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임상수의사로부터 “수의사는 펫보험에 가입이 안 된다. 직업 입력에 수의사를 선택하면 가입이 어렵다는 메시지가 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순간 ‘수의사도 반려동물 보호자로서 펫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도덕적 해이를 우려해서 거절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요 펫보험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실제로 확인을 해봤습니다. 확인 결과, 펫보험사 중 보호자의 직업을 적도록 한 펫보험사들의 경우 수의사(또는 수의사보조원(동물병원종사자)을 선택하면 펫보험 가입을 받지 않았습니다.
“보험에 가입하려는 반려견 소유주가 수의사, 수의사보조원으로 종사하시나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면 “가입이 불가능하다”라는 메시지가 뜨거나, 보호자 직업 정보를 ‘수의사’ 또는 ‘동물병원 종사원(수의사 제외)’으로 설정하면, “알려주신 내용으로는 가입 진행이 어렵다”는 문구가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에 직접 문의를 해봤습니다. 역시 도덕적 해이 발생 우려 때문에 가입을 제한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우선 동물병원 수의사의 경우 직접 동물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그리고 그 비용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펫보험에 가입할 필요성이 적다고 합니다. 게다가, 직접 진료·치료를 했다고 한 뒤 보험을 반복적으로 청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 번 상상을 해봤습니다. 동물병원 수의사가 자신의 동물을 직접 치료하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모습을 말이죠. 뭔가 이상하긴 했습니다. 보험이라는 게 보험회사, 가입자(및 피보험자), 의료기관 3자 사이에서 서비스가 이뤄지는 건데, 수의사가 펫보험에 보호자로서 가입한 뒤 보험금을 청구하는 건, 피보험자와 의료기관이 같다는 것이니까요.
의료기록을 작성한 수의사와 보험금을 청구한 보호자가 동일 인물이므로, 도덕적 해이와 보험사기가 발생했을 때, 이를 증명하기도 어려울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겼습니다.
직업이 수의사이긴 하지만, 동물병원에 종사하고 있지 않은 수의사라면, 반려동물 보호자로서 가입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동물병원을 통한 도덕적 해이를 할 수 없는데(친구, 선후배 수의사를 통한 도덕적 해이 가능성은 물론 있겠지만요), 수의사 면허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려동물 보호자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제한받으면 안 될 테니까요.
펫보험사 관계자는 시스템의 한계를 언급했습니다. 수의사 직업을 세분화하여 동물병원 임상수의사인지 아닌지까지 구분하는 시스템이 없어서 ‘수의사’ 직업 전체의 펫보험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입자 직업을 고르는 시스템은 펫보험뿐만 아니라 해당 회사의 다른 보험 가입 때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의사도 실손보험 가입이 제한될까요? 세부적인 내용을 전부 다 찾기는 어려웠지만, 가입이 가능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만, 사람 보험의 경우 감시하는 기관이 많고, 보험사기에 대한 처벌도 강력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보험사기에 연루된 의료인을 가중처벌하는 법까지 발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사례를 취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일부의 사례지만) 수의사와 펫보험사 사이에 갈등과 불신이 꽤 깊다는 점이었습니다.
펫보험 시장은 몇 년 사이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보장범위, 보험사기, 진료부 제공 관련 논란, 동물진료 표준화 등 각종 이슈와 잡음이 계속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펫보험이 잘 정착된다면 반려동물 보호자의 부담이 줄어들어 자연스레 동물병원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다만, 펫보험 시장이 정착되기까지 갈 길은 아직 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