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질평가해 맹견 관리한다지만‥현실성 있나 우려
맹견 품종 사육허가와 공격성 문제 정밀 분석은 달라..실무 맡을 수의사 부족도 문제
지난달 전면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맹견 관리를 대폭 강화했다. 맹견은 동물등록, 배상책임보험 가입, 중성화수술과 함께 기질평가를 거쳐 사육허가를 받아야만 기를 수 있다.
또한 5대 맹견품종이 아닌 개도 개물림사고를 일으키면 기질평가를 거쳐 맹견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핵심은 기질평가다. 그 개가 위험한 개인지, 소유주는 안전하게 기를 수 있는지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문제가 지적된다. 전혀 다른 성격의 시험과 진료행위를 모두 ‘기질평가’로 표현한데다, 실제로 기질평가를 맡을 수 있는 수의사도 거의 없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국내 수의행동의학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선아 충북대 교수와 이혜원 동물자유연대 연구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질평가 NO 행동의학 진료 YES
개정 동물보호법의 맹견 관리는 크게 두 단계다.
우선 맹견인지 여부를 판단한다(1차). 이후 맹견이라면 해당 소유주가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해 ‘맹견사육허가’를 내어준다(2차).
1차로 로트와일러, 도사견 등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5대 품종은 무조건 맹견이다. 맹견품종이 아닌 개도 개물림 사고를 일으키는 등 공격성이 분쟁의 대상이 된 경우 기질평가를 거쳐 맹견으로 지정될 수 있다.
시도지사는 맹견사육허가를 내어 주기에 앞서 기질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5대 맹견품종의 경우 특별한 공격성 문제를 드러낸 바 없더라도 기질평가를 거쳐 사육허가를 받아야 한다.
공격성 문제가 없었지만 맹견품종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기질평가와 이미 공격성을 드러낸 개에 대한 기질평가는 전혀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하지만 개정 동물보호법은 똑같이 기질평가를 해야 한다고만 규정할 뿐 차이가 없다.
이혜원 소장은 전자를 ‘기질평가’로 명명한다면 후자는 ‘정밀행동분석’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선아 교수도 후자는 엄연히 수의행동의학적인 진료라고 못박았다.
평가로 공격성을 예견한다? 동전 던지기나 다를 바 없다는데..
전자의 기질평가에 가까운 사례는 독일 니더작센주의 ‘개를 키울 수 있는 자격증(Sachkundenachweis)’ 제도가 꼽힌다.
운전면허처럼 이론∙실기시험을 치르는 형태인데, 맹견품종뿐만 아니라 품종∙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반려견의 보호자가 시험을 통과해야 개를 기를 수 있다.
반려견의 특성과 정상∙문제행동 등에 대한 지식과 함께 앉아∙엎드려∙기다려∙시선교환 훈련 등 기본적인 실기를 평가한다.
독일에서 공부한 이혜원 소장은 실기 교육에 직접 참여한 경험도 전했다. 주변에서 우산을 펴거나 자전거로 지나가는 등 흔한 자극을 주면서 교육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맹견 안전관리에 적용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소장은 “독일에서도 기질평가에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며 “운전면허를 받았다고 자동차사고가 안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어차피 기질평가를 통과한 개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공격성이 발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선아 교수도 특정한 시험을 통해 개의 공격성을 미리 예견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유기동물보호소에 입소한 개들을 대상으로 공격성 시험의 문제를 다룬 논문을 소개했다.
2016년 수의행동학회지(JVB)에 발표된 해당 논문은 개를 자극하는 방식의 행동평가로는 미래의 공격성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지목했다. 동전 던지기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No better than flipping a coin: Reconsidering canine behavior evaluations in animal shelters).
기질평가 담당할 수의사가 없다
김선아 교수는 전문가가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다. 기질평가를 담당할 전문가를 어떻게 양성할 지, 전문가인지 여부를 누가 어떻게 인증할지 체계조차 없다는 것이다.
더 위험한 개를 평가해 관리하려는 제도의 방향성에는 공감한다 해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졸속으로 진행될 우려가 너무 크다”면서 “그냥 수의사에게 하라고 해도 안 된다. 특별히 더 교육받은 수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혜원 소장도 “종합적인 행동분석은 한 번 봐서도 불가능하고, 한 명이 결정하기도 어렵다”면서 “전문가 풀이 너무 부족하다. 이대로라면 비전문가가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미 벌어진 개물림사고를 두고 벌이는 기질평가는 정밀행동분석이 포함된 수의행동의학적 진료다.
공격성을 평가할 때는 우선 다른 질환을 배제하는 것이 먼저다. 가령 목이나 치아가 아픈데 주변을 건드렸기 때문에 문 것이지, 행동학적인 공격성 문제는 아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감별은 수의사가 해야 한다.
게다가 기질평가는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일 수 있다. 개정 동물보호법은 기질평가 결과 사육허가를 받지 못한 소유주의 맹견에게는 인도적 처리(안락사)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기질평가 등 맹견관리제도는 2년 후에 시행된다. 김 교수는 “수의사 교육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장기간이 필요하다”며 “아직 어떻게 양성할 지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격성, 지울 수 없는 낙인인가 치료의 대상인가
한 번 맹견으로 지정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동물보호법
김선아 교수는 개의 공격성을 수의학적 치료의 대상으로 못박았다.
“공격성은 불안, 공포, 충동조절의 문제다. 수의학적인 문제”라면서도 반려인들, 심지어 상당수의 수의사들이 의학적인 문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개의 교육(훈련)이나 보호자의 관리 부족도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혜원 소장도 “공격성 문제를 보였던 환자가 약물치료를 통해 개선된 사례가 있다. 물론 보호자의 의지와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갑자기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징조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예방이 중요하다”면서 “공격성이 우려되는 징조를 확인하면 적극적으로 전문가를 찾아 사고를 예방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좀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치료의 대상이라면 개선의 여지도 있다. 심지어 주인이 달라진다면 같은 개라도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던졌던 질문 중에 하나는 “같은 개라도 (관리역량이 부족한) 기자가 기르면 맹견이지만, 강형욱 소장이 기르면 맹견이 아닐 수 있지 않느냐”였다.
보호자가 적절히 교육받고 마음가짐을 바꾸면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 강형욱 소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나웠던 반려견이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관리할 수도 있다. 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정 동물보호법에는 한 번 맹견으로 지정되면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한 번 맹견은 영원한 맹견이다. 날 때부터 맹견인 5대 품종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일반 품종의 개도 맹견으로 지정되면 빠져나올 수 없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맹견지정의) 갱신이나 재평가 제도가 추후에 필요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제도 도입에 집중해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치료로 개선될 여지가 있는 개라면 최초의 기질평가 단계에서 맹견으로 지정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아 교수는 “행동진료에 악화는 없지만, 개선의 정도는 다 다르다”면서 “보호자의 관리가 중요하다. 오히려 관리 의지가 느슨해지는 수 년 후에 공격성 문제가 재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애초에 치료될 여지가 크거나, 우연이 겹쳐 일어난 개물림사고였다면 맹견으로 지정되지 말아야 한다”며 맹견으로 지정될 정도의 공격성을 가졌다면 평생 조심해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격성 진료는 체크리스트로 만들 수 없다
김선아 교수와 이혜원 소장 모두 공격성을 드러낸 개에 대한 기질평가를 특정한 서식으로 갈음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사전에 준비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점수화하여 일정 점수가 넘으면 맹견으로 판정하는 식으로 간소화할 수 없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사람 정신의학과에도 DSM-5 기준이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체크리스트는 체크리스트일 뿐”이라며 “미국에서도 전문수의사가 행동진료를 보고 공식적인 리포트를 써주는 ‘Dangerous dog assessment’ 진료과목이 따로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격성 환자에 대한 행동진료와 같다”고 지적했다.
분양 시점부터 시작하는 전반적인 히스토리 파악부터 감별질환 배제, 사고 정황 분석, 자극원 판별, 치료계획 수립 및 예후판정 등으로 이어진다.
보호자의 협조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첫 내원시 1~2시간의 집중 상담을 시작으로 진료가 이어져야 한다. 해외 수준의 비용을 책정한다면 100만원이 넘게 들 수 있다.
맹견 기질평가제도, 행동의학 저변의 위기 혹은 기회
이번 동물보호법 개정은 국내 수의행동의학 진료 저변의 위기이자 기회다.
개정법은 시도지사가 공격성 문제를 보인 개에 대해 기질평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기질평가가 행동의학 진료로서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면, 아픈 개에게 의무적으로 진료를 보게 만드는 법이 되는 셈이다.
기질평가위원회에 참여할 수의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이들이 수의행동의학 진료 저변 확대의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 기질평가 방식이 졸속으로 마련될 경우에는 아직 꽃피우지 못한 국내 행동의학 진료 저변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다.
다른 질병원인을 제대로 배제하지 않거나, MBTI식 체크리스트로 판정한다면 오히려 행동진료를 더 외면하게 만들 수 있다.
공격성 문제를 보인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는 수의사가 과잉진료인 것처럼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향후 별도의 연구용역을 통해 기질평가 방식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