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에서는 법수의학인데 한국에서는 수의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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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Forensic Medicine)은 의학적 진단과 부검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인과관계와 진실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드라마 ‘싸인’ 등에서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부검 등을 통해 밝혀내는 법의학자들의 활약이 알려지며 ‘법의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수의학에도 이런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Veterinary Forensic Medicine입니다. 동물학대 범죄의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잔혹해지면서, 수사 전문성 향상을 위해 ‘수의학 분야에도 법의학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옵니다.

정부와 국회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검역본부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반려동물에 대한 수의법의학적 진단체계 기반구축 연구>를 수행했고, 4월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에 반려동물 법의검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검역본부는 내부에 ‘수의법의학센터’를 신설을 추진 중입니다.

검역본부가 제안한 수의법의학센터 도입안
(자료 : 검역본부)

몇 년 전부터 Veterinary Forensic Medicine이 관심을 받으며, 이를 우리나라 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그러는 것처럼 ‘수의법의학(獸醫法醫學)’이라고 해석했는데, 어느 순간 의원 의(醫)가 2번 반복되는 게 이상했습니다. 의학→수의학처럼 법의학→법수의학으로 해석하는 게 맞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보니 ‘영상의학’도 ‘수의영상의학’인데 ‘법의학’도 ‘수의법의학’이라고 해야 맞지 않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수의대에는 이미 ‘수의영상의학’, ‘수의응급의학’, ‘수의진단검사의학’, ‘수의응급중환자의학’ 등 의(醫)가 2번이나 나오는 과목이 많이 존재했습니다. 아마, 수의해부학, 수의병리학, 수의약리학, 수의내과학, 수의외과학, 수의전염병학 등 의학 과목 앞에 ‘수의’를 붙이는 관성이 그대로 적용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곱씹어볼수록 여전히 ‘의’가 2번 반복되는 게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수의영상의학은 영상수의학, 수의응급의학은 응급수의학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한자를 쓰는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나 찾아봤습니다.

일본에는 법수의학 관련 학회가 있습니다. 바로 JVFM(Japanese Association of Veterinary Forensics)입니다. 한자로는 일본법수의학회(日本法獣医学会) 또는 일본법수의학연구회(日本法獣医学硏究会)였습니다.

즉, 일본에서는 Veterinary Forensic Medicine을 수의법의학이 아닌 법수의학으로 부르고 있던 것이죠. 일본에는 심지어 법수의학을 주제로 한 만화도 있는데요, ‘수의법의학’이 아니라 ‘법수의학’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법수의학(수의법의학) 체계가 마련되는 시점입니다. 추후 학문이 발전하고 국제 교류도 진행될 텐데,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게 맞는지 신중한 고민과 내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미 ‘수의응급의학’ 대신 ‘응급수의학’으로 번역된 책도 있고, ‘한국전통수의학회’는 ‘수의전통의학’이 아닌 ‘전통수의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용어 사용의 원칙이 혼재되어 혼란을 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법수의학(수의법의학) 용어 고민을 계기로 기존 수의학 과목들도 한번 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설] 일본에서는 법수의학인데 한국에서는 수의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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