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동물병원 과잉 진료·진료비 과다 청구 등으로 소비자 불만 증가`
`동물 진료비 사전고지·공시제` 수의사법 정부입법 개정안 국무회의 통과
중대진료행위의 사전동의, 주요 진료항목의 진료비 사전고지, 공시제를 포함한 수의사법 정부입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정부안은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20회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월 입법예고까지는 사전고지 의무화 대상을 표준진료항목으로 규정했지만, 국무회의를 통과한 최종안에서는 이마저도 삭제됐다.
진료항목 표준화를 진료비 관련 수의사법 개정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수의사회의 입장도 결국 무시한 셈이다.
중대진료행위 사전설명·동의 의무화, 의료법에도 없는 예상비용까지 포함
동물 진료비와 관련해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은 이번 정부안을 포함해 총 9건이다. 이중 정부안이 가장 다양하고 강력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안은 수술, 수혈 등 동물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진료(중대진료행위)의 경우 진단명, 필요성, 방법 및 내용, 예상되는 후유증이나 부작용, 보호자 준수사항을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특히 예상진료비용까지 설명 의무 대상에 포함시켰다. 예상진료비용은 서면 동의 항목에서는 제외했지만, 설명을 하지 않든 서면 동의를 받지 않든 동일한 처벌(100만원 이하 과태료)을 받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같은 수준으로 의무화된 셈이다.
사람에서도 중대진료행위의 방법, 후유증 등의 사전 설명은 의무화되어 있지만(의료법 제24조의2) 비용은 설명대상이 아니다.
대한수의사회는 중대진료행위의 진료비용 사전설명 의무화는 과도한 규제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대진료행위를 농식품부가 시행규칙을 통해 임의로 규정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무엇이 중대한 진료행위인지를 공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진찰·입원·백신·검사 등에 사전고지제, 진료항목 표준화 전제조건도 무시
사전고지 대상 항목은 정부가 조사해 ‘전체공개’
동물병원 개설자가 주요 진료항목의 비용을 소유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고지하고, 고지한 금액을 초과해 받을 수 없도록 한 ‘사전고지제’도 정부안에 포함됐다.
사전에 고지하지 않거나, 고지한 금액을 초과로 받을 경우 해당 금액의 반환을 포함한 시정명령의 대상이 된다.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동물병원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당초 입법예고안은 동물의 질병명, 진료항목 등 표준분류체계를 고시하고, 그에 따라 마련된 표준진료항목의 비용을 고지토록 규정했다.
하지만 최종안에서는 이 같은 내용은 삭제됐다. ‘진찰, 입원, 예방접종, 검사 등’으로만 고지대상을 지목했다.
이제껏 대한수의사회는 ‘진료비 고지·게시 의무화의 경우 진료항목 표준화 이후 다빈도 진료항목을 선정해 동물병원 규모별로 순차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허은아, 강민국, 박덕흠, 서일준 의원안 등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수의사법 개정안들 상당수도 선(先) 표준화, 후(後) 게시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정부안은 입법예고까지는 이 같은 구조를 채택했다가 되려 삭제하는 방식으로 수의사회 입장을 무시한 셈이다.
사전고지의 대상으로 지정된 진료항목은 정부가 직접 나서 ‘전체공개’한다.
정부안은 농식품부장관이 사전고지 대상 진료항목의 비용과 산정기준 등에 관한 현황을 조사·분석해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동물병원 개설자에게 관련 자료 제출을 명령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은 동물병원은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이 같은 조항은 사람의 비급여 진료비용 현황조사와 유사하다. 600여개의 주요 비급여 진료항목의 가격을 의료기관별로 제출 받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의원급까지 의무 보고대상으로 확대해 의료계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병원을 나누는 기준은 오직 하나, 1인 원장이냐 아니냐
정부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공포되면 1년 후부터 사전고지제가 적용된다. 다만 수의사 1명이 진료를 하는 동물병원(1인 원장 동물병원)의 경우 1년이 추가로 유예된다.
수의사회가 진료항목 표준화와 함께 병원 규모별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1인 원장이냐 아니냐만 따지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공식적인 의료전달체계는 없지만, 개원가에서 이미 동물병원 규모는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1인 원장 동물병원이 아니라고 해서, 수의사 몇 명이 일하는 병원과 수의사 수십명이 근무하는 대형 병원을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사람에서도 비급여 진료비용 현황 공개 의무화의 출발은 2013년 상급종합병원 43개소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150병상 초과 병원급까지, 150병상 이하 병원급까지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해왔다.
동물병원이 축종별로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개·고양이를 진료하는 동물병원과 소, 돼지, 가금을 진료하는 동물병원은 놓인 상황도 진료 형태도 아주 다르다.
하지만 ‘수의사법 상 동물병원’은 이들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냥 동물병원이다. 반려동물 진료에 초점을 맞춘 규제도 소·돼지 동물병원에 그대로 적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개정안에 대해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반려동물 질병·사고 시, 보험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드물고 적정한 치료비가 얼마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며 “진료에 대한 표준화된 분류체계를 마련하는 등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반려동물에 대한 의료서비스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동물병원마다 진료 항목이 상이하고 진료비 과다 청구, 과잉 진료 등으로 소비자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으로 동물의료서비스 소비자의 알 권리와 진료 선택권 보장이 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회 입법 절차에 따라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부안을 포함한 동물 진료비 관련 수의사법 개정안의 국회 소관 상임위 심의는 이르면 이달 말 개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