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사람약 써서 문제? 동물은 그냥 아프게 내버려 두란 말인가
약사회 ‘동물약 있는 성분도 인체약 사용, 도 넘어’ 주장..수의사회 ‘동물의료 몰이해’ 일축
대한약사회가 동물병원의 인체용의약품 사용을 문제 삼았다. 특히 동물병원이 인체용의약품을 사용하더라도 수의사가 직접 투약하는 용도에만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국내 반려동물병원 전부를 범법자로 만드는데다 동물 환자는 무조건 입원치료를 하라는 요구나 다를 바 없는 비현실적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사람혈청알부민 제제 등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인체용의약품이 비합리적·비윤리적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는데, 동물환자의 건강은 무시한 밥그릇 챙기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대한수의사회는 “동물의료에 대한 몰이해로 비롯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전세계적으로 수의사의 인체약 사용은 통상적인 행위인데다, 잔류문제가 없는 반려동물에서 인체약 사용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약사회 ‘동물약 있는 성분도 인체약 써서 문제’ 주장
동물약 대부분 축산용..실제 유통 안되거나 반려동물 사용에 부적합
‘동물약이 오히려 비싸’ 인체용의약품 사용의 경제성도 무시 못해
대한약사회는 13일 “동물병원에서 동물의약품보다 인체용의약품을 우선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 비중이 도를 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약사회 의뢰로 의약품정책연구소가 ‘동물에 사용하는 인체용의약품 관리제도 개선 방안 연구’를 실시했는데, 동물병원에서 사용되는 인체용의약품 중 17%는 이미 허가된 동물용의약품이 있었다는 것이다.
약효분류를 기준으로는 인체용의약품 91개 약효군 중 동물용의약품으로 허가된 품목이 있는 약효군이 44개로 약 48%에 달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이뇨제인 푸로세미드(furosemide)를 지목했다. 연구진이 표본조사를 벌인 188개 동물병원 중 절반가량인 92개 병원에서 인체용의약품으로 허가된 푸로세미드 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로세미드는 울혈성 심부전 등의 치료를 위해 반려동물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약물이다. 본지가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동물병원들 모두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히려 동물용 푸로세미드 제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유명 동물약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동물용으로 출시된 의약품 대부분은 축산가축용이다. 애초에 반려동물용 의약품과 축산용 의약품의 공급 경로가 분리되어 있는 데다가, 같은 성분이라도 대용량의 주사제나 포대 형태의 산제 등 반려동물에서 사용하기 어려운 형태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사람에서의 개체별 사용을 전제로 포장된 인체약이 반려동물에서 쓰기에 더 적합하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품목허가를 받은 동물약 중에 실제로는 생산·유통되지 않는 약품도 상당수”라며 “직접적으로 동물병원에 공급되는지 여부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성도 중요한 요인이다. 비싼 약을 쓰면 진료비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수액 제제만 해도 동물용으로 허가 받은 제품은 인체용보다 훨씬 비싸다”고 설명했다.
동물약은 인체약과 달리 정부의 보조도 없고 시장수요도 소량이다 보니 경제성이 없어 생산이 불가능하거나, 생산된다 하더라도 동일 성분의 인체약보다 더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인체약을 강제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동물을 치료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진료비 자체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수의사회(AVMA)도 수의사의 인체약 허가외사용(ELDU-ExtraLabel Drug Use)을 두고서, 반려동물의 경우 경제적 목적으로 인체약을 사용할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동일 성분의 동물용의약품이나 동물용 제네릭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체약이 더 적합하거나 보호자에게 경제적일 경우는 인체약을 우선적으로 처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 어디든 동물치료에 인체약 쓰는데..
사람알부민제제 동물에 쓰면 비윤리적? 그럼 그냥 아프게 놔두란 말인가
애초에 약사회의 문제지적 저변에 깔린 ‘동물병원이 인체용의약품을 사용하면 문제’라는 인식부터 문제로 지적된다.
수의사회는 “전세계 어디서든 수의사들이 동물치료에 인체약을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약뿐만 아니라 기존의 인체약을 반려동물에 사용하는 연구가 더 잘되어 있을 정도”라며 “동물병원의 인체용의약품 사용이 문제라는 시각은 기본적으로 동물의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축산물 형태로 사람이 섭취하는 가축의 경우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인체용의약품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반려동물은 수의사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어느 약물이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약사회는 인체유래혈액제제인 사람혈청알부민을 동물에게 사용하는 것이 비합리적·비윤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일선 수의사는 “반려동물도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저알부민혈증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때 사람혈청알부민 제제를 활용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이를 대체할 제제가 마땅히 없다”고 토로했다.
해외에는 반려견용 알부민 제제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동물병원에 유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혈청알부민은) 반복 투여 시 면역반응 가능성에 유의해야 하지만, 주치의가 고민해 판단할 문제다”라며 “사람약을 쓴다고 비윤리적이라면, 그냥 아프게 놔두는 것은 윤리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인체약 문제와는 별개로 이처럼 그나마 해외에 출시된 반려동물용 제제를 국내에서 쓰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은 문제로 지목된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사람은 희귀의약품 공급체계가 나름 갖춰져 있지만 동물에서는 아직 없다. 동물용의약품의 희귀약품센터 설립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인체약은 동물병원 내에서만 써라? 반려동물 환자는 무조건 입원하란 말인가
약사회는 이날 동물병원 수의사는 병원 내에서 직접 투약하는 용도로만 인체용의약품을 취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물 진료 후 조제를 포함해 인체약을 내어주는 행위는 약사법을 위반한 것이란 해석이다.
약사회 주장대로라면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동물병원은 사실상 모두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반려동물 진료에 사용되는 약물 대부분이 인체용의약품인 상황에서 약을 먹이려면 무조건 병원에 오거나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꼭 수의사가 아니라도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동감할 수 없는 주장이다.
수의사회 관계자는 “(약사회 주장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실현된다 하더라도) 진료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주장”이라며 해당 약사법상 특례조항은 의약분업 당시 동물병원의 진료서비스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규정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