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 임동주 수의사
3장. 점점 중요해지는 동물복지
2012년 한국은 유럽연합(EU)과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연합 측에서는 한국에 동물 복지가 보장돼야만 시장을 개방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왜 EU측에서 이런 협상 조건을 제기한 것일까? 1985년 발견되어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광우병은 오직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사료를 먹이는 등 경제적인 이유로 빨리 키워 출하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유럽의 소비자들은 안전한 축산물을 먹으려면 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데 비로소 공감했다. 수입하는 축산물에 대해서도 값싼 것이 아닌, 친환경에서 생산된 안전한 먹을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동물 복지를 바탕으로 한, 친환경 목장에서 키운 축산물을 생산하는 나라와 FTA를 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2012년 3월 20일부터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서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기준 세부실시요령’을 최종 확정해서 공포한 바 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는 2012년에는 산란계(産卵鷄)를 시작으로 매년 지속적으로 돼지, 소 등 다른 동물로 확대해가고 있다. 유럽연합과의 FTA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동물이 건강하지 않으면 사람도 건강할 수 없다는 인식을 우리 정부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수의학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정부에 동물 복지를 향상시킬 것을 정부에 건의해 왔다. 동물 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는 그러한 노력을 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법에 따라 동물 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을 받으려면, 여러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양계장의 경우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이와 같은 기준을 만든 것은, 동물도 편안하게 살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다. 닭이 날개도 펴고, 스트레스 없이 생활할 공간 확보는 매우 중요하다. 대규모 양계장에서는 닭을 밀집해서 키우는 탓에 스트레스를 받은 닭들이 서로를 쪼는 일이 벌어진다. 소위 카니발리즘이 그것이다. 양계장 일꾼들은 서로 쪼지 못하도록 심지어 닭의 부리를 잘라버리기도 한다. 닭을 마치 붕어빵 찍듯이 생산성만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닭 역시 살아 있는 생명체인 만큼,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급적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편하게 살도록 배려해 주어야만 한다.
닭이 편히 쉴 수 있는 홰 같은 시설이나, 모래목욕 등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닭장 바닥의 모래 깊이도 배려해야 하며, 조명도 닭이 하루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공기의 질도 점검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관리자는 동물의 숫자나 발육 현황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만 한다.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고, 빠른 성장을 위해 사료도 억지로 많이 먹이는 ‘강제급여’ 없이 적당히 섭취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먹이 그릇의 크기까지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깨끗한 물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수질 검사도 종종 시행해야 한다.
이러한 인증제도를 마련한 것은 동물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가 광우병에 걸리는 이유는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골분(肉骨粉) 같은 동물성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급여한 것은 이른 시일 안에 몸무게를 늘려 비싸게 팔기 위함이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닭이나 돼지의 경우 빠른 성장을 위해 사료에 항생제를 마구 넣어 먹이기도 했다. 항생제를 사료에 첨가하면 질병의 발병률이 떨어져 가축의 성장 속도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생제가 들어 있는 육류를 인간이 먹을 경우, 인간도 각종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슈퍼박테리아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슈퍼박테리아는 인류가 사람 병원이나 농장에서 항생제를 오·남용한 결과, 어떠한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골치 아픈 강력한 세균이 출현한 것을 말한다. 한국을 포함 미국 등 선진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가축의 고기에 들어 있는 항생제가 인간의 건강에 위협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사료에 항생제 첨가와 사용을 크게 제한시켰다.
산업동물의 경우 오직 수익성만을 우선하여, 동물을 밀집시켜 놓고 성장이 빠른 항생제가 첨가된 사료나 마구 먹이고 운동도 못 하게 가두어서 키우는 것이 대세였다. 몸무게만 늘리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키운 소, 닭, 돼지 등은 건강상 바람직하지 못하다. 건강하지 못한 가축은 집단적으로 전염병에 걸리기 쉬우며, 병든 가축의 고기를 먹는 인간 역시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대량 생산된 가축들은 기계로 잔혹하게 도살된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죽게 되면, 몸에서 갑자기 나쁜 물질이 분비되어 나오기 때문에, 고기의 질도 자연히 떨어지게 된다.
인간은 산업동물을 대규모로 키우기 시작하면서, 지금껏 동물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해 왔다. 동물도 엄연히 존엄한 생명을 갖고 태어난 존재다. 수많은 동물이 우리 인간을 위해 희생된다. 인간이 그들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하기 위해서는 동물들도 편안한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되도록 느끼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동물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는 인간의 행동 자체는 비난할 소지만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생을 유지하기 위해서 육식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을 수는 있다. 동물을 죽이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동물을 배려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것은 도리어 옛사람들에게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유목민이 세운 몽골제국에는 1206년 칭기즈칸 시기 최고회의인 코릴타의 승인을 거쳐 정했다는 대샤자크라는 법령이 있다. 대샤자크 36조 가운데 제8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짐승을 잡을 때에는 먼저 사지를 묶고 배를 가르며 짐승이 고통스럽지 않게 죽도록 심장을 단단히 죄어야 한다. 이슬람교도처럼 짐승을 함부로 도살하는 자는 그같이 도살당할 것이다.”
실제로 몽골 사람들은 양을 잡을 때, 칼로 명치 윗부분을 조금 자르고는 그 작은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맥만 짚어서 양을 죽인다. 그것이 양을 가장 편안하고 고통 없이 죽이는 방법이라고 한다. 몽골인들은 1분이 채 걸리지 않고 양을 죽인다. 이때 양은 ‘메에’ 하는 소리 한 번 지르지 않는다. 수천 년의 역사를 동물과 함께 살아온 그들은 지금도 동물을 죽일 때에 자신이 갖출 수 있는 예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동반자임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1206년 당시 칭기즈칸은 쉽게 정복되지 않았던 이슬람 제국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해, 그들을 폄훼하기 위해 악의로 과장해서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무슬림은 동물을 죽일 때 단칼에 목을 내리쳐 순간적으로 죽이는데 보는 이에 따라 경건하게 혹은 잔인하게 보일수도 있다. 무슬림은 할랄이라는 신성한 의식을 치른 고기만을 먹는다. 그들도 신이 창조한 동물들을 함부로 죽인다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몽골인들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서 곰을 숭배하며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에벤키(Evenki)족 사람들이나 한티(Khanty)족은 곰을 사냥할 때 역시 동물을 몹시도 존중함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살생 외에는 어떤 짐승이든 생명을 존중한다. 그들은 사냥할 때에는 곰이 듣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곰에게 존칭어를 사용하며 은유나 비유를 써서 속삭이듯 대화를 한다. 또한 곰이 죽은 것이 확인되면, “난 너를 안 죽였다. 까마귀가 너를 죽였다.”라고 말하면서 죽인 것 자체에 대해 자랑하거나 하지 않고, 곰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곰이 사람에게 원한을 갖지 말고 편안하게 저승으로 갈 것을 기원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스스로를 높은 문명을 이룬 문명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도리어 과거의 야만인이라 불렸던 사람들보다 더 야만적이다. 다른 생명체를 존중해주면서, 지구상에서 함께 공존할 방법을 찾는 방법을 그들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의 전면 실시뿐만 아니라, 잔인한 도축 문제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최근 들어 바다에서 고래와 상어, 다랑어 등 거대한 물고기를 잡게 되면, 그들의 내장 속에서 인간이 버린 비닐을 비롯한 쓰레기들이 발견되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새들이나 야생동물들도 인간이 버린 오염된 쓰레기를 먹고 기형적인 모습이 되기도 한다. 2006년 개봉되어 1,100만 관객을 모은 ‘괴물’ 영화는 인간이 버린 방사선 물질로 물고기가 괴물이 되어 한강변에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린다는 줄거리를 가진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경고한 영화였다. 동물의 건강이 나빠지면, 그것은 곧 인류에게도 재앙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현대 문명은 겉으로는 동물을 인간세계로부터 배척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동물에게 많은 것을 의지한 채로 발전해 왔다. 동물과 공존하기보다는 그들의 생활환경을 파괴하고, 동물을 착취하고 학대해 왔고, 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며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매우 이기적인 문명으로 발전해 왔다. 인간이 진정 아름다운 문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또 지속가능한 문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동물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동물을 죽일 능력이 인간에게 있듯이, 동물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그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만물의 영장 인간만이 가진 위대한 학문인 수의학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하겠다.
임동주 수의사의 ‘인류 역사를 바꾼 수의학’ 연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