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112] 한국재건에 기여한 ‘구얼레이,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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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112. 구얼레이, 제임스(Gourlay, James A. 1928~). 코넬대학교 수의과대학 졸업, 미 육군 수의장교, 한국 농림부 축산국 경제자문관 파견, 유엔한국재건단, 미국대외원조단 활

1928년 4월 8일 미국 뉴욕주 앨몬트에서 태어났다. 1952년 코넬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55년 미 육군 수의장교로 입소하여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브루크(Brooke) 육군의료센터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육군 육류유제품위생학교(Armed Forces Meat and Dairy Hygiene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한국 농림부 축산국 경제자문관으로 파견되어 한국에서 1년간 일하고 나서 재임명되어 4년간 더 근무하였다. 한국에서의 총 근무 기간이 5년(1955. 11.~1960. 12.)이나 되었다.

UNKRA(유엔한국재건단)는 한국전쟁과 그 직후 한국의 재건을 위해 만들어진 UN 산하 기구인데, 계약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미국 단독으로 지원하는 민간단체인 USOM(미국대외원조단)이 발족되었다(미국 측 기록에는 USOM이 ICA(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국제협력국)로 기록되어 있다). 구얼레이는 USOM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비록 한국 지원 기관의 명칭이 다르긴 했지만, 일의 성격상 그는 로버트 라이징거(Robert C. Reisinger)의 후임자나 다름없었다. 그 예로 UNKRA의 예산으로 안양 가축위생연구소에 도착한 백신 ROVAC 생산용 동결건조기를 미8군에 요청하여 가동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또한, 라이징거가 시작한 가축 방역, 치료용 수의약품 및 기자재 원조 사업을 1954년에 이어 1958년까지 5년 계속사업으로 진행되도록 주선하였다.

라이징거가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의 수의축산 발전을 도우려 한 것처럼 구얼레이도 그랬다. 김영한은 회고록에서 “그는 매사에 신중하고 언행이 겸손했으며 한국 사람을 경시하고 모욕하는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국을 알려고 노력했고 한국 사람의 기질을 이해하면서 도와주려고 노력한 사람”, “그는 나와 의견 차이가 있어도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고집하지 않았고 나의 생각이 자기 생각에 합치될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싱긋 웃으면서 피차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고 다시 의논하자고 제의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고 전하고 있어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코넬대학교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규명(당시 USOM의 기술고문)은 대학과 대학원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동문 사이라서 그와 손발이 더욱 잘 맞았을 것이다.

1962년대 4월 부산 가축위생연구소(본소)가 지소가 있던 안양으로 이전됐는데, 많은 사람들은 군사 정부가 일의 효율성을 위해 농촌진흥청 인근 안양으로 본소를 옮기도록 조치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1959년 9월 17일 태풍 사라가 남부 지방을 강타하여 부산 가축위생연구소가 큰 피해를 입어 국고로는 도저히 복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김영한은 USOM의 구얼레이와 이규명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자 두 사람은 농업 연구 기관을 수원 중심으로 결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USOM의 지원금을 받아냈고, 안양에 가축위생연구소 본관을 신축하여 이전하게 하였다.* 이는 태풍 사라 피해 복구 사업으로 USOM

이 농촌진흥청에 지원한 유일한 지원금이었다. 지금은 이전하여 없어졌지만, 과거 마장동에는 도축장이 있었다. 그런데 이 도축장을 건설할 때 서울시의 힘만으로 할 수 없어 USOM의 지원으로 마무리하였다. 건축비는 서울시가 부담하고, 내부 시설과 돼지 해체 시설은 USOM이 지원하고, 운영은 민영화하기로 약속해서 성풍산업㈜이 맡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도축장 냉장 시설을 갖춤으로써 축산물의 유통 기간을 연장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국력이 성장한 지금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원조 기관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하였다.

1961년 4월부터의 캄보디아 근무를 마치고 1962년 미국으로 돌아가 아이오와주 에임스에 새로 설립된 국립동물질병센터에서 일하였다. 1970년대 중반에는 개인 회사로 옮겨 바이러스 및 백신과 관련된 일을 하였다.

2010년 8월 1일부터 10일까지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참전용사의 일원”으로 우리나라를 다녀갔는데, “한국이 너무 발전하여 무척이나 놀랐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라고 이메일을 통해 소감을 밝혔다.** 글쓴이_양일석

*김영한 회고록에는 당시 가축위생연구소 소장이라 기술되어 있으나 구얼레이의 한국 근무가 1960년 12월 31일에 종료되었으므로 축산국장이었음이 분명하다. 현판(부록의 현판 사진 참고)은 1960년으로 되어 있으나 이때는 예산이 확보되어 기공식만 진행되었고, 준공 후 안양으로 이전한 시기는 1962년 4월 1일이다.

** 구얼레이는 2016년 9월 현재 미국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 작고한 분만 게재한다는 기획 방침에 어긋나지만, 외국인이고 우리나라에는 성(last name)마저 “고리(Goorley)”로 잘못 알려져 있어서 게재하기로 하였다.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 한국수의인물사전 인물 보기(클릭)

[한국수의인물사전 112] 한국재건에 기여한 ‘구얼레이,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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