‘생명대학원’ 홍보지를 접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생명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는지 들어보면 인식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실제 대학원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논의하고 논쟁하면서 자기 생각을 합리적으로 주장하는 연습을 하게 됐다고 한다.
박사논문 주제는 가축 살처분…‘가축살처분이 윤리적으로 옳고, 동물이라는 생명을 다루는 바람직한 방식인가?’
석사 논문의 주제는 유기견의 안락사였는데, 박사 논문 주체는 한층 심화됐다.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가축 살처분에 대한 생명윤리적 고찰>이 그의 생명윤리학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다.
그는 자신의 박사논문에 대해 “우리가 가축을 살처분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그리고 동물이라는 생명을 다루는 바람직한 방식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한다.
“2010~2011년 겨울 살처분 규모가 너무 엄청났고, 꼭 동물을 살처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오히려 수의계 내부에서는 문제 제기가 적었다. 오히려 수의사들은 기능적으로 동원되어서 시키는 대로 살처분을 하는 역할을 했지만, 동물을 죽이기 위해서 수의사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라고 그가 반문했다.
“가축이라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수의계 내부에서 나오지 않고 동물보호단체들로부터 시작되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살처분을 해야 하는 이유로 전염병 전파, 경제적 이익, 공중보건상의 문제 등이 있는데 그런 게 과학적으로 맞는 얘기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파고들었죠”
동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데에 그도 동의했다.
그는 “동물의 삶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정말 많아졌다. 변호사단체도 있고, 교수들도 많다. 외국에서 윤리와 철학을 공부했던 분들이 동물도 윤리적·도덕적 고려의 대상인지 논란이 있을 때 외국의 사례를 소개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리된 이야기다. 철학적 범주가 점점 넓어지는 것이다. 남녀차별, 인종차별 문제를 넘어서 동물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다. 해외에서 이런 것들을 배운 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더 나아가 생태에 대한 것까지 확산된다”며 “생태계를 구성하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인식하는 수준까지 나아가고 있다”고 최근 동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설명했다.
“가장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바로 수의사”
결국, 수의사들도 사회적으로 강화되는 기준에 따라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근 생명을 위한 수의사 포럼(수의사생명포럼)을 만든 그는 “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직업이 수의사인데, 수의사들이 동물의 생명윤리 분야를 주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따라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포럼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생명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고도 전했다.
“사회적인 기준이 강화되고 있으므로 수의사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그는 “가장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수의사”라고 말했다.
그는 “혼자서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며 “포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모여 집단지성에 의한 창발적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동물에 대한 다양한 문제가 있으므로,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누고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먼저 수의사들과 나누고 싶어서 포럼을 만들게 됐다. “수의계 내부에도 생명에 대한 고민을 하는 단체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첫 활동은 ‘책 읽기’였다. 가장 먼저 고른 책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
책을 먼저 읽은 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혼자 잘났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과 서로 돕고 똘똘 뭉쳤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책이다.
박종무 수의사는 “사회적 존재인 사람도 마찬가지”라며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직업들과 상호작용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의사들 사이에서도 최근 경쟁이 심해지고 있지만 “경쟁만이 다가 아니다. 생명이 서로 돕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또 다른 사고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일도 없이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옆 동물병원과 싸워 이기는 것이 모든 것이어야 하는가?”라고 말한 그는 “그런 행동은 자기 몸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다. 경쟁만 생각해서 그렇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종무 수의사는 “경쟁만 강조하다 보면 윤리적인 문제와 다른 사람의 고통은 무시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모임은 7월 17일 저녁에 열린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대 교수와 <야생의 법> 번역자인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초청해, 동물을 포함한 지구의 생명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북 콘서트를 갖는다.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눈 뒤 마지막으로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윤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윤리는 간단해요. 내가 다른 사람·다른 생명에게 어떻게 행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서로 논의해가면서 공통점을 찾고, 일반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을 무엇으로 잡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