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호랑이는 여전히 콘크리트 단칸방에서 삽니다`
동물원수족관법 허가제로 강화해야..국회토론회 개최
동물원과 수족관의 동물복지,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환경부,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15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형식에 그친 등록제..허가제로 강화해야
이날 발제에 나선 이형주 어웨어 대표(사진)는 “2013년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콘크리트 단칸방에 가둬진 호랑이를 만났다”며 “이후 동물원수족관법이 제정됐지만, 몇 달 전 다시 만난 호랑이의 사정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현행 동물원수족관법이 동물원의 사육환경, 안전관리 수준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형식적인 등록제를 꼽았다.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지자체에 등록해 영업할 수 있다 보니 열악한 사육환경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지적이다.
땅 파는 습성이 있는 동물을 새장에 기르거나, 은신처가 제공되지 않거나, 수의학적 처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포착된다. 호랑이, 곰과 같은 대형 맹수류를 기르는 동물원 29개소 중 절반이 넘는 15개소가 야외방사장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체험교육’을 내세운 유사동물원이 난립하는 것도 문제다. 사육환경이 열악할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신체접촉을 일어나는 가운데 안전관리와 인수공통질병 문제도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형주 대표는 “동물원 관련 법령을 마련한 해외 선진국 모두가 ‘허가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공중보건, 동물복지 측면에서 열악한 시설은 허가제 도입 과정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환경부 의뢰로 동물원수족관법 개정방향을 연구한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도 허가제 도입에 초점을 맞췄다.
동물원수족관법 상 등록제를 허가제로 강화하는 한편, 구체적인 허가기준을 마련하고 허가여부를 판단할 검사관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영국·EU는 모두 허가제..중앙정부가 운영하는 독립된 허가제 돼야
이날 토론회에서는 영국의 동물원수족관 시민단체 ‘본프리 재단(Born Free Foundation)’의 크리스 드레이퍼 대표(사진)가 영국 제도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영국과 EU회원국은 EU 동물원 지침(EU ZOO DIRECTIVE)에 따라 동물원 허가제와 검사관제, 동물복지 관련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그에 앞서 영국은 1984년부터 동물원 허가법을 통해 허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와중에도 3~4년마다 동물검사관을 통해 기록관리나 직원교육, 안전관리 등을 정기 점검한다.
동물검사관은 수의사와 동물원 업계 관계자들 중 경험이 많은 전문가를 선정해 정부가 임명한다.
드레이퍼 대표는 “영국의 동물원 허가제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행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한국이 보다 세계적인 수준의 동물원 관리제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허가제 도입 △독립적인 검사관 임용 △매년 정기검사 실시 △동물원 폐업시 보유동물 처리에 대한 안전망 확보 △동물원 검사결과 시민공개 등을 제언했다.
결국 실질적인 기준이 중요..환경개선·전문가 양성 지원책 절실
이날 패널토론에 나선 업계·정부 관계자들은 동물원수족관법 정비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허가제 도입에 시각차를 보였다.
명노헌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장은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허가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볼 수 없다”며 “등록제도 관련 기준을 강화하면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라 환경부와 해수부가 종보전·전문인력확보·서식환경 관리 등을 아우르는 5개년 종합계획을 세우고, 그 이행성과에 따라 제도개선을 검토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윤익준 부경대 법대 교수는 “제도 개선은 방향만큼이나 속도도 중요하다”며 “허가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등록된 동물원·수족관이 폐쇄될 경우 해당 동물들을 어떻게 관리할 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준희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토론회에서 제언된 허가제 전환 방향에 동의한다”며 “이와 관련된 부작용 우려에 대해서는 향후 협의를 지속해나가겠다”고 답했다.
동물원의 동물복지,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서는 제도 개정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 이기원 사무국장은 “규제일변도로 치우치기 보다 우수한 기관은 육성하는 상향평준화 정책이 필요하다”며 동물복지·생물다양성 보전에 관한 전문가 양성과 시설 개선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이용득 의원은 “지난해 퓨마 탈출사건을 계기로 동물원의 미흡한 동물복지, 관람객 안전확보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부상했다”며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동물원의 책임과 의무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