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⑩] Journalist:SBS 한세현 기자

'뭐라고? 기자인데 수의사라고?!' 한세현 기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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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학의 다양한 분야 및 이슈에 대한 수의대생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8기가 “수의학 A to Z”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수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리 학생들로부터 공모받은 알파벳에 따른 키워드를 정해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A부터 Z 키워드 기사가 계속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열번째 키워드 알파벳 J는 Journalist(기자)입니다.

수의사가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아주 넓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수의대를 졸업하면 모두 수의사로 살아가는 걸까요?

전공과 실습으로 빼곡히 채워진 시간표 속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수의대 학생들은 수의학 이외의 다른 분야를 접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만큼 학생들은 색다른 길을 걷는 수의사 선배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무한대로 품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데일리벳 학생기자단이 SBS 한세현 기자를 만났습니다.

SBS 한세현 기자는 기자이자, 수의사이며, 수의학 박사입니다. 2007년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 SBS에 입사해 한국기자상·올해의 방송기자상·한국방송기자 대상·국제엠네스티 언론상·민주언론상 본상·인권보도상·BJC보도상 등 각종 굵직한 언론상을 휩쓸며 유능한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병리학 박사로서 십여 편의 SCI급, KCI급 논문을 등재하며 수의학 관련 연구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멀티플레이어’입니다. 그 외에 경북대 병리학 겸임교수, 학술지 편집위원, 행정안전부 정부포상심의위원회 위원 등 각종 대외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평범한 기자일 뿐”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며 저를 좌절시켰습니다. 위로의 의미로 시간을 내주신 한 기자가 끝없이 쏟아낸 이야기들은 흥미로웠고, 결정적으로 새로웠습니다. 데일리벳 독자들과 꼭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한 달이 넘게 조르고 졸라서 간신히 허락을 받아낸 인터뷰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 대화를 유쾌하게 나누며 자유롭고 흥미진진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BS 정치부 한세현 기자입니다. 그리고, pseudo(가짜의) D.V.M이죠. (웃음)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어쩌다 보니 벌써 12년 차 방송기자로 살고 있네요. 사람 내일 모를 일이죠?(웃음) 사회부, 경제부, 탐사보도부 등을 거쳤고 지금은 정치부에서 국회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교에서 병리학을 전공해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요즘은 한양대학교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하며 두 번째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보통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을 텐데, 이번에는 인터뷰를 ‘당하게’ 된 소감은 어떤가요?

굉장히 어색하네요. 최 기자께서 의지가 워낙 완강하셔서요. 그냥 식사만 대접하고 조용히 보내버리려 했는데…(웃음). 무엇보다 제가 인터뷰를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인터뷰 당하는(?) 사람 마음은 이렇겠구나’ 하며 그동안 제 인터뷰이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런데 학생들 입장에서 진짜 제 이야기가 궁금할까요? 저는 그냥 평범한 기자이며, 아까 말했듯 pseudo D.V.M.일뿐인데요(웃음).

저도 올해는 데일리벳 학생기자인데요, 기자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요?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수의대생들도 궁금할 것 같은데요. (웃음) 멋져 보여요.

어휴~ 기자 하지 마시고 수의사 하세요. 기자는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힘든 직업입니다.

수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무엇보다 일 자체가 숭고하잖아요. 약한 존재들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저는 저희집 꼬맹이들에게 매일같이 얘기합니다. “커서 수의사 되자!” 물론, “근데 아빠는 왜 수의사 안 해?” 이런 얘기를 들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만….(웃음)

어쨌든, 기자는 기본적으로 감시하고, 따져 묻고, 비판하는 게 직업의 본질이라, 욕도 많이 먹을 수밖에 없어요. 특히 주니어 기자 때는 특히 말도 안 되게 힘들고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제가 수의사와 기자 둘 다 경험해보니, 기자보다 수의사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기자로서 여러 직종의 사람들을 마주하면서도, 수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라는 걸 매번 느낍니다. 무엇보다 그 점을 꼭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다들 가장 궁금해할 질문이자, 이미 수없이 들었을 질문입니다. 수의대를 졸업하고 방송기자로 사는 건 특이한데요. 왜 방송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나요?

다들 이게 궁금한가 봐요. 취재원들도 그렇고, 예외 없이 이 질문을 하더라고요. 물론 SBS 입사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매일 출발선 앞에 서야 하는, 그런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입사면접 때도 그렇게 대답했었어요. 면접관들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역시 사람 내일 모르는 겁니다. (웃음)

기자는 어제 초대형 특종을 해도, 다음 날 낙종을 하게 되면 저희 표현으로는 ‘물 먹는다’라고 하는데, 그냥 그렇게 또 한순간을 날리는 거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그렇게 매일 새롭게 도전하는 삶을 꿈꿨습니다. 희열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물론 막상 해보니 무지하게 힘들긴 하네요(웃음).

그리고 기자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고, 그만큼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게 멋져 보였어요. 실제로 대통령, 장차관, 국회의원부터 범죄자들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봤고요. 요즘도 국회의원들, 장차관들을 매일 보고, 매일 통화하고, 식사하고 술자리도 하면서 그렇게 지냅니다.

그리고 수의사는 일단 면허가 있으니까, 시쳇말로 ‘면허가 깡패’라고들 하잖아요?(웃음) 수의사와 달리 기자는 그럴 수 없으니 기자가 안 되면 후회 없이 수의사를 하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 ‘미스캐스팅’이 나서 기자를 하고 있네요. 그것도 방송기자를 말입니다. 아직 21세기 현 인류는 이런 비주얼의 방송기자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늘 시청자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웃음).

그동안 공부해온 분야를 벗어나 과감히 방향을 틀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리고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다들 미쳤다고 그랬죠. 국시 앞두고 러시아 근현대사, 아랍 분쟁사 이런 이상한 책 들고 다니니까 동기가 그러더라고요. “야 세발아, 너는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수의학만 빼고.”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과학 커뮤니케이션에서 ‘불확실성’은 크게 4개로 나눕니다. 위험 결과나 발생할 확률을 모두 알 수 있을 때, ‘리스크(risk)’. 확률은 알 수 있지만, 결과가 불확실한 경우를 ‘모호성(ambiguity)’, 결과는 예측 가능하나 그 확률이 불확실한 경우를 ‘불확실성(uncertainty)’, 위험 결과는 물론, 그 확률도 알지 못할 때를 ‘무지(ignorance)’.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언론사 입사시험은 완전히 <무지>의 영역에 있는 도전이었죠.

제 입사 동기가 저를 포함해 6명인데 당시 지원자는 2천 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경쟁률이죠. 넉 달 동안 5차 시험을 연이어 보면서 자기소개서, 영어, 논술, 작문, 상식, 국어, 한자, 카메라테스트, 현장취재, 기사작성, 르포, 토론, 중계 등등…심지어 술자리 면접까지. 볼 수 있는 건 빠짐없이 싹 다 봅니다. 그렇다 보니 합격하기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라 ‘언론고시’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그런 시험을 볼 준비가 돼 있을 리 만무하죠. 논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따져본다면 사실상 예측되는 결말은 분명했습니다.

타개 방안은 간단했습니다. 양으로 승부 본 거죠. (웃음) 아침부터 새벽까지 하루 14시간씩 매일 기계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아, 한세현 씨, 축하합니다. 보도국에서 봅시다!” 인사팀 선배의 합격통보 전화를 받은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블랙아웃, 암전이었죠. 그 순간만큼은 참 행복했습니다. 합격이라는 결과보다도 무모했던 도전을 여한 없이 마쳤다는 안도감에 큰 행복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수의학과 재학 시절은 어땠는지, 기자가 되기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학창시절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항상 어딘가로 돌아다녔고, 항상 무엇인가 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거 위주로요(웃음).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 중 하나는, 역시 수업을 빼먹고 놀러 다녔던 겁니다(웃음). ‘시험 보기 너무너무 싫다. 흑백사진 봐서 뭐하나’ 이런 생각 하면서 영상의학 시험 보러 가던 길인데, 우연히 터미널에 서 있던 고속버스를 보게 됐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걸 탔습니다. 경북 영주로 가던 버스였더라고요. 그렇게 부석사, 소수서원 등 명승지를 잘 보고 왔습니다. 물론 성적은 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웃음).

방학 때면 중국, 몽골, 중동 등 여행도 많이 다녔고 미국, 일본의 수의과대학 여러 곳에 실습을 가보기도 했습니다. 그냥 무작정 그곳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내서 “조용히 구경만 하겠다. 필요하다면 청소도 하겠다. 근데 혹시 시간 되면 실험도 좀 하게 해달라” 뭐 그렇게 막 들이댔죠. 그래도 안 통하면 “내가 훗날 한일, 한미 수의학계에 크게 이바지할 인물이다.” 막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무식하게 우겨댔습니다(웃음).

그럼 결과는 9할이 “NO!”였죠. 그래도 어떻게 그 1할이 통하면서, 미국 코넬대학교, 오클라호마대학교, 일본 동경대학교, 북해도대학교, 나고야대학 등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군 부대 안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인턴처럼 근무하면서 미국 수의사들의 진료도 배워봤었고요.

돌아보면 대학 연구실, 병원에서 일하며 배운 것보다는 거기에 가려고 노력하고 퇴짜를 맞는 과정에서 배운 게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특히 ‘맷집’을 많이 배웠죠. 까라. 그래도 난 간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까는 거 따위는 두렵지 않다. 그렇게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났습니다.

저의 20대는 화려하다거나 멋진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예방의학교실에 있으면서 도축장 다니고, 실험하고, 그렇게 찌그러져(?)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때 같이 실험실 생활했던 친구, 후배들이 지금은 그 연구실을 차지한 교수님들이 되어 있네요. 격세지감이죠(웃음).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SCI 논문 9개, KCI 논문 2개의 저자에 이름을 올리신 병리학 박사십니다. 왜 병리학을 선택했나요? 기자가 된 후에도 수의학 연구를 지속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시간적인 어려움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왜 병리학이냐고 묻는다면, 저 자체가 일단 abnormal 하고요(웃음). 학창시절 학점을 C와 D만 받는다고 별명이 ‘CD 플레이어’였는데, 병리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니 다들 놀랐죠.

아시다시피 병리학은 말 그대로 병의 이치를 따져보는 학문입니다. 바이러스, 세균 등 기초의학부터 외과, 내과 등 임상의학까지 다 접점이 있죠. 그리고 당시 연구실 지도교수님께서 “진단이 정확해야 예방도 치료도 가능하다”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비록 수의사로 살아가지는 않더라도, 오히려 그래서 더욱 가능한 넓게 수의학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병리학을 선택했습니다.

기자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오롯이 학문에 전념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석박사 학위를 받는데 8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겠지요. 어떤 분들은 저의 그런 점을 보고 학문적 깊이가 부족하다고 비판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중요한 건 오랜 시간 동안 수의학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사학위는 그동안 포기하지 않았음에 대한 감투상인 것 같습니다.

학위를 받고 나서도 지금까지 동료들과 같이 SCI(E)급 논문도 내며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의학 박사학위는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이루고자 하는 바를 모두 실현하시는 게 신기하고 대단합니다. 노하우가 있나요?

이룬 게 없어서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다만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스나이퍼(저격수)’ 같은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몸을 낮추고 있다가 목표물이 과녁에 들어온 그 순간 총알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꼭 필요한 시점에 전 체중을 싣는 용기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도 많이 하고, 많이 까이고 털렸습니다(?). 야구 좋아하시나요? 야구에서는 3할 타자를 훌륭한 타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10번 중 7번은 못 쳤다는 거예요. 인생도 같다고 생각해요. 10번 시도해서 3번이나 성공한 게 어딥니까? 대단한 거죠.

그리고 인생이 야구보다 좋은 점이 하나 있어요. 야구는 타순이 돌아와야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데, 인생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1할 타자도 3할 타자보다 안타를 더 많이 칠 수 있는 게 인생입니다. 만약 내가 1할 타자라면, 남들보다 몇 배로 타석에 들어서면 되는 거예요. 그게 저의 유일한 노하우였습니다(웃음).

제가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냈다 하면 다들 기자 하면서 언제 썼냐고 놀라곤 합니다. 쉴 새 없이, 줄기차게 받은 게재 불가 통지를 보면 그렇지 않은데요(웃음). 결과는 비록 ‘reject’였어도 과정만큼은 전력투구였기에 후회 없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타석에 들어서다 보니 어느 날 ‘ACCEPT’라는 단어도 보게 되더라고요.

여태껏 살며 느낀 소박한 진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딱 그만큼 하기 싫은 일을 견뎌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인생은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에 대한 열망이 커서 그만큼 하기 싫은 일도 더 많이, 더 오래, 더 자주 견뎌냈어야 했습니다. 수의사 면허든, 박사학위든, 언론사 시험이든. 다 그랬습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 수의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취재파일] 충격과 공포를 넘어···코로나 바이러스를 생각하다]’가 그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해하기 쉽지만 마치 논문 같은 전문성, 그리고 과학과 사회를 아울러 강력한 메시지가 전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쓰게 된 기사인가요? 수의학 전공이 어떻게 작용했나요?

그 기사도 나름의 도전이었어요. 흔한 유형의 기사는 아니었으니까요. 과학적인 내용을 쉽게 설명해야 하는데, 쉽게 풀어 쓰는 데 치중하다 보면 자칫 팩트가 흐려질 위험이 있으니 그 사이에서 외줄 타는 마음으로 신중히 기사를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논문을 정말 많이 읽어야 했습니다. 한 줄 쓰면서도 논문 몇 개씩을 두고 비교하며 그중 가장 적확한 설명을 골라 인용했습니다. 줄이고 줄이다 보니 참고했던 논문 총 70개 중 30개 정도가 추려졌어요. 인용 논문이 30개니 기사가 아니라 사실상 논문에 가까운 걸 쓴 거죠(웃음).

기사를 쓰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학자분들을 포함해 바이러스 학계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기사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고. ‘그래, 너 자랑하는 거냐?’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시겠지만, 네 자랑 맞습니다. 자랑 좀 하겠습니다(웃음).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수의학자로서 논문을 찾아보는 노하우, 분석체계, 공부경험이 기초가 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수의사입니다”라며 기사를 시작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학부생 때 봤던 바이러스학 교과서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다시 보면서, ‘아니 내가 이걸 다 봤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며 놀랐습니다. 그런데 왜 학점은 왜 그 지경이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수의학을 공부했기에 취재할 수 있었던, 기억에 남는 취재가 또 있을까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뷔트히리 교수를 인터뷰했던 적이 있는데요, 지금껏 해본 인터뷰 중 최고난도였습니다. 섭외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국에 오셨을 때 일정을 맞춰야 했는데, 기본적으로 저의 이력, 어느 레벨의 기자인지, 전공, 학위 논문, 앞서 인터뷰했던 석학들 리스트까지 요청한 다음 협의까지 마치고 나서야 공식 초청 레터를 보낼 수 있었어요.

뷔트히리 교수가 노벨상을 받은 기술(핵자기공명 분광법)이 광우병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는 걸 가능하게 한 연구였어요. 그래서 결정적으로 제가 수의학 박사이고, 제 박사학위 논문이 광우병 연구여서 그래서 그걸로 우겨서 겨우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해가야 했고요. 결정적으로 영어로 통역 없이 인터뷰해야 했어요. 큰 좌절의 순간이었습니다(웃음). 어쨌든 마찬가지로 꾸준히 수의학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인터뷰였습니다.

전문기자는 아니신 건가요? 수의학 전문기자제도가 있나요?

기자 가운데 일부를 전문기자로 선발해 양성합니다. 언론사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SBS는 그동안 거친 출입처, 취재 실적, 방송 능력, 학위, 전공, 자격증, 저서, 사내외 네트워크 등을 평가받아 선발합니다. 전문기자로 인증을 받으면 기획이나 심층취재 등에서 자율성이 생기고 전문기자 신분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 출연, 강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의학, 국방, 기상,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전문기자들이 활동하고 있죠. 수의학을 전공했다면 농림, 환경, 보건, 의학, 과학, 식품 등의 분야에서 전문기자로 활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전문기자로서 활동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부서를 다니는 이른바 제너럴리스트로 활동하고 싶었습니다. 늘 새로운 도전을 즐기니까요. 지금은 정치부에서 국회를 출입하지만, 이전에는 경제부, 사회부, 탐사보도부, 편집부, 선거방송단 등 여러 분야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기자는 ‘알리는’ 직업이잖아요. 오히려 그래서 더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게 보이나요? 어떤 면에서는 기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게 수의학계, 수의사 사회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부 기자와 수의사가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가령 국회에 출입하며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수의 관련 정책에 관해 기사를 쓸 수도 있는 거고요. 실례로, 제가 사회부에 있을 때는 전국의 수의사들이 모였던 동물병원 진료비 부가세 집회를 직접 취재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지상파 언론사 메인뉴스에서 그 집회를 다뤘던 건 저희가 유일했습니다. 이 외에도 차마 기사로는 다 말씀 못 드리지만, 저의 도움을 받으신 수의사분들이 좀 계십니다. 그분들은 이 기사 보시면, 선플 좀 달아주셔야 합니다(웃음). 한 숟가락씩 보태주세요(웃음).

비록 제가 현재 기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수의사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저의 위치에서 수의학계와 수의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수의사회비도 꼬박꼬박 잘 내고 있어요(웃음).

방송기자연합회지 『방송기자』에 연재한 글(코로나 보도, 이대로 괜찮은가: 과학 보도의 어려움)을 읽으면 수의학 박사이자 기자로서 ‘기자의 전문지식의 필요성’을 많이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수의계에는 기자로서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수의사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코로나19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그 백신을 추진한 화이자 CEO 앨버트 불라는 그리스 수의사입니다. 우리도 그런 인재들이 나왔으면 좋겠죠. 그런 점에서는, 임상의학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은 선배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가려 하지 말고 더 넓게 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임상의가 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임상의가 될지 생각을 깊게 그리고 조금 다르게 해봤으면 좋겠고요. 임상이든, 기초연구든, 뭐든 수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잖아요.

아예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수의사라는 전문성이 물론 긍정적으로, 그리고 강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운 건 다 쓸모가 있는 법이니까요. ‘수의사’라는 이름에 너무 갇히지 않는다면,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더 넓고 창조적인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의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수의학 정말 좋은 학문이에요. 학생들이 자부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길을 잘 닦아놓고, 좋은 모습 많이 보여줬으면 좋겠고요. 앞으로 수의계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지 않을까요?

한세현 기자는 기자십니다. 조금 웃긴 질문이겠지만, 본인은 수의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미 수의학 박사이시긴 하지만)

저도 나름 수의학 공부 좀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수의사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웃음)

다만 저는 좀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살고 싶었기에 선택한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저널리즘과 수의학을 넘나들면서 기자라는 직업과, 수의사라는 직업을 모두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시작할 때 “기자이기 전에, 수의사로서”라고 쓴다거나, 논문에서 소속을 ‘SBS 보도본부’라고 쓰는 게 그 자부심의 흔적이겠지요.

수의사 중에 저같이 이상한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겠어요? 생각해보니, 당장 데일리벳을 세우신 이학범, 윤상준 두 대표님도 그런 이상한 분들 카테고리에 들어가시겠습니다(웃음).

앞으로의 꿈이 있나요?

관점과 철학을 담은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는 것. 사람들이 ‘기레기’라며 기자를 무시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부해서 깊이 있고 정확하고 따뜻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의 길을 걸으며 저의 자리에서 수의학을 사랑하고 공부할 겁니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의사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답은 없다, 저는 그게 유일한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조언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소개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명한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국내 인터뷰에서 했던 말입니다. “스무 살에 이걸 하고, 그래서 다음에 이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저는 완벽히 공감합니다. 20대의 저도 제가 이렇게 방송기자로 살지 전혀 몰랐습니다. ‘CD플레이어’였던 제가 지금은 병리학 박사고, 그리고 지금은 정치부에서 국회를 출입하고. 인생은 알 수 없는 겁니다. 계획은 완전히 소용이 없어요. 계획을 세운다 한들 지켜지지도 않고요.

그래서 다니엘 핑크는 조언합니다.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닥치는 대로 도전해보고, 실패를 많이 하라고. 멋진 실패를 통해 많이 배우라고.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통해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도 꼰대 같죠? (웃음) 맞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네요. 이 부분에서는요.

진정성을 가지고 끈기 있게 가고자 하는 길을 고민하고 치열하게 그 문을 두드린다면, 그 문은 언젠간 반드시 열릴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두드림에 진정성이 가득했다면, 실패하고 지쳐 나가떨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패배자가 아닐 겁니다. 그 아픔을 통해 한 뼘 더 성숙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말 하면 좀 그럴까요. 우리, 면허도 있는데 한눈 좀 팔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웃음)

마음대로 사시면 좋겠어요. 물론, 마음대로 살자는 조언조차 정답은 아닙니다. 정답이란 없는 거니까요. 여러분이 가시는 그 길이, 그게 정답입니다. 피땀 흘려 공부하고, 피땀 흘려 일하고, 피땀 흘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들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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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현 기자는 ‘한눈팔고 살자’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마저 누군가에게 정답이 될까 노심초사하며 ‘정답은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리자 가장 말이 빨라지고, 많아졌습니다. 자신의 도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열정 넘치고 따뜻한 온기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한세현 기자는 SBS 목동 사옥의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직접 설명까지 해주었습니다.

“방송 장면 하나하나를 만드는 개인편집실은 말하자면 ‘오카자키 프레그먼트(Okazaki fragment)’, 그걸 이어 붙이는 종합편집실은 ‘리보솜(ribosome)’”이라는 설명. 기가 막히는 비유적 표현에 표정에서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저에게,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며 웃어 보였습니다.

한창 공부 중인 수의학도로서 ‘배운 건 무조건 쓸모가 있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쓸모가 유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운 것, 만난 사람들, 경험, 성공과 실패.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다시 씨실과 날실이 되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짜나가는 듯한 모습이 근사해 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자라는 직업이 아주 잘 어울려 보입니다.

열 번째 키워드 ‘journalist’에서 마인드맵을 그리듯 뻗어 나온 키워드는 ‘도전’, ‘배움’, 그리고 ‘진정성’이었습니다.

최지영 기자 0920cj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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