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인게 죄? 입국시 공항·항만 소독 절차 개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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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인여러분신고합니다

홍콩에 거주하는 수의사 A씨는 며칠 전 한국에 입국할 때, 인천공항에서 수의사라는 이유로 소독을 받았다.

이미 4-5번 소독을 받아왔지만, 이번에는 에스컬레이터 옆에 ‘축산인 여러분! 신고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이름까지 적혀있었다.

A씨는 수의사 면허증 소지자지만, 벌써 10년 넘게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수의사면서 구제역∙AI 발생국가에서 입국했다는 이유로 소독을 받은 것이다.

2011년 7월 25일 개정된 가축전염병예방법이 시행된 뒤로, 축산관계자가 구제역∙AI 발생국가에서 입국하는 경우, 공항만에서 ‘입국자 동물검역 신고서’를 작성하고, 소독을 받아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법에서 규정한 축산관계자는 수의사, 사료판매업자, 가축방역사, 가축의 소유자등과 그 동거가족, 가축 소유자등에게 고용된 사람과 그 동거가족, 가축분뇨 수집∙운반업자, 인공수정사, 가축시장 종사자, 동물약품 판매업자, 원유를 수집∙운반하는 자 등이다.

축산관계자정의

하지만, 제도의 실효성∙형평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 직업으로만 축산관계자를 분류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의사의 경우, 축산 쪽에 종사하지 않거나 수의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에도, 수의사라는 이유로 소독을 받는다. 이는 소독을 받는 수의사와, 부족한 인력으로 하루에도 수백명씩 축산관계자를 소독하는 검역본부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A씨는 “정말 실효성 있고, 전염병 전파를 막는데 도움이 되는 지 의문”이라며 “가정주부로만 살아 온 수의사를 소독하거나, 함께 동행한 사람(비수의사)은 소독하지 않는 것만 봐도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고 말했다.

소독 대상이 되는 축산관계자를 직업으로만 분류하다 보니, 오히려 축산현장과 더 가까운 축산학과 학생이나 축산학과 교수는 소독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또한 축산관계자와 24시간 함께 생활하고 함께 입국하더라도 직업이 축산관계자가 아니면 소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 3월 대한수의사회가 발표한 ‘수의사 신고 결과 분석’에 따르면, 임상수의사 4,939명 중 74%인 3,666명이 반려동물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비수의업종이나 비근로자, 재외거주자가 전체 수의사 중 16.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불필요한 소독을 받고 있는 수의사가 많은 것이다.

수의사분야별분포_201303
수의사 신고 결과 분석(신고기간 : 2013.8.15~2013.3.12)자료 – 대한수의사회

구제역과 AI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함께 생활했던 사람이나 축산현장과 더 관계가 있는 사람은 소독 대상에서 제외되고, 수의사라는 이유로 반려동물 수의사나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수의사까지 소독하는 것은 제도의 실효성∙효율성에 의문이 들게 한다.

두 번째로, 국적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구제역∙AI 발생국가의 축산현장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라도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외국 수의사가 국내에 입국할 경우 의무 소독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 외국 수의사가 직접 소독을 해달라고 주문 했을 경우(의뢰 소독)에만 소독을 실시한다.

구제역∙AI를 막기 위한 제도이면서 발생국가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는 의무 소독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세 번째로 소독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소독으로 인한 불편함도 문제지만, ‘축산인 여러분’ 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게시판에 이름을 써 붙여놓거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끌고가거나, 방송으로 호명해서 민망하게 만드는 등 과정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다.

수의사인게 마치 범죄자처럼 비춰질 수 있는 것이다. 소독하는 건 이해하더라도 소독을 받게 하는 과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검역본부, 불편함·불합리성 인지하고 개선노력 중

한편, 농림축산검역본부 역시 수의사들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해당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천공항의 경우 농림축산검역본부 휴대품검역과에서 축산관계자 소독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휴대품검역과 관계자는 “검역본부도 수의사들의 불편함과 불만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수의사 뿐 아니라, 인공수정사들도 같은 불만을 제기한다. 20년 이상 해당 일을 하지 않았는데 소독을 받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고 말한다” 고 전했다.

그는 이어 “현재 가축전염병예방법과 시행규칙에 수의사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축산 쪽에 종사하지 않는다 하여 예외 시켜 줄 수는 없는 상황” 이라며 “하지만, 축산 쪽에 종사하지 않거나 농장을 방문하지 않는 경우에는 의무 소독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노력 중” 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검역본부 내에서는 축산 쪽에 ‘종사하지 않는 자’ 별도로 명시하도록 상부에 건의하는 등의 제도 개선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평균 국내 입국자는 약 68,000여명.

수 만 명의 입국자 중 축산관계자를 파악하여 소독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또한, 축산 쪽에 종사하는 수의사 혹은 축산시설에 방문한 수의사만 골라서 소독하는 것은 추가적인 정보공개, 사생활침해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사람을 소독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의사인게 죄? 입국시 공항·항만 소독 절차 개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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