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 지난 주사제 사용한 수의사, 약사법 최종 무죄..이유는?
대법원, 동물병원 원장 A씨에 최종 무죄 선고
유효기간이 지난 동물용의약품 주사제를 보관하고 있다가, 동물에게 주사한 동물병원 원장 A씨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법원 제1부는 2월 8일(금)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경기도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A씨는 지난 2021년 10월 12일 유효기간(2021년 4월 22일까지)이 6개월가량 지난 동물약품 ‘킹벨린’을 동물병원 내 조제 공간에 저장·진열했고, 10월 6일에는 진료목적으로 동물에 주사한 뒤 주사비 6천 원을 받았다. 킹벨린은 삼양애니팜의 복합강력지사제 주사약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약제를 사용하는 행위는 수의사법 시행령이 금지하고 있는 과잉진료행위 중 하나다. 유효기간이 지난 약제를 사용하면 면허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받는다.
약사법에도 관련 조항이 있다. 약사법은 유효기간 경과 의약품의 진열·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업무정지 행정처분은 물론, 3백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이처럼 ‘유효기간이 지난 약제 사용’은 수의사법이 금지하고 있고, ‘유효기간이 경과한 의약품의 진열·판매’는 약사법이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부는 왜 A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당초 A원장은 2022년 8월, 1심에서 약사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벌금 50만 원 형의 선고유예).
1심 재판부는 “유효기간 만료일로부터 5개월 이상 지난 주사제를 보관하고 있던 것을 볼 때 A씨가 이미 해당 약제의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장·진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유효기간 경과 의약품의 진열·판매를 금지한 ‘약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수의사가 진료하는 과정에서 주사제를 직접 투약하고 비용을 받은 행위’도 동물 보호자에게 의약품을 ‘판매’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A씨 측은 이에 대해 “고의가 없었고(유효기간이 지난 줄 몰랐고), 공소사실이 약사법 위반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수원지방법원)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수의사가 동물에게 주사하는 행위를 약사법이 규율하는 의약품 ‘판매’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해석 범위를 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즉, A원장의 주사 행위는 의약품 ‘판매’ 행위가 아니라 ‘진료행위’였기 때문에 약사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원심(2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이를 무죄로 판단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약사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상고를 기각하기로 한다”고 무죄를 확정했다.
A씨가 비록 실수로 유효기한이 지난 주사제를 약제실에 놓고 동물에게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행위를 약사법에 명시된 ‘판매를 목적으로 유효기간이 경과한 의약품을 저장 또는 진열한 행위’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에게 판매 목적이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판례에 대해 ‘유효기간이 지난 약을 사용한 행위’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의약품 판매 행위와 별개로 동물용의약품을 활용한 수의사의 고유한 진료행위를 법원이 인정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약사법상 의약품의 ‘진열·판매’ 행위와 수의사법상 수의사의 ‘진료행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1심과 2~3심의 판단이 갈렸다”며 “1심 재판부는 수의사의 주사행위를 전문가의 고유한 진료행위로 보지 않고,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의 하나로 판단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별개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효기간이 지난 약을 보관하고 있던 것은 잘못이지만, 1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도 항소하여 수의사의 진료행위가 약사법상 ‘의약품 판매 행위’와 다르다는 점을 입증해 낸 것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