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감염병연구소로 징발 주장에 현장 우려 증폭
수의학 측면 고위험 인수공통감염병 연구기관 유일한데..사람 감염병 연구에만 매몰 우려
질병관리청 소속 기관으로 신설될 국립감염병연구소의 불똥이 수의계에 번질 기미가 보이고 있다.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이하 인수공)를 국립감염병연구소 분원으로 편입시키자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인수공은 수의학 측면에서의 인수공통감염병과 재난형 동물질병에 대해 민간에서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다.
복지부 산하로 편입돼 사람 관련 연구에 매몰되기 보다, 인수공 체제를 유지한 채 원헬스(One-Health) 차원의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위험 병원체 민간 산학연구할 곳 인수공 유일한데..
‘감염병연구소로 치환되면 사람 연구에만 매몰될 것’ 연구 생태계 위협 우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가 내놓은 ‘질병관리청’ 독립안에는 국립감염병연구소 신설이 포함됐다. 질병관리본부 산하 감염병연구센터를 확대 개편해 감염병 R&D를 맡긴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지난 5월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감염병연구소 분소를 유치하자’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교육부 아래 전북대학교에 속한 인수공 시설을 복지부로 부처이관하여 감염병연구소 분소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수공과 전북대 측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수의학(동물) 측면에서의 인수공통감염병과 재난형 동물질병에 대해서 폭넓은 산학연구를 유도하려면 대학을 중심으로 한 기관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공 소장을 겸임하고 있는 어성국 전북대 수의대 학장은 “복지부 산하(감염병연구소)로 가면 사람에서의 질병 연구에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며 “동물과 환경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사람에게 가기 전에 어떻게 막을 것인지 연구하려면 인수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을 다룬다고 해도 사람 중심의 감염병연구소와 수의학 측면에서 바라보는 인수공의 접근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고병원성 AI 등 고위험 병원체에 대한 민간연구기반을 박탈하게 될 위험성도 지적됐다.
고위험 병원체를 연구하려면 실험과정에서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BSL3, ABSL3 시설이 필수적이다. 특히 동물을 활용한 차폐실험시설인 ABSL3은 민간에서 대안을 찾기 어렵다.
채준석 서울대 교수는 “검역본부나 질본이 가진 (ABSL3) 시설은 자체 연구를 하기에도 벅차다. 그나마 개별 교수나 기업이 고위험 병원체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곳이 인수공”이라며 “인수공 시설이 감염병연구소가 되면 사람 연구에만 매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채 교수도 인수공에서 인수공통감염병인 진드기매개 중증열성혈소판증후군(SFTS)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연구 본격화, 특수실험시설은 이미 ‘매진’
오픈랩 연구허브로 범부처과제, 산학연구 아우를 유연성 유지해야
인수공을 국가기관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감염병연구소 이슈 이전에도 인수공이 개소한 2015년 당시에도 지역 정치권에서는 예산확보의 용이성을 들어 국가연구기관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차폐실험설비를 포함한 대형 연구시설을 돌리기 위해 운영비와 인력이 필요한데, 타 국립대에 비해 차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기 어려운 교육부 산하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수공의 연구기능이 본격화된 것은 2018년부터다. 교육부가 2019년까지 기자재비 50억원과 운영비 연간 최대 15억원을 지원했지만, 2013년 완공돼 출발선에 서는데까지 5년이나 걸린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연구예산이 상당히 늘었다는 것이 인수공 측 설명이다. ‘인수공이 제대로 운영이 되질 않으니 감염병연구소로 돌리자’는 인식은 잘못된 오해라는 것이다.
인수공이 현재 수주하고 있는 국가·기업 연구과제는 총 228억원 규모다. 코로나19, SFTS,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등을 대상으로 동물 간 전파나 동물모델 개발, 백신 개발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어성국 소장은 “이미 특수차폐시설은 올 하반기까지 연구일정이 꽉 찼을 정도로 활성화됐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연구과제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육부의 직접 지원이 끝난 올해도 전북대 차원의 운영예산 배정이 이어지고 있고, 연구과제의 간접비를 더하면 자체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기관이 되어 인력이나 운영비가 늘어나봤자 민간 연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됐다.
어성국 소장은 “(감염병연구소가 되면) 인력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기관고유사업에만 매달리게 된다”며 “복지부, 농식품부, 환경부 모두 자기 소관에만 관심이 있다.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인 대학 연구소여야 연구반경이 자유롭다. 제품화를 전제한 백신·치료제 개발이나 IT, BT 융합연구까지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수공은 개소 당시부터 ‘오픈랩(Open Lab)’ 형태의 연구 허브를 표명해왔다. 국가기관과 민간기업, 대학이 필요에 따라 함께 활용하는 연구시설이 되겠다는 것이다.
감염병연구소 분소, 정 필요하면 비어 있는 시설 같이 쓰자
전문인력 양성 기능, 클러스터화 유지·확대해야
전북대와 인수공은 지자체의 감염병연구소 분소 유치 제안에 대해 ‘정 필요하다면 인수공 내에 비어 있는 일부 시설을 무상으로 임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분소로 통폐합하면서 인수공을 폐지하는 안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일반실험실에 분소가 입주하고 차폐실험시설 등은 함께 이용하는 방식의 대등한 협력구조다.
장형관 전북대 교수는 “인수공 설립 취지인 동물에서의 인수공통감염병 연구 기능은 유지되어야 한다”며 “사람과 동물에서의 감염병 연구가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있는 시설을 징발하여 연구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기 보다,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준석 교수는 “범부처 코로나19 대책을 국무총리가 총괄하는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라며 “인수공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예산지원확대를 결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순히 인수공을 감염병 연구소로 치환하기 보다, 인수공과 감염병연구소, 동물용의약품효능안전성평가센터, 인수공통감염병 전문대학원 등을 익산에 모아 시너지를 발휘하는 ‘클러스터’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성국 소장은 “이미 양성된 인력을 쓰기만 하는 국가 연구소와 달리 대학에 속한 인수공은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역할도 한다”며 연구·교육 기능이 융합된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오는 8월 질병관리청 승격과 권역별 질병대응센터 설치를 추진하고, 내년 6월까지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신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