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 진료비 정보공개 확대, 진료체계 표준화가 먼저다
동물병원 의료서비스 발전방안 정책토론회 개최..관련 수의사법 개정안 4월 심의 전망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소비자연맹이 10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소비자 관점에서 본 동물병원 의료서비스 발전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행사 제목과 달리 동물병원 진료비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이날 토론회에서 소비자 단체들은 진료비 관련 정보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수의사 측은 진료체계 표준화가 선행되지 않는 일방적인 규제 신설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소비자단체, `예측하기 어려운 진료비가 부담..정보 공개 늘려야`
이날 소비자연맹은 최근 3년간 진료 목적으로 동물병원에 내원한 반려동물 보호자 6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90.6%가 사전에 진료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소비자가 요구하는 동물병원 관련 개선사항 중에서도 ‘동물병원 내 진료비 정보 게시(21.7%)’가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정지연 연맹 사무총장은 “동물병원 소비자들은 예측가능하지 않은 진료비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며 “진료 전과 후 모두에서 소비자가 진료내용과 비용을 알 수 있도록 정보 제공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동물병원 진료비 사전고지제 및 공시제 도입과 진료항목 표준화, 진료비 모니터링 강화를 과제로 꼽았다.
소비자단체에서 나온 다른 패널들도 동물병원 진료비의 예측불가능성과 편차 문제를 주로 지목했다.
박애경 애견협회 사무총장도 “진료비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사전에 제공돼 소비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동물병원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깜깜이 수준”이라며 진료비 정보 공개 확대 필요성에 동조했다.
조윤미 소비자권익포럼 대표는 “진료비에 대한 사전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 보호자들로 하여금 의료서비스 이용을 줄이거나, 필요한 것도 하지 않게 만드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의사단체, `진료항목 표준화 없이 규제부터 만들자는 식은 곤란해`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전무는 이날 토론회에서 “의료계에서도 비급여진료비의 병원간 편차가 수십배에 이른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다짜고짜 법을 만들어 당장 가격을 고지하라고 하지 않았다”며 “비급여 진료를 표준화하고 큰 병원부터 순차적으로 고지범위를 확대하는데 10년이 넘게 걸리고 있다. 일선 의원은 지금도 고지대상에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진료비를 외부에 공시하려면 진료항목에 대한 표준화(표준진료체계)가 먼저라는 것이다.
허주형 한국동물병원협회 회장은 “진료항목이 표준화되지 않은 채로 진료비를 공시하게 되면 ‘나중에 이건 (얼마로) 공시되어 있는 그 진료가 아니에요’라며 빠져나갈 여지도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수의사법을 소관하는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의 김대균 과장도 “중성화수술도 병원마다 세부 처치항목은 다른데, 소비자들은 ‘똑 같은’ 중성화수술인데 가격이 차이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며 “표준수가제가 아닌 표준진료체계를 구성하고, 그에 따라 청구되도록 하여 소비자들이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다고 느낄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물병원 진료체계 표준화는 아직 요원하다. 지난해 표준화 연구를 위한 예산 4억원 신설을 추진했지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올해 농식품부 자체 연구용역 예산 1억원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의료의 비급여 표준화를 위해 100억여원을, 한의료 30개 질병에 대한 표준화를 위해 273억원을 투입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사람의료가 방대한 정부조직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10여개의 법령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동물의료는 전담 조직도 없고 법령도 수의사법 1개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우연철 전무는 “동물의료의 공공성도 인정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동물의료를 책임지겠다는 의식은 없으면서 수의사에게 의무만 부과하겠다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허주형 회장은 “독일의 동물병원 수가제도 EU로부터 폐지권고를 받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국가 차원의 공시제도는 없다”며 “공공의료가 아닌 동물의료에 공시제 등을 일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자본주의 원칙을 부정하는 꼴”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수의사-보호자간 정보 비대칭 완화, 수의진료권 확보가 먼저다
이날 소비자단체들은 진료비를 포함한 동물진료 전반에서 수의사와 보호자의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비대칭이 소비자의 선택권 제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연철 전무는 공익적 차원의 비대칭성 완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수의진료권 보호를 선결조건으로 제시했다.
우 전무는 “아직 동물의 자가진료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약품 유통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진료기술이 공개되면 수의사들을 옥죄는 결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주형 동물병원협회장도 “반려동물 양육자 중 동물병원을 이용하는 비율은 일부에 그치고 있고, 약국을 통해 의약품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는 실정”이라며 “수의진료권이 독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 굉장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동물을 위해 검사하면 보호자로부터 과잉진료라며 욕을 먹는다`..VCPR 정립 필요
수의사와 보호자 사이의 진료비 논란에서 동물의 입장이 외면받는다는 지적은 이날도 이어졌다. 동물의료문제는 수의사와 보호자는 물론 동물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의사가 정밀검사와 강도 높은 치료를 진행하면 건강을 되찾은 동물 입장에서는 좋지만, 보호자의 비용부담은 커진다. 반면 무작정 저렴한 옵션만 권한다면 보호자는 좋을지 몰라도, 동물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VCPR(수의사-소유주-환자 관계, vet-client-patient relationship) 아래서 동물의료의 공공성을 사회적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소비자연맹이 소개한 2017-2018 동물병원 관련 소비자피해 신고사례(1372소비자상담센터)에서 진료비 과다청구나 과잉진료 관련 호소 중 가장 많은 내용이 혈액검사, 엑스레이 등 진단검사와 연관됐다.
우연철 전무는 “동물병원이 과잉진료라는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검사를 하는 것은, 동물은 사람들처럼 손쉽게 진단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진료에 대한 법적다툼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검사를 소홀히 했을 때의) 제제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검사에 든 비용을 과잉진료의 피해라고 응답한 것은 검사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나오는 인식”이라며 “의료서비스의 내용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동물병원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주형 동물병원협회장은 “동물 진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다. 대부분의 병원이 환자의 상태나 진료 계획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료비 관련 수의사법 개정안 4월 심의 전망..사전고지제 쟁점
현재 국회에는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수의사법 개정안 다수가 발의되어 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전재수 의원(사전고지제+공시제)을 비롯해 원유철(공시제), 정재호(표준수가제), 강석진(진료항목 표준화 이후 공시) 의원이 관련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대균 과장은 “진료비 관련 수의사법 개정안이 4월 국회 중 심의될 예정”이라며 “법안 심의 과정에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이 수렴될 것”이라고 전했다.
수의사법에는 진료항목 표준화와 진료비용 고지에 대한 원칙을 담고, 세부적인 내용은 농식품부령(시행규칙)으로 규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직 동물진료항목 표준화를 위한 기반연구가 채 시작되기도 전이라, 섣부른 규제도입으로 인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앞서 농식품부가 ‘동물병원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알권리를 제고하겠다’며 수술 등 중대한 진료행위에 대해 예상되는 진료비를 의무적으로 설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만큼, 4월 국회심의에서 사전고지제 도입 여부와 범위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