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너무나도 다양하겠지만, 통상 하루의 3분의 1을 직장에서 보내는 현실에서 직업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이 칼럼의 또 다른 주제인 ‘Happy vet’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수의사라는 직업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안녕하세요, 수의사 OOO이라고 합니다.”
– A: “나 어제 소개팅했어.” B: “그래? 뭐 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은 직업을 마치 자신의 이름처럼 소개하기도 하고,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직업을 물어보기도 한다. 직업이 그 사람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주기 때문일까?
노동 분화의 결과물인 직업에는 귀천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금전적 보상, 지위, 권력과 같은 사회적 보상은 대개 직업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어진다. 또한, 어떠한 직업은 높은 교육 수준이 필요하거나 상당한 노력의 성취 끝에 도달할 수 있다.
직업과 관련된 연구 분야에서는 ‘직업 위세’, ‘직업의 사회경제적 지위’, ‘직업 지위’ 같은 용어들이 쓰인다. 교육 수준, 임금과 같은 객관적 지표부터 사회적 지위, 권력, 노동 강도, 심지어 정직성과 같은 주관적 지표까지, 현실에서 사회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직업에 대한 평판에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경향성을 띤다.
이처럼 다양한 정보들이 직업에 반영되면서, 직업은 단순히 개인이 하는 일의 종류가 아닌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지만은 않는다. 개인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연구(Bellah et al.,1985)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직업을 일(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이라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먼저, 자신의 직업을 일(Job)로만 인식하는 사람은 물질적 보상을 얻기 위해 일을 한다. 직업은 단순히 물질적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이를 통해 얻은 보상으로 일 외적인 삶에서 즐거움이나 야망을 찾는다.
직업을 경력(Career)으로 여기는 사람은, 현재의 직업을 통해 수입, 권력, 명예, 명성, 지위, 직무 수준 등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에 목적을 둔다. 직업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거기서 오는 성취를 즐긴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직업을 소명(Calling)으로 여기는 사람은, 직업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며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직업과 자신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직업적 행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앞선 글에서 말했듯, 수의사라는 직업은 사회와 계약관계에 있는 직업이다. 사회에서 독점권을 받는 대신, 그것을 개인의 금전적 이익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사용해야 하는 직업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
만약 모든 수의사가 이 직업을 단순히 일(Job)로만 생각하여 금전적 이익만을 위해 일한다면, 모든 수의사는 노동 대비 수입이 높은 분야에만 몰릴 것이며 이는 결국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소명의식이 중요한 다른 이유는, 바로 개인에게 직업의 의미가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크다는 많은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소명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찾고 그것에 헌신하는 것이다. 물론 ‘수의사의 선서’처럼 사회에서 수의사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소명도 있겠지만, 개인에게 직업적 소명은 꼭 그리 거창하고 그럴싸한 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누군가 한 명 정도는 수의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그것이 이 글을 쓸 때 나의 소명이다. 조금 소박하거나 낭만적이더라도 괜찮지 않은가? 수의사라는 직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일인가, 경력인가, 혹은 어떤 소명인가?
동물에 대한 인식 변화와 사회적으로 전문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수의사라는 직업 역시 꽤나 각광받는 직업이 되었다. 입시성적은 높아지고, 학생들은 수의과대학에 진학하는 많은 이유로 ‘안정적이고 높은 수입을 기대하며 전문직을 원해서’라고 대답한다. 요즘 부쩍 수의사 커뮤니티에 늘어난 금전적 수입에 대한 질문과 푸념들은 많은 수의사의 직업적 기대요소가 금전적 수입에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직업의 사회적 평판과 개인에게 직업이 가지는 의미는 별개이다. 이 말은, 좋은 평판의 직업을 가진다고 해도 개인에게 소명의식이 없어 직업이 그저 일(Job)에 지나지 않는다면 결국 직업적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잣대가 금전적 수익의 정도에만 머문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수의과대학과 수의사 사회는 이 똑똑한 후배들에게 어떻게 소명의식을 ‘교육’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직업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고민임과 동시에, 일평생 수의사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갈 구성원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가르침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모든 수의사가 소명으로 일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수의사라는 직업은 누군가에게는 돈벌이 수단,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인생을 향한 디딤돌일 것이며, 누군가에겐 소명 그 자체일 것이다. 그것은 각자가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므로 옳고 그름으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설령 수의사라는 직업이 개인에게 돈벌이 수단이더라도 ‘좋은 수의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반대로 직업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해도 선택받을 자신과 떳떳함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참고자료
-최유정; 최샛별; 이명진. 직업 위세에 관한 사회 심리학적 분석: 직업 위세의 객관적ㆍ감정적 의미. 경제와사회, 2008, 133-162.
-유홍준; 김월화. 한국사회의 직업지위에 관한 연구: 사회경제적 지위를 중심으로. 직업능력개발연구, 2002, 5.2:35-66.
-최주연. 직장인의 일의 의미가 삶의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한국웰니스학회지, 2018, 13.4: 221-235.
-장진이; 이지연. 성인 직장인의 소명의식이 삶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 소명수행 의식, 삶의 의미, 일의 의미, 직업 만족의 매개효과. 상담학연구, 2014, 15.1: 259-278.
손영우. 한국심리학회 제공. 네이버 지식백과 심리학 용어사전 ‘소명’,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1991&docId=2070228&categoryId=41991
Bellah, R. N., Madsen, R., Sullivan, W. M., Swidler, A., & Tipton, S. M. (1985). Habits of Heart. New York: Harper & 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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