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진료? 설명의무? 수의사도 알아두면 좋을 의료 판례
의료정책연구소, 2019-2020 보건의료분야 주요 판례 분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19-2020년 보건의료분야 주요 판례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3일 밝혔다.
수의사법은 의료법에 비해 내용이 훨씬 적지만, 법조문이나 법원의 해석에 유사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일례로 대법원은 동물의 진료를 ‘수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검안·처방·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로 해석하고 있다. 수의학적 전문지식을 ‘의학적 전문지식’으로만 바꾸면 대법원이 내린 ‘의료행위’의 해석과 동일하다.
수의계에서도 법원이 의료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 관찰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보고서에서 의료정책연구소는 2019년 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이 내린 의료계 주요 판례를 분석했다.
이중 전화 진찰에 의한 불법 처방 문제, 침습적인 의료행위에 앞선 설명의무 등 동물병원과도 연관이 있는 판례도 포함됐다.
전화 상담은 ‘직접 진찰’인가..헌재와 대법원의 엇갈린 해석
특히 의사가 환자를 직접 진찰한 후 처방전을 작성하도록 한 의료법(제17조)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의 해석이 다른 점은 눈길을 끈다.
대법원은 2020년 5월 사전에 한 번도 대면 진찰한 적이 없는 환자와 전화 통화만 한 후 전문의약품을 처방한 의사가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은 의료법이 규정한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이뤄진 경우에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했다면 직접 진찰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현대의학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환자 상태를 토대로 특정 진단이나 처방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지목했다.
전화 통화 만으로 진찰하려면,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해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해 1월에 내린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 만으로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2013년부터 이어진 전화 진료에 대한 판단을 유지한 것이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직접 진찰’이 ‘대면하여 진료를 한’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의료법 제17조의 ‘직접 진찰한’이 명확성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 등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해당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했다.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진도 이 같은 상충을 지적했다. 연구진은 “전화 또는 이와 유사한 정보통신 등 매개체는 진료행위를 위해 사용되는 보충적 수단일 뿐 대면 진찰을 대체할 수 없으며, 동일시될 수도 없다”며 대법 판결이 의료법의 직접 대면원칙을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사법에도 유사한 조항이 있다. 수의사는 자기가 직접 진료하거나 검안하지 아니하고는 진단서, 검안서, 증명서, 처방전을 발급하지 못한다(수의사법 제12조). 수의사처방제의 직접 진료 후 처방 조건도 여기에 걸려 있다.
이와 관련해 법제처는 2016년 해당 조항에 대해 수의사가 동물 자체를 진찰하지 않고 동물의 소유자나 관리자와 상담하는 것은 ‘직접 진료’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법원에서 새 판결이 나오지 않는 한, 동물 진료에서 ‘직접 진료’란 ‘(동물환자와의) 대면’을 의미하는 셈이다.
발생 가능성 낮아도 중대한 후유증 있다면 사전에 설명해야
의사에게는 침습적이거나 나쁜 결과가 발생될 개연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질병의 증상이나 치료법의 내용과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위험, 합병증으로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의 정도나 예방가능성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의무가 있다.
환자가 시술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하여 의료행위를 받을 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의사의 설명의무는 후유증·부작용 등의 위험 발생 가능성이 희소하다는 사정만으로 면제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후유증 발생가능성이 희소하더라도 해당 치료행위에서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일단 발생하면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이라면 설명의무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수의사법 개정안에도 수술 등 중대행위에 대한 사전설명의무 신설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일선 동물병원 수의사는 위험한 진료행위를 실시하기 앞서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자칫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해 수의료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설명의무를 이행했다는 입증 책임이 수의사에게 주어지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반려동물 진료비 소셜커머스 사이트와 유사한 성형쇼핑몰 환자유인행위에 대한 판결 등 다양한 판례가 보고서에 수록됐다(본지 2019년 6월 24일자 ˝병원 진료 연결 소셜커머스,불법이며 의료시장 질서 현저히 해쳐˝ 참고).
보고서 전문은 KMA 의료정책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