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⑫] 진화하는 수의사
1인 방송 크리에이터, 웹툰 작가, 아이돌….
이 직업들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혹은 너무 특수하고 소수여서 딱히 정립된 하나의 직업군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직업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직업들은 이제 각광받는 직업으로서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순위에서 번듯하게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직업 사전의 최근 조사에서는, 10년 동안 약 3,500여 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2,100개 정도의 직업이 새로 생겼다고 한다. 이처럼 직업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롭게 나타나며 또 사라진다.
수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수의사의 직업적 기원은 아주 먼 옛날 인류가 동물과 관계를 형성하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수의(獸醫)’라는 이름으로 기원전 주(周)나라 기록에 등장한 후 오늘날까지 그 이름은 같을지라도,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수의사의 역할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어떤 시대에서는 군사력인 말을, 또 어떤 시대에서는 식량으로써 가축의 생산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고, 오늘날에는 반려동물 치료에 종사하는 수의사의 비율이 가장 높다.
그렇다면 앞으로 수의사라는 직업은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물론 그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큰 흐름에서 변화의 경향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리처드 서스킨드와 대니얼 서스킨드는 그들의 저서 “전문직의 미래”에서 전문직의 미래를 꽤 설득력 있고 냉철한 시각으로 예측했다. 첫 번째로 지금의 방식이 고도로 표준화, 체계화되어 효율성이 높아지리라는 것이고, 두 번째로 전문성이 대중에게 보편화됨으로써 전문직이 계속해서 해체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예측이라고 하기에 무색하게도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직업은 작업이라는 단위들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동물을 진료하는 일은 동물을 보정하고, 채혈을 하고, 방사선 사진을 촬영하고, 판독을 하고, 진단을 내리고, 수술을 하고, 주사를 놓고, 약을 조제하고, 보호자와 상담하는 등의 작업으로 구성된다.
생각해보면, 이 중 어떤 작업은 수의사의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어떤 작업은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로봇이나 컴퓨터로 대체하면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또 어떤 작업은 별도의 학문에 가까워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맡는 것이 더 적합할 수도 있고, 혹은 종합적인 사고판단이 그다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더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작업도 있다. 개중에는 위험성이 길 가다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죽을 확률만큼 낮은 작업도 있을 것이다.
전문직이 하는 모든 행위가 과연 고도로 창의적이고 응용력이 필요하며 종합적 사고를 발휘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중의 의문은 바로 전문직 해체의 시발점이다. 전문직은 이러한 생각을 전문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불편하게 여기지만, 어떤 학자들은 전문직 구성원들은 그들 자신의 직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전문성을 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 갈수록 진료가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아.”
공감한다. 점점 더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하고, 어려운 진료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진료환경의 변화는 수의사들에게 많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로봇의 생산성과 인공지능의 똑똑함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사람의 경쟁력은 생산성과 단순지식 분야에서는 완전히 패배했다. 집단 지성의 힘과 인터넷이라는 수단은 전문성을 보편화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제 어떤 보호자들은 자신의 반려동물이 가진 질병에 대한 관련 저널의 최신 논문까지 읽어온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등의 요인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새롭게 생겨난 직군은 그들 분야의 전문성을 구축해나간다.
이처럼 전문직은 끊임없이 해체되는 반면, 모든 직업은 전문화되어간다. 이러한 현상은 수의사 직군에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다. 다양한 보건의료 직군이 생겨나 그들의 전문성을 구축하고 권한을 요구하고 있으며, 병원에 있을법한 의료기기들은 안전성과 이용성을 높여 홈케어 기기로 판매되고 있고, 상비용 의약품들은 편의점으로 갔다. 수의학의 영역만 성역으로 남을 리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의사라는 직업이 완전히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체된 전문성의 자리를 기득권만으로 채우지 않으려면, ‘인간’으로서 수의사가 앞으로 어떤 가치와 태도를 지향해야 할지에 대하여 우리는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필자는 수의사라는 직업에 관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미래에도 수의사를 대체 불가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하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동물복지’이다.
아직도 동물복지를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하면 더 좋은 것’ 혹은 ‘측은지심’과 같은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옵션 정도로 생각하는 수의사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도 동물복지는 이제 사회구성원의 대다수가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언 명령(定言 命令; 조건이나 이유가 필요 없이 그 자체가 선의 가치)’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동물복지과학(Animal Welfare Science)은 다분히 실제적인 학문이고, 동물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태와 통증을 파악하고 가이드하는 것은 동물복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수의사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수의전문의 제도의 세부 분야에 각각 ‘Animal Welfare Science, Ethics and Law(AWSEL)’와 ‘Animal Welfare’를 두고 있다. 동물복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전문성이다.
동물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는 수의사라는 직업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다. 과거에는 산업동물의 생산성이나 보호자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수의사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주된 이유였지만, 향후 수의사의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가장 큰 근간이자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는 동물복지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 기술’이다.
진단은 정답을 추구할지 몰라도, 진료는 정답을 도출해내는 과정이 아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고, 우리의 동물 환자들은 많은 현실적·통념적 제약과 한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같은 케이스라도 모든 것을 똑같이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며, 보호자와 함께 현실적인 최선을 도출하는 과정을 매번 겪는다. 내원부터 퇴원까지의 모든 상황은 알고리즘으로 돌릴 수 없는 다분히 인간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며, 이를 이끌어 가는 도구로써 커뮤니케이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설사 인공지능이 엄청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단부터 치료 계획을 모두 설계해 준다고 하더라도, 아마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그대로 따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인공지능과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은 한, 진료실에서 수의사가 필요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물보건사, 반려동물 의료보험, 수의전문의제도, 진료비 공시제….
우리나라의 수의계에는 올해도 많은 이슈가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실제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것이 과연 피할 수 있는 흐름인 것일까?
나는 대다수 이슈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외국에는 이미 자리 잡은 제도들이 우리나라는 영영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불합리하다. 그렇기에 다들 어렴풋이 예측은 하고 있었다.
지금 도입되는 제도들의 방식과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많은 구성원이 동의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현상 유지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미리 대응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일단 제도가 도입되고 난 후 손보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비효율적이다.
그동안은 이러한 제도들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우리나라의 수의사’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분석이 반영된 데이터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 대한수의사회 차원에서도 수의정책연구소 설립 등 향후 제도적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한 작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을 마련한다 하여도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당장 오늘 10원이라도 더 버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곤란하다. 구성원의 긍정적인 단합과 객관적인 시각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사람은 생계 문제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직업적 환경의 변화를 꺼린다. 심지어 어떤 이는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불안에 맞서는 방법은 변화를 피하거나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직군은 더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화에 온전히 직면하고 최선의 답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직업은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이 보이지만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급변하는 시기,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현상 유지는 도태의 한 종류일 것이다.
수의사라는 직업의 역할은 그 기원과는 많이 변했고 지금도 과도기에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이 사회의 요구가 반영된 전문직업성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데에 모두 힘을 보태야 한다.
앞으로도 대중은 수의사라는 직업의 전문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수의사들은 수의사라는 직군이 이 사회에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전문성으로 계속 증명해 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 칼럼에서 다룬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이 글을 읽으며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1, 2년 안에 은퇴할 계획이라면 모르겠지만, 여기 대부분은 은퇴하기 전에 많은 변화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가장 준비되지 않은 것은 우리의 각오일지도 모른다.
* 마치는 글
나는 나의 궁금증을 따라가다 우연히 수의인문사회학을 접했고, 이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운 대가가 아니라 여전히 이 분야를 찾아서 공부하고 있는 입장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칼럼 제안을 받았을 때 연재를 결심한 이유는, 수의사의 윤리와 직업성에 대한 글이 수의사 신문의 한쪽 편을 차지하게 된 데에는 분명히 이 사회의 흐름에 따른 무언의 요구가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글이 그러한 요구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응답이 되었기를 바란다. 더 깊고 알찬 구성과 내용을 전달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또 그 점에 양해를 부탁드린다. 오류가 있다면 추후에라도 바로잡을 것이다.
칼럼의 성격상 수의계의 윤리적 문제와 부정적 측면을 부각해서 썼지만, 사실 내 주위의 수의사들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며 직업적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미 잘하고 있지만 조금 더 노력하자는 의미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 분야를 접하면서 나의 첫 키워드는 ‘Good vet’이었고, 두 번째 키워드는 ‘Happy vet’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 둘은 별개가 아닌 연관된 키워드임을 점점 확신하게 된다. 나는 좋은 수의사가 곧 행복한 수의사라고 믿는다.
끝으로 이 가볍지 않은 글을 즐겁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과 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매회 감수를 맡아주신 서울대학교 천명선 교수님, 주설아 선생님, 교정을 봐주신 정형남 작가님·강영화 선생님, 칼럼을 제안해 주신 데일리벳, 그리고 언제나 저의 힘이 되어주시는 전북대학교 이기창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고자료
– (4차 산업혁명 시대,) 전문직의 미래 :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혁신이 가져올 새로운 전문직 지형도, Susskind, Richard E, 와이즈베리, 2016
– 근대 수의학의 역사 : Historia veterinaria, 천명선, 한국학술정보, 2008
서울대학교 수의인문사회학 교실에서는 수의사/수의학과 학생의 윤리적 딜레마와 도덕적 스트레스 사례를 수집합니다.
수의사로 활동하거나 수의학 교육과정 등 다양한 현장에서 느끼는 윤리적 딜레마, 도덕적 스트레스 사례 중, 공유하고 싶거나 분석하고 싶은 사례가 있다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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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제공 링크 : https://forms.gle/gg8tyKPiEdphDAwJ6
문의 : dilemmavet@gmail.com
윤리적 딜레마: 의사결정 과정에서 두 가지 이상의 옵션이 주어질 때,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더 타당한지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 (예시; 환자의 안락사 결정)
도덕적 스트레스: 자신의 윤리적 기준으로 정당화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행위를 수행해야 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 (예시; 보호자의 편의를 위한 안락사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