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쓰는 약, 국내에선 미허가..규제 완화로 동물치료 무기 늘려야
시장규모 작아 도입 소극적..인허가 허들 낮출 제도 개편 추진
MBN은 20일 미허가 동물용의약품이 동물병원에서 불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정부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도는 항암제인 팔라디아(toceranib), 스텔폰타(tigilanol tiglate)와 관절염 치료제 소렌시아(frunevetmab) 등 국내 미허가 동물용의약품을 거론하며, 일부 동물병원이 이들 제제의 입고를 광고한다고 꼬집었다.
해외에서는 승인됐지만 국내에선 허가 받지 못한 약물도 수요는 있다. 임상수의학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처방이라면 무조건 제한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미허가 약물을 불법적으로 2차 유통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허가 약물이 정식 허가를 받아 수의사들의 무기를 늘리기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요구된다. 인허가 허들 대비 낮은 기대 시장규모가 업체의 정식 수입을 막는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항암제 등 중대한 동물 치료제를 신속히 도입할 수 있도록 희귀약품 관련 규정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국내 허가약 만으로는 치료에 큰 불편”
반려동물에 사용하는 동물용의약품 신약은 대부분 해외에서 개발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허가를 받아 사용된 이후에도 국내에 들어오는데 수 년의 시차가 있다.
아예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미국 FDA가 2009년 허가한 개 항암제 팔라디아가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동물병원 개원가에서는 해외에서 승인됐지만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은 약물을 사용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아포퀠이나 사이토포인트 등 비교적 최근 출시된 신약도 국내 품목허가 전까지는 그러한 시기를 거쳤다.
일선 임상수의사 A원장은 “이미 국내에 노령동물이 많아지면서 중증·희귀질환이 늘어났고, 신약에 대한 정보는 보호자들까지 파악하고 있다”면서 “해외에서 검증된 약을 무조건 쓰지 말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반려동물을 치료하기 위해 해외 약을 구해서라도 노력하는 수의사와 보호자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항암제 등 일부 영역에서는 허가된 약물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B임상수의사는 “항암제는 특히 국내에 허가된 약이 많지 않아 치료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신약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 그나마 있던 약도 생산·판매가 중단되곤 한다”면서 “환자를 살리는데 꼭 필요한 약인데, 구할 수 있는 루트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현행 수의사법은 임상수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진료행위를 한 경우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외에서 이미 허가를 받아 쓰이고 있고 과학적 근거도 충분한 경우라면 문제되지 않겠지만, 아직 연구단계에만 머무르고 있는 화합물이나 신약후보물질을 쓰는 경우는 다를 수 있다.
A원장은 “해외에서도 허가를 받지 않고, 논문 몇 건 있는 수준인 물질을 쓰는 것은 치료가 아닌 실험”이라며 “이러한 물질을 신약인양 홍보하고, 돈 받고 처방·판매하는 것은 수의사 윤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미허가 동물용의약품 사용에 대한 처벌 규정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인허가 허들 대비 시장성 낮아
政, 임상시험 면제할 희귀약 범위 구체화 계획
해외에서 이미 승인된 약이 국내에서 미허가로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다.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통과하는데 투자가 필요한 반면, 업체가 기대할 수 있는 시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 임상수의사 모두 이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래도 심장사상충예방약이나 피부질환 치료제 등 상대적으로 기대시장규모가 큰 신약은 시간차가 있더라도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항암제 등 타겟 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치료제의 국내 허가는 요원하다.
동물용의약품 업계 관계자 C씨는 “반려동물용 약품이 농장동물용에 비해 시장규모가 훨씬 작은데, 인허가 준비는 더 까다롭다. 임상시험에 여러 동물병원과 보호자가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임상시험 등의 허가절차 부담이 기대 수익보다 크지 않다는 점을 거론했다.
제제에 따라 해외에서 승인된 약물은 해외 임상시험 자료로 갈음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사전에 여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보니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D씨는 “해외에서 출시된 약을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지 문의도 자주 들어오지만, 정식으로 허가 받기 위해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 5월에 열린 제3차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포럼과 6월 동물의료산업발전협의회에서는 동물약 국내 출시 확대를 위해 인허가 규제 완화와 검역본부 당국의 조직확대 필요성을 지목했다.
난치질환 치료제는 완화된 절차로 조건부 승인을 내어주고, 이후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하는 ‘orphan drug’ 제도 도입도 제언됐다.
이날 농식품부는 “항암제 등 중대한 동물 질환 치료제를 국내에 신속히 도입할 수 있는 허가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행 검역본부 ‘동물용의약품등 안전성·유효성 심사에 관한 규정’ 고시에도 희귀 동물용의약품(희귀약)에 국내 임상시험 자료 등을 면제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두고 있는데, 어떤 약을 희귀약으로 보고 허가조건을 완화할 지 범위를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B수의사는 “(국내 미허가) 해외 승인약을 구할 수 없게 되면 더 곤란하다”면서 “해외에서 승인된 동물용의약품에 한해서라도 필요에 따라 절차를 완화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이후 미허가 약품 수입 신청 123건 불과
동물병원이 국내 미허가 동물용의약품을 진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검역본부로부터 수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한수의사회의 추천서를 함께 첨부해 신청해야 한다.
승인을 받으려면 반드시 동물 생명과 직결되는 긴급 약품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의학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2차적인 불법유통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량 신청도 반려 사유로 꼽힌다.
이날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 이후 대한수의사회가 미허가 약품 수입을 위해 발급한 추천서는 123건이다. 국내 개원가에서 쓰이는 미허가 약품을 모두 커버했다고 보기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A원장은 “(미허가 약물이) 동물병원 사이에서 음성적으로 유통하거나, 사용 여부를 블로그나 SNS에 광고하며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도 “개별 수의사들이 치료목적에 한해 합법적으로 해외 약을 구할 수 있는 절차가 보다 간편해지면 좋겠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