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의 활동영역에서는 언제나 법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수의임상이 보다 전문화·고도화됨에 따라 동물병원에서의 분쟁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의사 출신 변호사로서 의료소송 전문 법무법인에 근무하며 수의계에 법적 조언을 전하고 있는 이형찬 변호사를 데일리벳이 만났습니다.
Q. 수의사 출신 변호사라는 이력이 특이하다. 수의과대학에 입학했는데 어떻게 변호사의 길을 택하게 됐나
학창시절에는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성과를 지켜보면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기초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가 논란이 되면서 수의대 학생으로서의 목표를 잃고 방황하게 됐다.
당시 황우석 이슈를 지켜보며 ‘과학자도 사회와 소통하며 연구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 전까지는 평범한 이과생이었지만 사회에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과생이 자신의 전공을 살려 사회와 소통하는 직업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변리사 쪽을 생각했다. 특허 분야를 담당하면서 최신기술을 사회에 설명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로스쿨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로스쿨에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면 변리사도 할 수 있으니 로스쿨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로스쿨에 진학하게 됐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Q. 수의사라는 이력이 변호사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나름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현재 근무 중인 법무법인 고도가 의료 관련 소송을 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소송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장점이다. 이를 기반으로 판사에게 의사의 과실을 설명하기가 더 수월하다.
대부분 법학을 전공했던 다른 변호사들이 어려운 의학용어를 해석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과는 다른 점이다.
수의사이기 때문에 생긴 단점은 아직 딱히 느낀 적은 없다. 굳이 꼽자면 의뢰인들이 수의학과 형사소송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 하지만 소송 진행과정에서 변호사의 과정을 밝히는 경우도 거의 없고 중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특별히 현재까지는 문제된 적은 없다.
Q. 수의계나 동물병원 소송과 관련해 칼럼도 쓰고 강의도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수의사 분들이 일반 변호사보다 더 선호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의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의뢰인 수의사분들께서 편안함을 느끼시는 것 같다. 변호사도 결국 의뢰인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점에서는 제가 강점을 가진 듯 하다.
Q. 의료소송은 많이 들어봤는데, 수의료소송은 아직 일반인에게 생소한 것 같다. 수의료소송도 늘어나는 추세인가
의료소송은 연간 1천건 이상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의료파생사건인 산업재해나 유공자 소송도 상당히 많다. 반면 수의료 소송은 아직 통계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인 것 같다.
하지만 꼭 수의료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물병원에서의 분쟁상황이 늘어나는 것은 확실하다.
서울시수의사회나 여러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수의료 분쟁에 대한 상담전화를 종종 받게 되는데, 생각보다 케이스가 너무 많아 놀랐다.
Q. 수의사와 관련하여 어떤 소송이 가장 많나
현재로서는 수의료소송 자체가 발생한다고 보기 보다는, 수의료분쟁이 발생하고 불만을 가진 반려동물 보호자께서 인터넷에 글을 작성하시는 경우가 많다. 그 글에는 동물병원이나 수의사에 대한 명예훼손적인 내용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동물병원 입장에서는 그러한 글 하나로 인하여 병원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나. 그래서 이러한 분쟁이 고소고발 사건으로 종종 이어지는 것 같다.
의사법 관련 이슈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진단서를 발급하는 행위나,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수의 테크니션 문제도 있습니다.
Q. 수의사들은 아무래도 법률 관련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분쟁이 발생하면 당황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어떤 점에 특히 주의해야 하는지 조언해주신다면?
사실 많은 수의사 분들이 보호자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안타까웠다.
대부분의 수의사 분들은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얼마나 그런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시지만 막상 분쟁이 발생하면 ‘내 병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줄 몰랐다’고 하신다. 심지어는 보호자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뺨을 맞는 수의사들도 있었다.
분쟁이 발생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해당 사안에서 수의사에게 과실이 있는지를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이다.
만약 의료과실이 너무나 확실하다면 보호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합의를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 때 ‘해당 사안에서 추가적인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합의서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의료과실 여부가 확실치 않다거나, 의료과실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자세는 수의권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현재까지는 불만을 가진 보호자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고 하면 그 후폭풍이 두려워 수의사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저자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반려동물 보호자들도 의식 수준이 많이 향상되어 일방적인 악성 글만을 보고 병원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수의사의 무조건적인 저자세는 수의사 전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또 후폭풍이 두려워 내키지 않는 과실인정과 합의금 지급에 동의한 경우, 이후 수의사로서의 자존감이 황폐화됐다고 말씀하시는 수의사분들도 굉장히 많았다.
Q. 사실 소송이 생기기 전에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어떤 부분들에 신경 쓰면 좋을지
수의사는 전문가로서 수의학적 지식에 입각하여 진료를 하고 그 진료에 대한 대가를 보호자로부터 받는다. 그렇다면 평소에 수의사들이 진료를 함에 있어 가지는 ‘법적 의무’들에 대하여는 숙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인터뷰에서 다 설명하기에는 어렵고 방대한 내용이라 현재 연재하고 있는 데일리벳 칼럼(이형찬 변호사의 법률칼럼 시리즈 보러가기)을 참조해달라.
그 중에서도 한 가지만 강조하자면, 좀 전에 단호한 대처에 대하여 설명드렸는데, 단호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의사가 떳떳해야 한다.
수의사가 진료과정에서 수의사법을 위반하거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등 법 위반행위를 하면 단호한 대처는 애초에 불가능해진다. 일단 분쟁이 발생했을 때 보호자가 가장 먼저 살펴보는 부분이 ‘수의사가 어떤 법을 어기지 않았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Q. 수의사 출신 변호사로서 가지고 있는 목표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먼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목표보다 3년이나 5년 후 정도의 단기적인 목표를 많이 세우는 편이다.
현재로서는 수의학이나 의료소송, 식품, 축산 등의 분야의 전문 변호사로서 성장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다. 이후에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 입안이나 집행에 전문가로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도 있다.
Q. 마지막으로 수의사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사실 동물병원의 분쟁이나 기타 법적 갈등이 발생했다면서 연락을 주실 때는 그 상황이 이미 ‘갈 데까지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분쟁 초기부터 변호사와 상담하면서 대응했다면 많은 문제를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수의학 측면에서 봐도 일찍 내원했다면 간단한 치료로 나을 수 있는 병을 굳이 키워서 치료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이러한 부분을 참고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