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가 된 뒤 국내 동물용의약품 제조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진단시약 기업 SD(에스디)와 동물용 진단시약 기업 바이오노트(Bionote)를 창업해 단기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후배 수의사들에게 큰 귀감을 준 조영식 회장(서울대 수의대 80학번)님께서 대한수의학회 CEO 포럼에서 강의했습니다.
10월 29~30일 ‘The-K 호텔 경주’에서 개최된 ‘2015대한수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는 수의사로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업계 대표들을 모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CEO 포럼’이 특별히 진행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조영식 회장은 자신의 창업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후배 수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 등 30분간 강연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조영식 회장님의 강의를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Q. 어떻게 수의사가 됐나? 어릴 때부터 꿈이 수의사였나?
원래 꿈이 대동물 수의사였다. 대동물 수의사가 되기 위해서 수의과대학에 진학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대동물 임상의 꿈을 포기하게 됐고 녹십자수의약품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Q. 바이오노트, 에스디바이오센서 모두 진단시약 전문 기업이다. 진단시약에 대한 우수한 전문 기술 덕분에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언제부터 진단시약에 관심을 가졌나?
녹십자수의약품에서 인터페론을 연구하는 부서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내부 사정으로 3개월 만에 그 부서가 없어졌다. 그런데 마침 그 당시 녹십자가 미국에서 ELISA 키트 기술을 이전 해오는 일이 있었는데, 일 할 사람이 부족해서 그 일을 맡아 일을 돕게됐다.
내 의지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단시약 연구를 보조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전공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녹십자에 있으면서 많은 진단시약을 만들었고, 총 책임자까지 했다. 12년간 연구·생산 분야에 근무했고, 마지막 1년은 마케팅 총괄을 담당했다.
Q. 회사 생활을 오래하다가 창업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창업을 결심했나?
녹십자수의약품을 나와 바이로메드에서 1년간 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유전자치료와 진단시약 관련 일을 했었다. 근무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서점에 가서 책을 읽게 됐다. 1998년 12월이었는데, 그 그 책이 ’30대에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라는 일본 책이었다. 그 책을 보고 많은 걸 느꼈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스스로 해보자’ 하는 결심으로 1999년에 에스디를 창업하게 됐다.
진단시약 분야에 13년간 근무했었기 때문에 크게 성공한다는 생각보다는 ‘적어도 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Q. 회사가 빠르게 성장했다.
에스디를 시작할 때, 내가 수의사이기 때문에 동물용 시약을 만들면 틈새시장에서 수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동물용 진단시약 시장에 진입하기가 어려워 고생을 많이 했다. 어려움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과거 회사에 있을 때 개발하지 못해서 수입했던 원료를 직접 개발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모델을 바꿨다.
1999년도만 하더라도 돈이 별로 없어서 7천만 원의 자금과 직원 1명으로 사업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당시 벤처붐이 불어서 2000년에 지분을 어느 정도 주고 20억 원을 투자 받아 회사를 키우게 됐다.
그렇게 에스디를 창업 4년 만에 상장시키는데 성공했다. 2003년도에는 ‘바이오노트’라는 동물용 진단시약 전문회사를 별도로 창업했다. 그렇게 에스디와 바이오노트 2개 회사를 운영했다.
Q. 2010년에 다국적기업 엘리어(alere)에 회사를 매각했었는데.
에스디 매출이 1억불 이상 되다보니 다국적기업에서 회사를 매각하라고 요구해왔다. 거절한 적도 있지만 시장에서 적대적 M&A시도도 있고 해서 2010년에 에스디와 바이오노트를 미국회사 엘리어(alere)에 매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깝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한 매각 당시에는 아시아 지역 7개 공장과 연구소 등 전체 영업 회장을 겸하는 자리를 맡았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에서 큰 경영을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2년간 일해보니 언어 등 힘든 부분이 많았고, 해외 출장도 1년에 300일 이상 다니는 등 힘든 점이 많았다. 그래서 힘들어서 그만뒀다.
Q. 현재 에스디바이오센서와 바이오노트 등 2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회사 매각 당시 에스디와 엘리어의 바이오센서 R&D 부분을 독립시켜 설립한 회사이고, 바이오노트는 2003년 설립한 동물용 진단시약 전문회사다.
엘리어가 회사를 운영하다가 인체에만 집중한다는 판단에 바이오노트를 다시 시장에 내놨고, 내가 회사를 다시 인수한 것이다. 현재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연 매출 400억 원, 바이오노트는 연 매출 2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두 회사를 2~3년 안에 상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올해 지노믹스 회사를 자본금 80억 원을 투자해 설립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개량된 기술을 가지고 신속 진단시장에 들어가기 위해 5년간 착실하게 준비했다. 내년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해가 될 것이다. 다음 달 독일에서 대대적으로 쇼를 할 계획이다. 인도에도 공장을 세우고 있으며, 중국에도 판매사무소가 있다.
모바일헬스케어 제품에도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여러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만성질환 관리, 질병 조기진단 등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장비를 개발·생산하고 있다. 이런 분야는 ‘의료비 절감’이라는 대전제와 맞아 떨어지면서 각 나라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분야다.
점점 검사법 자체가 단순화되고 있고, 한 장비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할 수 있는 장비를 선호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수치를 소량의 검체로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제품도 많이 개발하고 있다.
바이오노트의 경우, 개·고양이·조류·돼지·소 등 다양한 축종에 대한 동물 진단시약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동물용진단시장은 그동안 현장검사 위주였는데, 앞으로는 다양한 장비를 통한 정밀검사 쪽으로 갈 수 있도록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향후 몇 년 안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진단시약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Q. 나드리화장품을 인수해 운영한 적도 있었다.
2012년 말에 나드리화장품을 인수했었다. 외도 아닌 외도를 했는데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사업은 내가 하면 분야와 상관없이 다 잘 될 거다’라는 착각을 갖고 있었다. 화장품 사업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분야에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Q. 사업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칙이 있나?
모든 기업이든 어떤 연구든 선순환 구조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에스디를 창업했을 때 핵심 콘테츠 개발에 3년을 집중했다. 그 당시 WHO에서 에이즈(AIDS) 진단제품 인증을 시행했는데, 우리 회사를 포함하여 단 2개 회사만 인증을 받았고, 그것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제품 하나가 WHO인증을 받으니 우리 회사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우리 회사의 말라리아, 뎅기열 진단 등 다른 제품들도 WHO인증을 받은 것처럼 관심이 높아졌다. 핵심 제품에 집중해서 WHO 인증을 받았더니 모든 것이 좋아진 것이다. 즉, 하나의 테마만 가지고도 국제적으로 선도하면 전체 회사에 도움이 된다.
나는 또한 ‘남들보다 한 발 빠르게 시장에 진입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최근 에볼라 진단시약과 메르스 진단시약을 전 세계 최초로 개발해서 수출하고 있는데, 이것이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해놓은 것을 따라하는 것 보다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는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의 핵심기술은 바이오콘텐츠에 있는데, 그런 기술은 이미 많은 회사·연구소가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적으로 어떻게 차별 점을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남들보다 시장에 한 발 더 앞서 진출해야 한다.
핵심역량에 집중해서 남들보다 차별화하고, 내부조직을 잘 갖춰서 작은 조직으로도 큰 다국적기업과 경쟁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Q. 최근 젊은 수의사들의 진로가 ‘소동물 임상’으로 쏠리는 현상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또한 수의과대학에서도 ‘수의학을 활용한 창업’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다. 선배 수의사 CEO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수의사이기 때문에 현재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동물 수의사가 꿈꿔서 수의대에 갔지만 최종적으로는 기업에 가서 경험을 쌓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진로는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후배 수의사들도 ‘남들이 다 한다고 그 분야로 진출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기를 바란다.
현재 수의과대학 교과 과정이 임상위주로 가고 있는데, 어느 정도 레벨에서 임상·비임상을 구별하여 커리큘럼을 다양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그리고 혹시 바이오 분야에서 창업을 생각하는 수의사가 있다면 최소 5년은 회사에서 경험을 쌓길 바란다. 창업을 하려면 기술보다는 시장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5년 정도는 경험하고 창업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바이오 쪽은 특히 기술을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와 제품을 낼 수 있다. 따라서 성급한 1인 창업보다는 경험을 쌓고 다양한 분들과 시너지 하는 방법도 고려하는 등 신중하게 접근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